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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다산오솔길의 들머리에서 만나는 두충나무 숲길. 다산수련원 옆으로 나 있다.
 강진 다산오솔길의 들머리에서 만나는 두충나무 숲길. 다산수련원 옆으로 나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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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그녀라도 만나러 가는 것 같다. 싱그러운 연초록의 신록에 눈이 호사를 누린다. 발걸음이 가볍다. 강진의 다산오솔길이다. 200여 년 전 다산 정약용(1762~1836)이 백련사의 혜장선사를 만나러 다니던 길이다. 강진만 구강포가 내려다보이는 만덕산 자락의 숲길이다.

들머리는 다산수련원이다. 수련원 옆으로 두충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두충나무 숲길이 연초록으로 눈에 부시다. 이파리나 껍질에 섬유질이 많다고 '나무면'으로 불리는 나무다. 두충나무 행렬이 줄지어 선 병정들 같다.

두충나무의 환송을 받으며 야트막한 산길을 넘으니 귤동마을이다. 다산초당의 아랫마을이다. 마을에서 초당으로 가는 길은 이른바 '뿌리의 길'이다. 길 위로 드러난 소나무 뿌리가 서로 뒤엉켜 눈길을 끈다. 모양새가 앙상하고 거칠다. 먹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민초들의 핏줄 같다.

두충나무 이파리. 봄햇살을 받은 이파리가 연녹색으로 빛나면서 눈에 부시다.
 두충나무 이파리. 봄햇살을 받은 이파리가 연녹색으로 빛나면서 눈에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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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충나무 숲길에서 만난 두충나무. 섬유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나무면, 목면으로 불린다.
 두충나무 숲길에서 만난 두충나무. 섬유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나무면, 목면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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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충나무 숲의 정자와 어우러진 두충나무 군락. 쉽게 보기 힘든 나무와의 만남이 더 반갑다.
 두충나무 숲의 정자와 어우러진 두충나무 군락. 쉽게 보기 힘든 나무와의 만남이 더 반갑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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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 길/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 지상의 바람과 햇볕이 간혹/ 어머니처럼 다정하게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뿌리의 눈물을 훔쳐준다는 것을/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로 가서/ 다시 잎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다산이 초당에 홀로 앉아/ 모든 길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정호승 시인이 노래한 '뿌리의 길' 앞부분이다. 길은 오르막이지만 험하지는 않다. 길옆으로 흐르는 작은 계곡물이 길동무가 돼 귓전을 어루만져준다. 다산의 18명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윤종진의 묘가 오른편에 있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뿌리의 길. 거칠고 앙상한 소나무의 뿌리가 땅 밖으로 드러나 있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뿌리의 길. 거칠고 앙상한 소나무의 뿌리가 땅 밖으로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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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뿌리의 길. 흙 밖으로 드러난 소나무 뿌리가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뿌리의 길. 흙 밖으로 드러난 소나무 뿌리가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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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은 뿌리의 길을 지나서 만난다. 울창한 동백숲에 둘러싸여 있다. 다산초당은 정약용이 실학을 집대성하며 후진을 양성했던 성지다. 다산은 초당 옆 동암에서 주로 생활했다. <목민심서> <흠흠신서>도 여기서 탄생했다. 제자들을 양성한 곳이기도 하다.

다산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그가 마시던 샘물 '약천'과 솔방울을 태워 차를 달이던 부뚜막 '다조'가 있다. 네모난 연못에 둥근 섬을 만들고 물을 끌어들인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도 있다. 유배에서 풀릴 날을 기다리며 바위에 새긴 '정석(丁石)'이란 두 글자도 있다. 다산 4경이다.

다산의 강진 유배는 천주교도를 탄압했던 신유박해에 이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시작됐다. 1801년이었다. 1818년(순조 18년)까지 18년 동안 계속됐다. 유배에서 풀려나서 18년을 더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아라비아숫자 18과 여러 번 엮이는 삶이다. 공교롭게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도 18번국도다.

