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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0대 총선을 17일 앞둔 3월 27일 광주 일정을 소화했다. 이날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김 대표가 무릎을 꿇은 채 묘비를 살펴보고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0대 총선을 17일 앞둔 3월 27일 광주 일정을 소화했다. 이날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김 대표가 무릎을 꿇은 채 묘비를 살펴보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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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 이후 광주는 매우 유동적인 선거패턴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계열 정당의 중심성은 그대로 살아 있지만 특정 인물이나 특정 상황이 결합하면 언제라도 민주당 계열 후보가 낙선할 수 있는 그런 유동성이다. 심지어는 새누리당 당선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지역이 됐다. 유권자의 정치성향이 변했다는 증거는 희박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원인은 '민주당'에 있다.

이번 4·13총선 결과에 대한 '사후평가'가 아니다. 지난해 12월10일 초판 발행한 <내일의 권력>(단비P&B) '제13장 최근 선거로 본 호남 유권자 특성'의 한 대목이다.

국민의당 완승, 더민주 참패, 새누리 약진으로 요약할 수 있는 4·13총선 호남의 결과가 총선 넉달 전 발행한 책 <내일의 권력> 속에 예측되어 있는 셈이다. 다소 뭉뚱그려져 있는 문장이어서 '정확한 예측'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제13장'을 꼼꼼히 독해하면 더민주 호남참패라는 4·13총선의 결과가 그다지 낯설지 않다. 제13장을 좀 더 살펴 보자.

흔히들 호남을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부른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이야기이다. 민주당 지지가 가장 강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텃밭'은 옳다. 무조건 민주당을 지지하는 지역이라는 뜻이라면 '텃밭'은 옳지 않다.

이 같은 논리의 근거는 여럿이다. 그 중 하나로 <내일의 권력>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 하에서 치른 2004년 제17대 총선 결과를 제시한다. 이 선거에서 광주·전남·전북 31개 지역구에서 민주당은 겨우 6석을 지켰다. 탄핵 후폭풍이 너무 거셌기 때문에 대부분 이 결과를 자연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내일의 권력>은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새정치연합 지도부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2014 지방선거

열린우리당 바람이 허리케인 수준으로 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정치사에서 '텃밭'이 이처럼 무참하게 황폐화한 경우는 없었다"며 "새로운 세력을 선택할 수 있는 선거 구도가 형성되자 미련없이 판을 갈아엎은 사건이었다"는 것이 <내일의 권력>의 진단이다.

이후 선거에서도 호남은 '민주당'이 아닌 제3세력 찾기, 혹은 민주당 심판하기 투표성향을 계속 보여왔다. 하지만 당 지도부, 정치부 기자, 정치평론가 등 이른바 정치전문가그룹들은 호남에서 '민주당' 후보의 당락에만 관심을 보였다. 세부적인 대목은 주목하지 않았다.

예컨대 <내일의 권력>은 2012년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광주에서 얻은 정당득표율 18.6%를 제시한다. 노동자의 도시라는 울산의 16.3%보다 더 높은 비율이었다. 울산 다음으로는 전남 14.77%, 전북 14.15% 순이었다. 새누리 대 민주당 양당 구도였을 때 '제3당'인 통합진보당에 가장 많은 표를 준 곳이 호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표는 정치적 공론장에서 부각되지 않았다.

<내일의 권력>이 제시한 또 하나의 예는 2014년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당선 결과이다. 당시 전국 무소속 당선 기초단체장은 29명이었는데 절반이 넘는 15명(전북7/14, 전남8/22)이 호남에서 나왔다. 인물선호와 정당귀속성이 치열하게 경합을 벌인다는 점에서 기초단체장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와 가장 닮은꼴이다.

당시 당선된 호남 무소속 단체장 대부분은 '민주당' 소속이었거나 '민주당' 후보로 출마가 가능했던 인물들이었다. 이 말의 본 뜻은 잘못된 당의 공천 때문에 무소속의 압도적 당선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 누구도 책임은커녕 반성도 하지 않았고, 이 결과를 눈여겨 보는 이도 없었다.

2014지방선거 직후 치른 7·30 재보궐선거 순천·곡성에서는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리고 2015년 4월29일 재보궐선거 광주서구을에서는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 두 선거를 <내일의 권력>은 " '민주당'과 호남 표심의 지난했던 길항 과정이 한 매듭 지은 날들이었다"고 평가한다.

새누리와 무소속 후보를 당선시킨 호남민심의 속내는 "(민주당이) 져도 진 줄을 모르니까 분명하게 졌다는 걸 상기시켜 주자"는 것이었다고 <내일의 권력>은 적고 있다. 또한 "광주전남에서는 '지고도 기분 좋은 선거는 처음이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내일의 권력
▲ 내일의 권력 내일의 권력
ⓒ 단비P&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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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권력>이 제시하는, 호남민심이 돌아선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민주당'은 호남표를 당연하게 여겼고, 그렇기 때문에 민심을 거스르는 중앙당의 공천 횡포가 자행되었으며, 결과적으로 호남의 유권자들은 "무시당했다"는 정서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부여당과의 '정치게임'이라도 잘하면 공천 횡포를 감수할 수 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지고, 공천도 맘에 들지 않고, 야당역할도 못하는 '제1야당'을 계속 밀어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 호남민심이 돌아선 핵심 내용이라는 주장이다. <내일의 권력>은 호남 표심을 최종적으로 이렇게 요약한다.

