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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언론사 편집 보도국장 오찬 때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지난 26일 언론사 편집 보도국장 오찬 때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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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치킨공화국도 아니고..."

지난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 계류 중인 파견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했다는 발언의 일부다. 중장년층이 퇴직 후 자영업으로 몰리는 현실을 '치킨공화국'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다섯 건물에 하나씩 치킨집, 편의점, 프랜차이즈 점포가 즐비하니, 치킨공화국이 아닌 게 아니라 맞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청년 실업자와 강제로 밀려난 조기 퇴직자, 자영업자와 프랜차이즈 점주. 모두가 살기 위해 비극을 남에게 떠넘겨야 하는 '치킨 게임'의 선수들. 그래서 우리들 대부분은 치킨 게임을 숙명처럼 해내야 하는 치킨공화국 국민들이다.

살기 위해 치킨 게임을 벌여야 하는 치킨공화국

남쪽에서 들려오는 봄소식은 숨 가쁘다. 대량해고, 협력업체의 줄도산, 조선·해운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 불가피. 날마다 숫자가 더해지는 실직 예상 인원 기사는 제2의 IMF 사태가 오는 것 아닌지 두렵게 한다. 더구나 위기 해법을 노동개혁(?)과 인력 감축을 전제로 한 구조조정에서 찾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은 국민들에게 안심과 희망을 주기는커녕 불안만 키우고 있다. 내수와 수출이 모두 멈춰 버린 대한민국. 대체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누구 하나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4.13 총선 이전만 해도 아직은 견딜 만하다고 장담하던 정부였다. 1월 13일 대통령은 신년대국민 담화에서 경제와 안보가 동시에 위기를 맞는 비상 상황임을 역설했다. 그러나 3월 7일 수출은 감소폭이 줄어들었고 소비는 증가세가 유지되고 있다며 낙관론을 폈다. 이에 경제부총리는 "최근 경제 지표를 보면 어려운 가운데 긍정적인 면이 보이고 있다"고 화답했다. 야당의 경제심판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해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것도 총선이 있기 전인 3월 21일의 일이다.

울산 동구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 조선소인 현대중공업.
 울산 동구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 조선소인 현대중공업.
ⓒ 울산시 조선해양산업 현황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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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위기를 키운 데는 박근혜 정부의 오락가락한 경제 진단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정부가 각종 입법을 추진할 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세월호 대참사 진상 규명 등 정부가 위기에 몰렸을 때 국회 압박과 책임 회피를 위해 꺼내들었던 것이 위기론이었다. 반대로 정권의 치적을 홍보하거나 선거에 임박해서는 낙관론을 쏟아냈다. 현상 분석이 아니라 정권의 요구에 의해서 냉온탕을 오가는 경제 진단. 올바른 진단이 없었으니 올바른 대응은 불가했다. 벌써 3년 전부터 제기된 조선·해운의 이상기류. 정부가 진단을 못한 건지, 알고도 방치한 건지 대답을 듣고 싶다.

박근혜 정부의 나쁜 경제정책은 또 있다. 비리기업 총수를 사면하고 부실기업에게 막대한 국민 혈세로 지원하는 경제 살리기가 그것이다. 노동자의 일자리 때문에, 국가 기간산업이기 때문이라지만 국민 혈세와 해고의 고통으로 되살아난 기업이 사주 일가와 대주주의 이익만 챙긴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위기에 대응한다고 수천억 원을 사내유보금으로 쌓아놓고도 비정규직을 양산해온 기업. 그 중에는 IMF 경제위기 때 국민들이 금반지를 모아서 위기를 탈출한 기업도 없지 않다.

'위기→ 구조조정→ 대량해고→ 국민혈세 투입→ 회생' 나쁜 악순환

방만한 경영, 경쟁력 저하, 관치 경제가 기업의 부실을 불러오고 정부는 기업이 망하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다는 명분으로 국민 혈세 수천억을 쏟아붓는 악순환. 그 잘못된 순환에서 국민은 매번 부실기업을 살릴 물주였고, 기업의 회생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잘려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소모품 같은 존재였다.

조선업의 불황은 세계적 경기침체가 원인이라는 것이 정부를 위시한 대부분 언론의 진단이다. 그러나 지난 2012년부터 위기의 전조가 있었음에도 당장의 호황에 눈이 멀어 장기발전 전략, 고용 문제, 물량 문제를 등한시한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불황의 내적 요인이다. 일각에서는 해양플랜트 산업의 과잉·중복투자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세계적 경기 침체 탓만 하기에는 정부의 경제정책은 너무 근시안 시각이며, 기업은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2, 3만 명의 해고가 예상되는 조선·해양 산업의 위기를 대하는 정부와 기업의 대응방식 또한 구태의연하고 음모적이다. '위기→ 구조조정→ 대량해고→ 국민혈세 투입→ 회생'이라는 도식을 앞에 놓고 정답 맞추어 가는 듯한 대책은 할 말을 잃게 한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대통령은 치킨집을 줄여야 한다고 파견법이 통과를 주문하지 않나, 대량해고를 기반으로 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노동개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해 불가한 발언을 연이어 쏟아내고 있다.

이쯤에서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대량해고를 꼭 기반으로 해야 하는지, 2, 3만 명을 해고하고 수천억 원의 혈세를 지원해 기업회생을 해야 할 이유에 정당성이 있는지 반드시 짚어져야 한다. 조선·해양업의 침몰은 바라지는 않지만 정부, 채권단, 기업은 어떤 희생이나 자구 노력도 없이 노동자, 그것도 비정규직, 협력업체 직원들 수만 명의 일자리를 제물 바치 듯하는 폭력적인 구조조정은 동의하기 힘들다.

경제 살리기, 재벌과 장관을 골프로 국민은 해고와 실업으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월 1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월 1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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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은 기업의 회생이 아니라 노동자의 실업대책이 우선되어야 한다. 얼마의 인원을 감축 시켜 기업을 회생 시킬지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그 많은 사람들을 해고하는 기업, 해고할 수밖에 없는 기업을 회생할 필요가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천문학적 국민 혈세를 지원하면서 인력감축을 요구할 게 아니라 사주와 대주주의 책임을 묻고 사재라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면 번번이 일어나는 구조조정은 사주에게는 부실을 털어내는 세탁기일 뿐이다. 기업의 비대와 노동자의 빈곤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내수경제 살리기라는 명목으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과 유일호 경제팀의 골프회동이 추진된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기업가와 경제 관료들의 경제 살리기는 골프 모임이고, 국민들의 경제 살리기는 금반지 모으고 저임금과 해고를 감내하는 것이란 말인가? 이 부조화를 아무런 죄책감이나 망설임도 강요하는 박근혜 정부. 조선·해양의 위기가 앞으로 닥칠 더 큰 위기의 전조일 수도 있다는데 예측하고 대비할 능력은 있는지 의심스럽다.

총선 패배를 정권의 심판이 아닌 국회의 심판으로 읽었다는 대통령. 국민들을 언제까지 '치킨공화국'이라는 오명 속에 살게 할 셈인가.


태그:#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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