동백숲에 들어앉은 다산초당.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 정약용이 10년 동안 살았던 산정이다.
 동백숲에 들어앉은 다산초당.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 정약용이 10년 동안 살았던 산정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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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각. 다산 정약용이 마음 답답할 때 찾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강진군에서 누각을 세웠다.
 천일각. 다산 정약용이 마음 답답할 때 찾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강진군에서 누각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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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루에서 내려다 본 강진만 풍경. 가운데 보이는 섬이 양쪽으로 출렁다리로 연결된 가우도다.
 해월루에서 내려다 본 강진만 풍경. 가운데 보이는 섬이 양쪽으로 출렁다리로 연결된 가우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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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의 동쪽 산마루에 천일각이 있다. 구강포가 내려다보이는 누각이다. 다산이 마음 답답할 때마다 자주 찾았음직한 곳이다. 천일각을 지난 숲길은 해월루로 연결된다. 강진만을 내려다보는 2층의 누각이다. 바다 한가운데에 가우도가 떠 있다. 양쪽으로 출렁다리가 연결된 작은 섬이다. 최근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여행의 출발지점이다.

해월루에서 길은 백련사로 이어진다. 내리막길을 나무계단으로 단장해 놓았다. 유려하게 구부러지는 길이 예쁘다. 호젓하게 혼자 걸으니 더 좋다. 혼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린 아이들이 걷기에도 부담 없겠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한 곳에는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한 곳에는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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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길. 길가에 야생의 차밭이 지천이다. 왼편 위로 보이는 산이 만덕산이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길. 길가에 야생의 차밭이 지천이다. 왼편 위로 보이는 산이 만덕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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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이 숲길로 백련사를 오가며 혜장선사를 만났다. 다산과 선사는 유학과 불교를 논하고, 차와 세상 얘기도 나눴다. 대둔사 출신의 학승 혜장선사는 다산의 지적 갈증을 풀어주는 청량제 같은 존재였다. 다산은 언제라도 혜장이 찾아올 것에 대비해 문을 열어뒀단다. 혜장은 비 내리는 깊은 밤에, 기약도 없이 다산을 찾아오곤 했다.

'나그네는 요즘 차를 탐식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겸하여 약으로 삼고 있소...(중략)... 죽은 뒤 고해의 다리 건너는데 가장 큰 시주는 명산의 고액이 뭉친 차 한줌 보내주시는 일이라 하오. 목마르게 바라는 이 염원, 부디 물리치지 마시고 베풀어 주소서.'

다산이 혜장에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보고 싶은 친구를 가진 기쁨과 그 친구로 인한 행복이 묻어나는 글귀다. 만나면서 반가움을 나누고, 헤어지며 마음 아파하던 그 모습이 눈에 보일 듯하다.

강진만을 배경으로 펼쳐진 차밭. 백련사 스님들의 귀한 양식이다.
 강진만을 배경으로 펼쳐진 차밭. 백련사 스님들의 귀한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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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차밭에서 아낙네들이 찻잎을 따고 있다. 지난 4월 26일이다.
 백련사 차밭에서 아낙네들이 찻잎을 따고 있다. 지난 4월 26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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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절집 식구들의 친근한 벗인 차밭도 백련사로 가는 숲길에 있다. 뒤에서 만덕산이 보듬고, 앞으로는 강진만이 펼쳐지는 차밭이다. 차밭에서 찻잎을 따는 아낙네들의 자태가 다소곳하다.

백련사는 천태종이 백련결사의 터전으로 삼았던 절집이다. 백련결사는 불교 정화·개혁운동의 하나였다. 절(寺) 이름에 모일 사(社)를 쓰기도 한다. 절집을 수백 년 된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감싸고 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하다. 보름 전까지만 해도 동백꽃과 낙화로 감성을 자극했던 숲이다.

절집에서 내려다보는 강진만 풍경도 한 폭의 그림이다. 지난 겨울에 큰고니 노닐던 '백조의 호수'다. 백련사에 딸린 찻집, 만경다설의 차맛도 그윽하고 깊다.

백련사 동백숲길. 동백꽃은 거의 떨어지고 없지만, 동백나무 빽빽한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 넉넉해진다.
 백련사 동백숲길. 동백꽃은 거의 떨어지고 없지만, 동백나무 빽빽한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 넉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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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국도 목포요금소를 지나 죽림나들목에서 순천방면 남해고속국도를 탄다. 강진무위사나들목으로 나가 완도방면 18번 국도를 타고 계라삼거리에서 좌회전, 석문공원을 지나면 왼편에 다산수련원이 있다. 내비게이션은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다산수련원길 33.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두충나무, #다산오솔길, #다산초당, #백련사, #뿌리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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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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