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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버지'라는 산을 건너가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에겐 산이다. 때로 인생에 처음 만나는 난공불락의 산이다. 내게도 그랬다. 그 산을 넘는 게 가장 힘들었고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산을 넘었던가?' 싶다. 어느 날 그 산이 멀어졌고, 작아졌다.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막걸리 양조장들은 술을 판다지만, 대개가 인맥을 형성해 인심을 판다. 맛을 파는 지역 양조업은 앞선 사람이 일궈놓은 바탕 위에서 뒷사람이 하기 좋은 가업이다. 술맛만 일관되게 이어가면 된다.

그런데 시절이 변했다. 지금은 술맛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아버지만 따라가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양조장이 살아남을 조건 두 가지로, 첫째 일관된 맛을 낼 것, 둘째 신상품을 개발할 능력이 있을 것을 꼽는다. 첫 번째는 아버지를 따라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뒤따라오는 아들이 해야 할 몫이다. 

양조장의 권력

동해양조장 벽면 가스배관을 활용한 트릭아트 작품.
 동해양조장 벽면 가스배관을 활용한 트릭아트 작품.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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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동해양조장을 1년 만에 다시 찾아갔는데, 변한 게 있었다. 회사의 로고가 바뀌었다. 넘실대는 파도 위로 떠오르는 해와, 출렁이는 술잔으로 떨어지는 술방울과, 발효통에서 튀어오르는 기포의 이미지를 결합시킨 로고였다.

주인이 바뀌지 않고서야 쉽게 바뀌기 어려운 게 양조장 로고다. 어떤 이유인지 서른 중반의 아들, 양민호 공장장에게 물어보았다. 2015년에 디자인 개선 사업으로 로고를 바꿨다고 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훤하다. 그 과정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많은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양조장의 권력은 정치 권력과도 흡사하다. 어느 노정객이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누는 게 아니라고 했다. 양조장도 흡사하다. 자수성가한 아버지의 처지에서, 의욕이 앞선 아들이 저지를 일을 두려워한다. 맛이라는 지각판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소비자라는 지층에서는 커다란 산사태가 일어난다. 그래서 양조장의 아버지들은 세월 속에 길들여진 맛을 아들들이 하루아침에 바꾸려는 것을 지극히 경계한다. 물론 아들들은 그게 하루아침이 아니라고 말한다.

양민호 공장장은 가업을 이은 지 10년째가 된다. 그는 '포항 사나이라면 해병대에 입대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고 해병대에 입대했다. 집에서 멀지 않는 해병대에 입대해 보게 된 놀라운 장면은 우러러보던 장군들이 마치 동네 아저씨처럼 막걸리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동해양조장에서 빚은 막걸리로. 그 순간 그는 막걸리에 자부심을 느꼈고, 가업을 잇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버지 친구 덕에 유명해진 동동주

동해양조장에서 빚는 세 종류의 막걸리.
 동해양조장에서 빚는 세 종류의 막걸리.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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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양조장이 어떻게 세대간에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는지는 지금 생산하고 있는 세 종류의 막걸리에 잘 새겨져 있다. 가장 오래된 제품은 밀막걸리다. 밀막걸리를 맛보니, 포만감이 느껴지고 맛이 금방 입안에서 퍼졌다. 쌀 30%에 밀가루 70%로 걸쭉하면서도 밀가루 특유의 부드러움이 있었다. 아버지가 동해양조장을 인수한 1985년에 빚어지던 막걸리에 가장 가깝다.

그 당시는 밀막걸리만을 만들 수 있었다. 쌀막걸리가 우세하는 지금에 이르러 많은 양조장들이 밀막걸리를 버렸지만, 동해양조장은 지키고 있다. 다만 누룩은 밀가루누룩에서 쌀누룩으로 바뀌었다. 그 무렵 동해 양조장은 포항의 12개 양조장 중에서 매출 8~9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1991년에 낡은 목조 양조장을 허물고 시멘트 건물로 공장을 새로 지었다. 1990년 초반부터 쌀로 술을 빚을 수 있게 되면서, 1992년부터 동해양조장은 100% 쌀 막걸리를 출시했고, 그 제품에 힘입어 포항에서 업계 매출 5위로 올라섰다. 쌀 막걸리는 감칠맛이 있고 단맛이 도는데, 2차 발효 과정에서 탄산이 많이 잡히도록 당을 추가했다.

