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별> 영화 <탐욕의 별>의 한 장면. <탐욕의 별> 역시 '무비 저널리즘'의 계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 <탐욕의 별> 영화 <탐욕의 별>의 한 장면. <탐욕의 별> 역시 '무비 저널리즘'의 계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 (주)인디스토리


몇 년 전부터 '무비 저널리즘'이란 용어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용산 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2011)이 개봉될 즈음 사용된 '무비 저널리즘'은 '언론이 깊이, 또는 지속해서 다루지 않았던 사건을 적극적으로 파고들어 보도하는 영화'를 일컫는 단어다.

사람들이 익히 알았으나 시간이라는 강을 건너며 망각한 사실을 재조명하거나, 권력의 힘으로 묻혔던 사건을 다시 점화하는 '무비 저널리즘'의 대두는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는 말이다. 불의와 부조리함으로 축적된 대중의 분노는 고발의 목소리를 잉태하는 법이고, 영화는 '무비 저널리즘'의 형식을 빌려 사회적인 담론을 형성하고 대안을 찾고자 했다.

<맥코리아>(2012), <MB의 추억>(2012), <천안함 프로젝트>(2013), <다이빙벨>(2014), <명령불복종 교사>(2014), <업사이드 다운>(2015) 등 다큐멘터리 장르와 <도가니>(2011), <부러진 화살>(2012), <남영동 1985>(2012), <또 하나의 약속>(2013), <카트>(2014), <제보자>(2014), <소수의견>(2015) 같은 극영화 스타일의 사회 고발 영화를 폭넓게 아우르며 '무비 저널리즘'은 더 나은 내일을 꿈꾸었다.

감독의 균형 감각과 주관적인 입장 그 사이 <탐욕의 별>

 감독은 끝내 부자가 되기 위해 괴물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을 목격한다.

감독은 끝내 부자가 되기 위해 괴물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을 목격한다. ⓒ (주)인디스토리


'론스타 펀드'로 대표되는 투기자본을 다룬 경제 다큐멘터리 <탐욕의 별> 역시 '무비 저널리즘'의 계보에 속한다. 연출을 맡은 공귀현 감독이 투기자본에 관심을 두게 되었던 계기는 지인들과 가졌던 술자리에서라고 한다. 미국 금융위기가 지나간 직후라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신용도가 일정 기준 이하인 저소득층을 상대로 한 미국의 주택 담보 대출)'이 대화의 화제에 올랐는데, 파생상품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선배의 말에 알 수 없는 거부반응을 느꼈다고 감독은 밝혔다.

집으로 돌아와서 프라임, 서브프라임, 파생상품, 리먼 브라더스 사태 등을 인터넷으로 조사한 공귀현 감독은 범죄드라마에 가까웠던 금융업자들의 행태를 접하며 자연스럽게 국내 IMF 사태와 론스타 사건으로 눈길을 돌렸다. 인터넷과 관련 서적을 찾아보던 그는 이 문제가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외국 투기자본에 의한 피해를 우리의 세금으로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졌다. 감독의 바람은 <탐욕의 별>의 새싹으로 돋아났다.

1997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IMF 경제 위기에서 출발한 <탐욕의 별>은 유수 기업의 매각 사례와 이 과정에서 벌어진 약 300조 원의 국부 유출 등을 많은 참고 자료, 여러 관련자의 증언, 전문가들의 진단을 통해 짚어간다. 철저한 균형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공귀현 감독은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IMF 경제 위기 당시 우리나라의 입장에선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거의 없었다는 음성도 넣고, 금융 산업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기보단 일부 비양심적인 투기자본의 과도한 이윤 추구를 문제점으로 지적해야 한다는 주장도 담았다.

울분과 분노로 채워진 폭로 성격의 다큐멘터리로 갈 뻔했던 <탐욕의 별>은 중반 이후 의외의 방향으로 선회한다. 피해자였던 한국이 가해자로 변해가고 있음을 영화는 발견한 것이다. 공귀현 감독은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동시에 창작자의 시선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주관적인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는 다큐멘터리의 속성을 잘 아는 듯하다. 영화 <탐욕의 별>에는 그 대상이 한국이든 아니든 금융 산업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묻어난다. 영화는 끝내 부자가 되기 위해 괴물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을 목격한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많은 이들이 주식 투자에 뛰어들어 일확천금을 노리는 그릇된 배금주의가 만연하고, 정부는 '한국의 골드만삭스'를 키우자는 목표 아래 투기자본에 당했던 수법을 그대로 답습하며 투기를 조장하는 실정이다. 노동이 없으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지만, 노동이 존경받지 못하는 세상은 도입부에 강제로 해고당한 노동자들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함축된다. 정당한 파업권을 행사하는 노동자들은 도리어 돈과 권력의 무자비한 진압 아래 고통받고 신음한다. 금융 산업의 달콤한 왕국 아래엔 몸부림치는 노동자들의 피눈물이 흐르고 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저서 <선악을 넘어서>에서 "만일 네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네 안으로 들어가 너를 들여다본다"고 했다. 이것은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 괴물처럼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300조 원이란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배운 우리가 배운 교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탐욕의 별>은 괴물처럼 변한 우리를 거울로 비추며 탄식한다. 그리고 "내 안의 론스타, 우리 안에 론스타가 있다"란 대사를 자조하듯 내뱉는다. 우리는 어두운 밤하늘에 이기적인 탐욕의 별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이타적인 나눔의 별로 기억될 것인가? 괴물과 싸우기 위해 먼 길을 온 우리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영화는 묻고 있다.

4월 27일 개봉.

<탐욕의 별> 포스터 27일 개봉하는 영화 <탐욕의 벌> 포스터. 무비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또 하나의 명작이 될 수 있을까?

▲ <탐욕의 별> 포스터 27일 개봉하는 영화 <탐욕의 벌> 포스터. 무비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또 하나의 명작이 될 수 있을까? ⓒ (주)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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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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