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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유적인 이인영 생가지 안이 주차장이 되었다
▲ 주차 향토유적인 이인영 생가지 안이 주차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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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부끄럽다. 외지인들이 와서 이곳을 찾기라도 한다면 무슨 망신살인가? 더구나 요즈음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와 지역 문화재 관람을 하고 있다. 지역마다 중국인 관광객(요우커)을 비롯해 외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이 지역에 들어와 쓰고 나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문화재를 이용한 지자체의 수입 증대는 지역 경제에 도움을 준다.

경기도 여주는 문화재가 많은 곳이다. 남한강가에 자리 잡고 있는 신륵사를 비롯해, 북내면 상교리 고달사지 등 불교유적은 물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 그 외에도 여기저기 많은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이 문화재를 잘 이용한다면 적지 않은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여주시다.

지난 1일, 4월 30일부터 시작된 여주 도자기축제를 돌아볼 겸 그곳으로 향했다. 휴일인데도 예년보다 많은 사람이 찾아오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오전 11시) 축제장 안은 그렇게 사람들로 붐비지 않았다. 매장 안에는 물건을 진열해 놓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 관계자들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상교리 이인영 생가를 찾아가다

의병총대장 이인영이 태어난 생가지
▲ 생가지 의병총대장 이인영이 태어난 생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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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축제장을 돌아본 뒤 북내면 상교리로 향했다. 문화재 답사를 하러 다니다가 보면 꼭 짚고 넘어가는 게 있다. 인근에 있는 문화재를 한 번 돌아보는 것이다. 혹 문화재가 누군가에 의해 훼손이라도 됐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문화재를 답사하면서 생긴 버릇이다.

여주시 북내면 상교1길 119-16에는 여주시 향토유적 제17호(2011년 11월 7일 지정)인 의병장 이인영의 생가가 있다. 이인영은 여주 사람으로 고종 4년인 1867년 여주 북내면 상교리에서 태어났다. 이인영의 생가 앞에는 의병대장 중남 이인영 기념비가 서 있다. 이인영은 원수부 13도 의병총대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인영은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유인석·이강년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강원도 춘천과 양구 사이에서 일본군과 싸우고 유인석의 제천전투에 참여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후 부친의 병환으로 인해 의병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의병이 재기하자, 그해 9월 원주에서 의병원수부를 설치하고 관동창의대장에 올랐다.

관리를 하지 않아 불썽사납게 일어난 초가지붕
▲ 초가지붕 관리를 하지 않아 불썽사납게 일어난 초가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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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11월 전 병력을 24진으로 하는 13도 의병연합부대를 편성한 이인영은 원수부 13도 의병총대장에 추대됐다. 군사장에 허위, 관동총대장에 민긍호 등을 선정한 뒤, 일거에 서울로 진격해 통감부를 격파하고 조약을 무효로 만들어 국권을 회복하고자 의결했다. 그러나 각 도의 의병 중에는 제 날짜에 도착을 하지 못한 자가 많았고, 기밀을 알아차린 일본군이 먼저 공격을 해옴에 따라 다시 여주까지 퇴각했다.

여주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패한 이인영은 대치 중이었던 1908년 1월 28일 문경에 거주하던 부친의 사망소식을 듣게 됐다. 이인영은 "충은 효이고, 효는 충이다"라는 신념을 갖고 후사를 군사장인 허위에게 맡기고 본가로 급히 내려갔다. 부친의 장례를 치른 후에는 재기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 일본 헌병에 잡혀 순국했다.

폐허가 된 이인영 생가... 정말 부끄럽다

대청에는 오래도록 치우지 않은 짐승의 배설물도 보인다
▲ 대청 대청에는 오래도록 치우지 않은 짐승의 배설물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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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문화가 대세라고 한다. 한류열풍을 타고 지자체는 물론 각 문화예술단체들도 문화콘텐츠를 개발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보면 이인영의 생가는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울 수 있는 교육 자료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특히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이인영 이야기는 본보기가 될 수 있는 교육적 가치가 있다.

지난 1일 찾아간 상교리 이인영 생가는 '창피했다.' 남들이 볼까 얼굴이 화끈거린다. 향토유적으로 지정을 했으면 당연히 관리도 해야 한다. 하지만 생가지는 주차장이 돼 있었다. 생가지 이인영 기념비 안쪽으로는 차량이 주차돼 있었고, 생가지의 초가지붕은 짚이 바람에 들고 일어서 까치집이 됐다.

부엌 집기대신 불필요한 것들만 쌓여있다. 접이식 침대도 보인다.
▲ 부엌안 부엌 집기대신 불필요한 것들만 쌓여있다. 접이식 침대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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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에는 짐승의 배설물이 굴러다니고 있고 부엌문을 열어보니 누군가 이곳에서 잠이라도 자려고 했는지 접이식 침대까지 한 구석에 놓여있었다. 먼지는 수북이 쌓여있고 초가 이엉은 언제 갈았는지 짚이 시커멓게 변했다. 게다가 바람에 날려 들고 일어나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것이다.

국기지정문화재나 지방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문화재 관리는 훌륭하다. 하지만 정작 지역의 인물로 모든 사람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이인영의 생가지는 그야말로 꼴불견이었다. 어찌 지역 향토유적 관리를 이렇게 소홀히 할 수 있단 말인가? 여주시는 조속한 시일 내에 이인영 생가지를 재정비를 해야 한다. 이런 꼴을 보일 것 같으면 아예 이인영 생가지 안내판을 없애야 하지 않을까? 이런 모습을 관광객들에게 보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와 관련해 여주시 문화재 관련 담당자는 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 달에도 나가서 확인했다, 이인영 생가는 개인 소유이기 때문에 시에서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라면서 "초가 이엉엮기는 추경 예산을 세워 교체할 생각이다, 그동안 관리가 미흡한 점도 있었지만 앞으로 좀 더 세심하게 신경을 쓰겠다"라고 해명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타워와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인영 생가, #여주시 북내면, #향토유적, #관리소홀, #초가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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