이 제품은 지금 동동주라는 이름으로 출시되고 있고, 포항 내연산 보경사 앞 유원지에서 각광받는 인기 상품이다. 유원지 등산객들을 겨냥한 상품이라서 상대적으로 단맛이 더 강해 피로감을 풀 수 있게 했다. 보경사와 동해양조장은 남북으로 40km나 떨어져 있는데,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아버지 친구분의 덕이었다. 아버지 친구분이 하는 음식점에서 동해막걸리를 팔아 손님들에게 큰 인기를 얻자, 상가번영회에서 전체 회의를 열어 '당신만 팔지 말고 우리도 함께 팔자'고 결의했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날, 막걸리 영일만친구의 진정한 친구는 대게였다.
 그날, 막걸리 영일만친구의 진정한 친구는 대게였다.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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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는 포항테크노파크와 포항공대의 공동 연구로 개발한, 우뭇가사리 추출 성분을 넣어 발효시킨 막걸리 '영일만친구'를 만들었다. 포항 과메기가 전국 브랜드가 되고 겨울 술 안주로 각광을 받게 되면서 '영일만친구'를 포항시 공동 브랜드로 만든 것이다. 우뭇가사리는 식이섬유 성분이 들어있어서 장 활성화에 좋고, 무색·무취·무미해 막걸리의 고유한 맛을 흔들지 않으면서 막걸리의 기능성을 강화시켜준다. 영일만친구는 100% 쌀 막걸리로, 기존 제품 동동주보다는 단맛이 적은 깔끔하면서 상쾌한 맛이 돈다. 동해막걸리는 이 막걸리로 포항시장에서 업계 1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변해야 산다"

2011년 막걸리 인기가 한창일 때 동해양조장은 새롭게 시설 투자를 하여 2층 구조의 신 공장을 지었다. 제조장 2층에는 원료 처리실과 발효실이 있고, 1층에 제성실과 병입실과 창고가 있다. 이때 발효통의 술 온도 관리를 자동화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발효조의 온도 센서 패널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꾸고, 온도 센서와 컴퓨터를 연동시켜 프로그램 안에서 온도 제어가 되게 하고, 원격시스템과 연결해뒀다. 그래서 양민호 공장장은 외부에서도 휴대전화로 발효통의 온도를 점검하고 조절할 수 있다. 양민호 공장장은 이렇게 말한다.

"변해야 삽니다. 변하지 않은 양조장들은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포항 사람들이 애향심이 있어 지역 막걸리를 좋아하지만, 술맛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식상함을 느끼고 다른 막걸리로 입맛을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동해양조장의 발효실 온도는 휴대전화로 원격 조절된다.
 동해양조장의 발효실 온도는 휴대전화로 원격 조절된다.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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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포항에 12개였던 양조장이 절반으로 줄어 동해양조장, 포항탁주합동제조장, 청하양조장, 보경양조장, 연일양조장, 포항호미곶양조장만 남았다. 

그러면 어떻게 변해야 할까. 동해 양조장은 첨단 시설을 갖추고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데도, 양 공장장은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잠시도 쉬지 않은 파도와 같았다. 아버지는 포항 시장만 잘 지키면 된다고 하지만, 아들은 서울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도수가 높은 진한 술을 상품화시킬 궁리를 하고, 맑은 술 청주를 내놓고 맛을 보라고도 했다. 그는 만들고 싶은 술의 목록이 가득하다고 했다. 생이 다해도 그것을 다 이루기가 쉽지 않을 것처럼 말했다. 술에 대한 그의 꿈은 동해 바다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동해양조장의 발효실.
 동해양조장의 발효실.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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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동해양조장, #포항, #막걸리, #허시명,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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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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