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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빚었다. 맥주 빚기는 약간 복잡하지만, 재료를 준비하고, 갈무리하고, 끓이는 과정이 요리의 한 가지라 여겨졌다. 딱히 비유하자면 곰탕을 끓이는 느낌이 들었다. 맥주에는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하는데, 내가 이번에 시도한 것은 귀리가 들어간 스타우트였다.

스타우트는 맥주 이름으로 낯설지 않다. 국내에서는 하이트 맥주회사에서 1991년에 스타우트를 출시하면서 흑맥주의 시대를 열었다. 하이트에서는 2007년에는 검은색 스타우트를 남자의 맥주로 부각시켜 차별화를 꾀했고, 생맥주에 부어서 흑생맥주로 마시는 유행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원래 스타우트는 스트롱, 즉 강하다는 뜻이다. 영국의 맥주 포터보다 더 강해서 얻은 이름이다. 스타우트 스타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제품이 아일랜드의 기네스 맥주다. 

맥주를 빚기 위해서는 6시간에서 8시간을 온전히 바쳐야 한다. 나는 오전 10시에 물을 끓이기 시작하면서 맥주를 빚기에 돌입했다. 곡물을 달이기 위한 16리터 물 그리고 여과하기 위한 20리터 물을 두 통에 나누어 끓였다.

맥주는 곡물을 물에 넣고 한 시간 달이고, 홉을 넣고 한 시간 끓여야 하니, 불 힘이 좋은 주방 시설을 갖추면 훨씬 편하다. 불과 물을 많이 쓰기 때문에 단독주택의 마당이나 주차장의 빈 터가 있다면 작업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이 때문에 맥주를 빚다보면 공방의 필요성을 더 느끼게 된다. 곡물을 달이고 홉을 끓이는 작업이 번거롭다 보니, 맥주는 한 번 빚을 때 많은 양을 빚게 된다. 그 최소한의 양이 5갤런, 19리터쯤 된다.

그래, 맥주는 너희들로부터 시작되는 게지

오트밀 스타우트를 빚는 데 필요한 곡물 여섯 가지.
 오트밀 스타우트를 빚는 데 필요한 곡물 여섯 가지.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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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의 주재료는 보리인데, 흥미로운 점은 보리를 다양한 형태로 가공해 사용한다는 점이다. 주로 싹을 틔운 맥아의 형태로 사용하는데, 싹이 트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당화효소 아밀라제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싹이 트고 나면 맥아의 성장을 정지시키기 위해 잘 건조하거나, 특별한 맛을 내기 위해서 커피처럼 굽거나 볶아서 사용한다. 예를 들면 내가 빚은 귀리 스타우트에는 모두 싹 띄우지 않은 보리 한 종류와 맥아 네 종류 그리고 귀리 한 종류가 들어갔다.

맥주를 빚을 때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맥아를 '베이스 몰트', 즉 '기본 맥아'라고 하는데, 이는 알코올 생성을 위해 필요한 당분을 제공한다. 19리터 스타우트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 맥아 5.24kg 중에서 기본 맥아가 3.5kg으로 67%를 차지했다. 그리고 특별한 색과 맛을 내는 특수 맥아로 빅토리 맥아, 초코렛 맥아, 카라멜 크리스탈 맥아, 구운 보리까지 네 종류가 들어갔다.

여기서 초코렛 맥아는 초코렛 맛이 도는데 230℃까지 구웠을 때 나는 맛이다. 이 보리 재료들을 보고 있노라니, 난해하게 꼬아놓은 수학 문제가 연상됐다. 선생님들이 재료를 세분하고 비틀어두고서, 학생들더러 다채롭고 풍부한 맛을 찾아내보라고 주문하는 것 같았다.     