('민주당'이 '부분적'으로 패한 지난 시기 여러 차례의 선거 결과는) 민주당에 대한 경고이자 한국정치를 진화시키고자 하는 개미권력의 집합의지이다. 무서운 것은, 이런 결과를 내기 위해 호남 사람들은 어떤 결의도, 어떤 모임도, 어떤 음모도 꾸미지 않았다는 점이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행사하는 권력이 가장 무섭다. 호남의 유권자들에게서 나는 가장 무서운 권력의 속성을 발견한다.

호남 유권자 권력의 무서운 속성은 4·13총선에서 분명하게, 전면적으로 드러났다. 호남 사람들 스스로도 당황해할 만큼 '편향된' 결과였다. 하지만 편향이라는 구체성을 걷어내면 '민주당 심판'이라는 본질은 그대로다. 이 본질이 오래 전부터 예고되었다는 것을 <내일의 권력>은 총선 4개월 전에 밝혔다.

이러한 정황들을 더민주 지도부가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분명치 않다. 알았다면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은 점이 문제고, 몰랐다면 몰랐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문제이다. 선거 때만 되면 호남을 신주단지 모시듯 추켜세우면서 정작 진정성있는 조치나 접근은 없었다는 말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의 권력>의 저자는 광주광역시 민형배 광산구청장(2012·2014 재선)이다.  민 구청장은 더민주 소속이고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 비서관으로 일했다. 또한 더민주 소속 전국 기초단체장 조직인 '자치분권민주지도자회의'의 홍보기획 위원이기도 하다. 민 구청장이 더민주 지도부 및 수도권 정치권과 교감이 활발한 단체장이라는 점은 지역사회에서 공인된 사실이기도 하다.

이 같은 사실들을 종합하면 광주, 나아가 호남의 비관적 전망이 더민주 지도부에 '최소 수준' 만큼은 전달됐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더민주는 호남민심을 되돌리기 위한 의미 있는 조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심각했다.

단적인 예로 광주 전체 8개 선거구 중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가 경쟁을 통해 후보를 정한 곳은 3군데 뿐이었다. 단수공천이 5군데였다. 아무리 당세가 위축됐다고는 하지만 광주에서 더민주 후보가 정해지는 과정은 어이없는 것이었다. 더민주가 호남공천에 전혀 공을 들이지 않았다는 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전 선거의 흐름, 더민주의 공천과정 등을 보면 4·13총선 호남의 결과가 "예고되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듯 하다.

일상의 정치는 보이지 않고 여전히 '큰 거' 한 방에 몰두

<내일의 권력> 18쪽에는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 대한 '예고'도 들어 있다. 독해의 편의를 위해 지금 시기에 맞춰 약간 각색했다.

대통령 권력만 권력이고, 중앙정부만 정부라는 인식이 야권 전체를 무기력에 빠뜨린다. 지지자와 야당 모두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일을 찾지 못하고 '다음 대선'만 손꼽아 기다리는 정치의 진공상태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인식은 제1야당에게 무능을 방어할 수 있는 피난처를 무한대로 제공해 준다. "왜냐하면 권력이 우리 손에 없기 때문에..."라는 마법의 언어로 야당 국회의원들은 정치적 안전지대를 확보한다.

광장의 열기, 시민권력, 지방정부의 중요성은 무시된다. 정부'들', 권력'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데도 활용 가능한 권력은 오직 청와대 하나밖에 없다는 태도는 정치적 진지 구축을 위한 한땀 한땀의 노력을 부질없는 것으로 만들고 청와대 고지를 향한 "돌격 앞으로"만 외치게 만든다. 지방선거든 총선이든 재보궐선거이든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더민주의 '정권교체' 구호가 전형적인 현상이다.

더민주는 벌써부터 차기 대선 후보 문제로 내홍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어부지리인줄 빤히 알면서도 '누구 덕분'에 제1당이 가능했다는 논공행상부터가 황당하다. 이미 표면화한 당권 다툼도 몹시 불편하다. 일상의 정치는 보이지 않고 여전히 '큰 거' 한 방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내일의 권력>은 "정치적 진지 구축을 위한 한땀 한땀의 노력"을 기울이고 "텅빈 정치적 진공" 공간을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일"로 채워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상의 정치를 복원하라는 주문이다. 그렇게 읽히고, 그것이 전적으로 옳다고 본다.

<내일의 권력>은 호남 광주의 한 기초단체장이 쓴 책이다. 이 책은 총선과 대선에 임해야 하는 자세, 각 급 정치권력의 역할에 대한 여러 가지 암시로 가득하다. 어느 경우에는 매우 구체적인 대안도 담겨 있다. 중앙정치를 담당하고 있고, 정권교체를 그토록 갈망한다는 더민주 국회의원들이 꼭 읽어봤으면 싶다.

이 정도야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면, "그동안 왜 그렇게 했니? 그리고 지금도 왜 그렇게 하고 있니?"라고 서울말로 물어보고 싶다. 답변은 듣고 싶지 않다. 알고도 하지 못하거나, 안 하는 정치가 가장 나쁘다. 나쁜 정치에 무얼 기대하겠는가. 호남은 여전히 두 개의 선택지를 갖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정우 기자는 광주에 있는 더좋은자치연구소 연구실장입니다.



태그:#더민주, #호남, #민형배, #내일의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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