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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에서는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다시 봄이 올 거예요>(창비, 2016, 아래 '다시 봄')을 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봄>에 담긴 10대들의 목소리를 좀 더 깊이 듣고 새로운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위해 <오마이뉴스>에 '<다시 봄>을 읽다'라는 제목으로 여섯 차례 기획 연재를 진행합니다. 

그 두 번째 글인 이 글은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김승섭 교수가 쓴 글입니다. 김승섭 님은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 및 가족 실태조사' 연구를 하고 있는 연구자로서 우리가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다시 봄>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 세월호 참사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해야 하는 이유를 글로 적어 보내주셨습니다. - 기자말

힘든 날이었다. 옆 차선에서 끼어들려고 하면 경고하듯이 경적을 울렸고, 그에 격분한 누군가가 내게 한 마디만 하면 차문을 열고 나가서 멱살을 잡고 싸울 것 같았다. 하필이면 그 날이 내가 일하는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2016년 입학식이 열린 날이었다. 창 밖으로는 따뜻한 햇살 아래 이제 막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들이 부모님과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걷고 있었다.

학교 주차장에 들어가기 전 지나가야 하는 마지막 횡단보도 앞에 도달했을 때, 건너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 줄이 끊기지 않았다. 슬금슬금 자동차를 움직이는데, 사람들이 계속 꼬리를 물고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몇 초 동안 경적을 미친듯이 세게 울렸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멈춰서서, 온통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황급히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우고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왜 이러지. 왜 이러지. 정신을 차리고 학교 연구실로 걸어 올라오는데, 무엇인가가 가슴으로 치밀어 올랐다. 연구자인 내가 이런데, 당사자인 그들은 그동안 얼마나 외롭고 답답했을까.

연구자니까 나는 괜찮을 줄 알았다

'1020톡톡, 토크 콘서트'에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를 대표하여 김인기씨와 박예나씨가 참석했다. 생존학생을 대표하여 박준혁 학생이 참석하여 서로의 입장과 상처와 아픔을 진솔하게 꺼내놓았다.
▲ 2년 만에 한 자리에서 진솔한 얘기 나눈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와 생존학생 '1020톡톡, 토크 콘서트'에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를 대표하여 김인기씨와 박예나씨가 참석했다. 생존학생을 대표하여 박준혁 학생이 참석하여 서로의 입장과 상처와 아픔을 진솔하게 꺼내놓았다.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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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부터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 및 가족 실태조사' 연구를 맡아서 시작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 자문을 구했다. 어떤 마음으로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지, 어떻게 세월호 피해자들에게 다가가야 하는지 대해 물었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가까이서 함께 했던 그들이 내게 말했다.
"감정 이입을 하지 마세요. 그게 참 어려운데, 그래도 최대한 마음의 거리를 두려고 애를 쓰세요. 그래야 계속해서 함께할 수 있어요."

세월호 참사의 아픔은 헤어나올 수 없는 심연과 같아서, 피해자들의 마음을 공감하다 보면 끝도 없이 가라앉아 감당할 수 없게 될 수 있다고. 나는 괜찮을 줄 알았다. 진도 팽목항으로 찾아가고, 광화문에서 유가족과 수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그들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살아남은 생존 학생과 그 가족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서 분석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심층 인터뷰를 하다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울컥울컥하는 것들이 계속 치밀어 올랐다. 해경으로부터 구조되지 못하고 탈출했던 학생들의 이야기를, 친한 친구를 모두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참사의 피해자이면서 목격자인 그들이 살아돌아온 후 온갖 따가운 시선을 감당해야 했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참기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친구가 아니라 연구자로서 만나고 있었고, 내게는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게 허용되지 않았다. 울컥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꾹꾹 누르고, 귀를 계속 열고 준비한 질문 목록을 생각하며 말해야 했다. 나는 기록해야 하니까. 그 기록은 무겁고 중요한 일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우회하고 2016년 한국사회를 온전히 이해하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참사의 아픔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기록해야 했다.

