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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바람꽃 경기중부에도 봄꽃이 피어났다. 바람꽃 중에서 변산바람꽃과 더불어 선두를 다투며 피어나는 너도바람꽃. ⓒ 김민수
봄비가 한껏 내리고 며칠째 따스한 날씨가 이어진다. 남도에는 이미 봄꽃 소식이 분주하게 올라오지만 경기중부지방은 아직 간헐적으로 꽃소식이 올라올 뿐이다. 이제 피어날 때가 되었다 싶어 집을 나섰다.

며칠 전에 내린 비에 계곡물이 등산로까지 넘쳐 흐른다. 이제 그늘진 곳에서나 간혹 얼음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니 따뜻한 갈색의 낙엽들 속에는 수많은 씨앗들이 피어날 꿈에 부풀어 있을 것이다.
너도바람꽃 너도바람꽃이 북상에 봄은 한 발자욱 성큼 더 다가왔다. ⓒ 김민수
평년 이맘때쯤이면 내가 찾는 그곳 어디쯤에는 노루귀와 너도바람꽃이 피어있을 터이고, 운이 좋으면 처녀치마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숲길에는 다람쥐들이 분주했다. 아직은 이른지 꽃들이 피어난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여보, 10년 전엔 저기 아래쪽에서도 처녀치마를 봤는데 말이야."
"다음날 다시 보려고 왔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죠?"
"꽃들이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 같아. 사람들이 귀찮게 하니까 싫은가봐."

그랬다. 예전 같으면 산행을 시작하면 그리 오래지 않아 꽃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벌써 40분째 산행을 이어가지만 일엽초와 이파리만 무성한 처녀치마 한 개체를 본 것이 전부다.
너도바람꽃 야생화사진을 담을 때에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는 것이 그들에 대한 예의다. ⓒ 김민수
아무래도 군락지까지는 가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어김없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너도바람꽃이 피어있었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까닭도 있겠지만 한 눈에 보아도 이전보다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

더군다나 지난 주말과 휴일도 봄날 같았으니 야생화를 사랑하는 분들이 다녀갔을 것이다. 허긴, 나도 그 소식을 듣고 서둘러 산행을 한 것이다.

야생화 군락지에 서면 아무리 조심해도 그들을 밟게 된다. 작은 야생화를 담을 때에는 땅에 엎드려서 찍을 때가 많아서 사진을 담고나면 애써 피어난 꽃들이 꺽여있기도 하다. 그래도 일어서는 것이 풀꽃이지만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다.
너도바람꽃 한 송이 두 송이, 무리지어 피어나면 완연한 봄날이다. ⓒ 김민수
더군다나 좋은 작품을 얻겠다고 낙엽이나 이끼들을 치워버리고 사진을 찍는다.

"춥겠다. 누가 저렇게 낙엽을 다 치웠나?"

아내는 낙엽으로 그들을 덮어준다. 그래도 그들은 차리리 난 편이다. 몰상식한 이들 중에서는 다른 이들이 똑같은 사진을 찍을까 싶어 모델이 되어준 것을 꺾어 버리거나 짓밟아 버리기도 한다. 아니면 줄기만 꺾어서 배경이 좋은 곳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는다.

아내의 말을 들으며, '일방적인 사랑일 뿐 내 사랑의 방식은 그들에게는 폭력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이젠 꽃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을 그만두는 것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점점 사람들에게로부터 멀어지는 꽃들과 짐승들, 짐승들이야 빠른 걸음으로 멀어질 수도 있겠지만 꽃들은 그 더딘 걸음걸이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너도바람꽃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너도바람꽃, 아직 꽃샘추위를 견뎌야만 할 것이다. ⓒ 김민수
나는 아직도 야생화를 익혀갈 무렵, 동호회원들과 출사를 간 일을 기억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눈으로만 야생화를 감상했고, 어떤 이들은 그들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고, 어떤 이들은 사진으로 담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귀한 것이라면 반드시 소유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도 있었다.

동호회에서는 야생화를 훼손하는 일을 철저히 금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아는 이들은 다음에라도 다시 그곳을 찾아와 그들을 소유했다.

"꽃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그때 동호회 회장 되는 이가 그 말을 받아서 "괜찮아요, 이렇게 밟혀도 피어나니까요"라고 했다. 거기에서 그쳤으면 좋았을 터인데, 그 말을 한 후에 일부러 자기 발밑에 있는 꽃을 짓밟았다. 그 이후로 그 동호회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그런 일은 아주 일부였고, 수십 년 동안 어느 꽃의 군락지든지 대부분 야생화를 사랑하는 이들로 인해 지켜졌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을 무력화 시키는 일, 심술궂은 야생화를 사랑한다는 모든 이들의 폭력을 다 합쳐도 훼손시킬 수 없는 만큼 이상을 훼손시키는 일은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평창올림픽을 앞둔 가리왕산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철조망 자연보호라는 명목으로 철조망을 묶어두었지만, 이것이 진정 자연을 보호하는 것일까? ⓒ 김민수
너도바람꽃과 눈맞춤을 하고,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돌아오는 길, 이젠 그들을 향한 발걸음을 조금은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숲길을 따라 내려온다.

그러다 '자연보호' 팻말이 붙은 어느 사유지를 본다.

철조망으로 나무와 나무 사이를 묶어 놓았고, 오래된 것들은 나무의 살을 파고 들었다. 마치, 누가 나의 목을 조르는 듯하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참으로 괴이하다. 자연을 보호하자며 출입을 금하면서 자연을 파괴하고, 꽃들은 그들을 사랑한다는 이들에게 짓밟혀버린다. 다시한번 그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었음을 반성한다.

자연이 우리에게서 멀어져간다. 그 모든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연은 인간없이 더욱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지만, 인간은 자연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자연에게 유일한 가해자인 인간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너도바람꽃, 올해 첫 눈맞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과도 이별을 해야 할 것만 같다. 그것이 그들을 진정 사랑하는 첫걸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태그:#너도바람꽃, #야생화, #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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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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