귀리까지 포함해 여섯 가지 곡물을 69℃ 물 16리터에 넣고 1시간을 놓아두니, 커피처럼 검은 맥즙이 우러났다. 전분이 당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겪은 것이다. 당화가 끝나자 맥즙 온도를 76℃로 올려 당화를 정지시켰다. 그리고 가라앉은 맥아 껍질들을 여과층으로 활용하여 조심스럽게 맑은 맥즙을 걸러냈다. 맥아가 여과층이 될 수 있는 것은 쌀과 밀과 달리 보리는 껍질과 알맹이가 잘 분리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모두 세 차례로 나누어 맥즙을 걸려내는데, 첫 번째는 원액을 충분히 걸러내고, 두 번째와 세 번째에는 85℃ 정도 되는 물을 9리터씩 부어서 맥즙을 충분히 우려냈다. 이때 맥아에 남은 전분이나 당분을 최대한 씻어내야 원하는 알코올 도수의 맥주를 만들 수 있다. 

이제 2주일 기다리면...

단단하게 뭉쳐진 가공된 홉.
 단단하게 뭉쳐진 가공된 홉.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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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물에 곡물을 부어 달인다.
 뜨거운 물에 곡물을 부어 달인다.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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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즙을 다 걸러내고 나면, 이제 홉을 넣고 한 시간을 끓인다. 홉은 넝쿨식물의 꽃으로 맥주의 향과 맛에 큰 영향을 미치고, 저장성도 높여준다. 중국에서는 홉을 술꽃(酒花)이라고 부르는데, 현대 맥주에서 차지하는 홉의 비중을 봤을 때 맥주를 홉술이라고 불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홉을 넣고 1시간 내내 끓이면 쓴맛이 강해지고, 15분이나 5분 동안 짧게 끓이면 홉의 쓴맛과 함께 향기 성분이 강화된다. 홉의 향기를 담아내기 위해 맥즙을 다 끓이고 나서 홉을 넣기도 하고, 일주일 쯤 뒤에 1차 발효가 끝난 뒤에 넣기도 한다.

맥즙을 식힐 때 사용하는 구리 냉각관.
 맥즙을 식힐 때 사용하는 구리 냉각관.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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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을 넣고 맥즙을 끓이고 난 뒤에는 냉각관을 사용해 맥즙을 20℃로 냉각시킨다. 맥즙이 오염될 수 있으니 냉각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20℃로 식으면, 효모를 맥즙 위에 뿌려준다. 효모는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만드는 미생물로, 술을 빚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오전 10시에 맥주를 빚기 시작해 물을 끓이는데 30분, 맥아를 넣고 끓이는데 1시간, 이를 여과하는데 1시간, 홉을 넣고 끓이는데 1시간, 냉각시키는데 1시간, 조심스럽게 맥즙을 따라내는데 30분, 그리고 청소하고 뒷정리하는데 1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점심 시간까지 포함하니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맥주 빚기가 끝이 났다.

이제 1주일이 지나면 맥주가 1차 완성된다. 1차 완성된 맥주는 알코올이 생성돼 있지만, 청량감이 없기에 2차 발효를 시켜야 한다. 2차 발효 준비는 1리터씩 병입한 맥주에 설탕 5g 정도 넣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다시 1주일을 놓아두면 병 안의 효모가 설탕을 먹고 미세하게 발효되면서, 병 안에 탄산이 가득해지게 된다. 빚은 지 2주일 뒤면, 거품이 풍부하고 맛과 향이 짙은 수제 맥주가 완성된다. 

흑맥주 스타우트를 빚어보고 나니, 검은색이 어디서 오고, 알코올이 들어간 더치 커피 같은 쓴 맛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 수 있었다.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힘들게 만든 만큼, 맛에 대한 기대는 커진다. 그 맛이 정교하거나 뛰어나지 않더라도 맛과 향을 이해하는 지름길은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다.

스타우트 맥즙을 받아내고 있다.
 스타우트 맥즙을 받아내고 있다.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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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수제맥주, #맥주, #스타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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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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