실태조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그동안 발생했던 여러 참사들에서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봤다. 서해 페리호, 삼풍 백화점, 성수대교, 대구지하철 참사까지. 그런데, 놀라울 만큼 기록이라 할 만한 게 없었다. 간혹 신문기사가 말고는 그 참사로부터 살아남은 이들이 감당해야 했던 시간에 대해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아픔이 기록되지 않았으니 대책이 있을 리 없다. 그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던 국가는 그 아픔을 개개인에게 넘긴 채, 계속 정권이 바뀌며 시간이 흘러갔다. 세월호 참사마저 그렇게 보내고 나면, 우리에게 공동체라고 부르는 무엇인가가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그렇게 시작한 연구를 한창 진행하던 4월 중순, <다시 봄이 올거예요>가 출판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책에는 내가 만나던 생존 학생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그 안에 무슨 내용이 있을지 두려워서 책을 사 놓고도 곧바로 읽지 못한 채, 눈에 잘 띄는 창가에 두었다. 그러다, 조금 마음의 준비가 되던 어느 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다른 애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허우적대는 거예요. 제 발밑에서 애들이 손을 허우적대는 게 다 느껴졌어요. 저는 손을 쓸 수 없으니까, 일단 제 발이라도 잡으라고 가만 있었어요. 그러니까 애들이 발을 잡았어요.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애들이... 제 발을 놓쳤어요... 애들이 틈 사이로 와가지고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면서 손 뻗는 걸 다 봤고 다 느꼈고. (p166)

많은 사람들은 학생들이 배 안에서 조용히 '가만히 있으라'는 무책임한 지시에 따르다가, 침몰하는 배와 함께 가라앉은 줄 알고 있다. 아니다. 학생들은 살아남기 위해,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밟고 올라갈 게 없을 때는 자신의 어깨를 서로 내밀고, 손을 내밀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발을 잡고 있는 친구가 그걸 놓치지 않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책 표지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책 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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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함께 살아남으려 했던 학생들이, 타인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형, 우리 죽어요?"라는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의 질문에 "형아가 너 살릴게"라고 답하며 자신이 받은 구명복을 그 아이에게 먼저 입혔던 18살 고등학생이, 그 아이를 구하지 못한 스스로를 두고 "제가 살인자 같은 거예요"(p79)라고 말한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이 참사에서, 피해자인 학생이  어린아이를 구하지 못했다며 괴로워한다. 죄없는 이들이 가장 큰 죄의식을 느끼고, 가장 선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스스로를 '살인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의 고통과 경험에 대해, 구조되지 못하고 탈출해야 했던 그들의 시간에 대해 함부로 말한다. 국가와 교육부가 결정한 배보상과 대학 특별전형을 이유로, 그 중 어떤 것도 요구한 적 없는 피해자들을 비난한다.

침몰하던 배에서 자신만 탈출하던 몇몇 어른들과 달리 함께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썼던 학생들은 그 참사 이후로도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를 고민한다. 사람들에게 세월호 참사만 기억해달라고 하기 미안하니까, 스스로 대구지하철참사와 천안함침몰사건의 날짜를 기억한다.

미안해서 다른 참사의 날짜를 기억하는 이들

세월호 생존학생과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형제 자매를 인터뷰한 책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책을 읽고 친구에게 선물하려 하자, 친구는 물었다. "읽으면 많이 괴로울 것 같은데... 그런데도 꼭 읽어야 할까?" 나도 처음에는 이 질문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세월호 연구를 시작하기 전, 진상규명이 점점 소원해지는 세월호 참사 싸움을 보면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낙인을 부과하는 한국사회를 보면서, 무엇도 바뀔 것 같지 않은 무력감 속에서 굳이 세월호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이 연구를 시작할 때 세월호 참사를 처음부터 오랫동안 함께했던 몇몇 분들을 만나 의견을 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왜 우리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더 기록하고 또 더 귀 기울여야 하는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어느 늦은 밤 대화를 나누다 스스로가 도망갈 수 없는 이유를 찾았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방을 찍으러 다니는, 세월호에서 건져올린 학생들의 유품을 찍은 사진작가의 이야기였다.

"얼마만큼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최대한 그 상처를 빨리 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살아가야 하니까. 그러려면 사회가 그 상처를 최대한 오랫동안 제대로 기억해야 해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사회가 기억하려고 하지 않으니 그 모든 상처와 기억을 피해자들이 계속 스스로 가지고 있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김승섭 교수가 보내주신 글입니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 -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창비(2016)


태그:#세월호, #다시 봄이 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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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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