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회

포토뉴스

가습기살균제(애경가습기메이트) 피해 어린이 박나원 양의 모친이 23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눈물을 닦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목튜브제거수술을 받은 박나원 어린이는 이날 목에 스피킹벨브를 한 채 참석했다.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입 모양으로 엄마와 이야기나누는 박나원 어린이. ⓒ 공동취재사진
애경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 피해 어린이 박나원양 가족이 23일 오후 서울 신문로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목튜브 제거수술을 받은 박나원 어린이는 이날 목에 스피킹벨브를 한 채 참석했다. ⓒ 공동취재사진
"자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렇게 됐다고 너무 자책해요. 얼마 전 애들 이모가 나원이 석션(튜브 속 가래 제거)을 할 때 나원이한테 '이모가 미안해' 하는데, 나원이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이모가 그런 게 아니야, 다른 아저씨들이 그런 거야'라고."

엄마는 목이 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애경의 '가습기 메이트' 제품 사용으로 5년간 목에 튜브를 달고 산소를 공급 받아온 박나원(5)양. 23일 이 튜브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퇴원한 나원 양은 아빠, 엄마와 함께 20여 명의 취재진 앞에 섰다. 애경 가습기 살균제 제품으로 인한 피해사실을 다시 한 번 더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아빠 박영철(43)씨와 아내 김미향(36)씨는 "(옥시 레킷벤키저 피해 사실 뿐 아니라) 애경 이야기도 많이 다뤄져야 한다"고 취재진에게 거듭 요청했다. 김씨는 "계속 애경이 (검찰 수사에서) 빠져 있어 밤에 거의 잠도 못 잔다"면서 "검찰 수사를 빨리 진행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관련 기사 : 옥시'만' 때리는 언론, 뭔가 이상하다).    

"피해 사실 분명한데도, 애경은 검찰 수사 빠져 있어"

2011년 겨울, 갓 태어난 쌍둥이 조카 나원, 다원이를 위해 이모가 한 홈쇼핑에서 산 애경의 살균제 제품 '가습기 메이트'. 이 제품 때문에 두 아이는 건강한 폐를 잃었다. 그해 겨울부터 3, 4개월동안 제품을 사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나원이 엄마는 "솔잎향과 라벤더향을 썼다"며 구체적인 제품 설명도 덧붙였다. 함께 생활했던 이모도 호흡 곤란을 겪어 지난해 12월 3차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 때 관련 사실을 접수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말단 기관지 부위 중심의 폐 질환 가능성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언니 나원이와 동생 다원이는 각각 2015년 4월과 10월 환경부 조사판정위원회에서 '가능성 확실 1단계' 판정을 받았다. 나원이가 산소 튜브에 호흡을 의지하고, 다원이가 폐 기흉으로 폐포가 터져 고생을 거듭한 지 만 4년만이었다.

그보다 앞선 2011년 11월 정부 차원의 가습기 살균제 조사가 진행됐지만, 애경의 '가습기 메이트' 주요 성분인 CMIT와 MIT는 독성이 적은 것으로 확인돼 강제 회수 대상에서 제외됐고, 자발적 사용금지 대상으로만 분류됐다. 나원, 다원 쌍둥이 자매가 해당 제품을 만난 경로는 그렇게 뚫렸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정부가 해당 제품에 대해 강경한 리콜 처리 등을 했어야 하는데, 미적대는 사이 발생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 참가한 최 소장은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드러난 이후 초기 대응을 잘했다고 주장하는데, 나원이의 경우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나원이처럼 애경 제품만 사용해 발생한 피해 사실은 1, 2차 정부 조사에서만 사망 27명, 상해 101명에 달한다. 30대 성인 남성이 사망한 사례와 7년째 산소 호흡기를 달고 사는 성인 여성의 사례도 소개됐다.

최 소장은 "오랫동안 (애경 제품에 들어 있는) CMIT와 MIT 성분은 피해가 없는 것으로 여겨 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해와 사망 사례가 나왔다"면서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2011년 조사 당시 해당 제품에서 독성이 확인이 안 됐다고 해서 (애경을) 검찰 조사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경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 피해 어린이 박나원양 가족이 23일 오후 서울 신문로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목튜브제거수술을 받은 박나원 어린이는 이날 목에 스피킹벨브를 한 채 참석했다. ⓒ 공동취재사진
가습기살균제(애경가습기메이트) 피해 어린이 박나원 양이 23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지루한 듯 눈을 부비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애경가습기메이트 피해 어린이, 튜브 제거 수술 마친 뒤 퇴원 애경가습기메이트 제품만 사용하다 호흡곤란이 심해 목의 튜브로 산소호흡을 해오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나원 어린이가 튜브 제거 수술을 마친 뒤 퇴원하며 23일 오후 서울 새문안로 환경보건시민센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위해 부모와 함께 도착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투병 생활에 필요한 의료기는 지원에 포함 안 돼"

이어 정부 차원의 의료비 지원폭이 투병 현실에 비해 좁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나원이가 현재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정부를 통해 지원 받고 있는 의료비는 수술비 등 일부 치료비에 국한돼 일상 생활에서 필요한 의료기나 병원을 오가는 교통비, 간병비 등은 지원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원이 엄마 김미향씨는 "(석션기 같은) 의료기는 아예 지원이 안 되는데, 이거라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면서 "석션 카테타(석션에 연결하는 튜브)는 하루에도 몇십번씩 교체하는 데, 모두 의료기라 구매할 때마다 돈이 든다"고 토로했다. 나원이는 튜브 제거 수술 이후에도 흉터를 지우기 위한 성형 수술 등 병원 생활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튜브를 넣기 위해 뚫어 놓은 나원이의 목 중앙 연골이 있던 자리엔 수술을 통해 갈비뼈에 있던 연골이 대신 들어 갔다. 나원이 엄마에 따르면 낯선 자리에 들어간 연골이 자리 잡도록 돕는 고정 장치 때문에 나원이는 당분간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나원이 아빠 박영철씨는 "이식 수술이다 보니 자리 잡는 데 시간이 걸린다"면서 "체질에 따라 세번, 네번까지도 (다시) 수술을 받는 다고 하는데,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기자 간담회 중, 나원이는 손에 든 곰 인형을 이리저리 굴리며 프로젝터에 비친 자신의 폐 CT 사진을 집중해 쳐다 봤다. 화면 가득히 비친 나원이의 폐는 폐섬유화로 하얀 점조직이 차 있었다. 나원이 엄마는 "설거지나 다른 일을 하다가도 (나원이가) 기침을 하고 가래가 많이 나오면 달려가 제거를 해야했다"며 "나원이가 답답하면 먼저 다가와 석션을 해달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나원이 엄마는 아이가 말끔히 나으면, 바다에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바닷 바람에 섞인 모래 알갱이가 아이의 목에 걸릴까봐 부산에 살면서도 바다를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원이 엄마는 "나원이가 수영장도 가고싶어하고, 목욕탕도 가고 싶어하더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전했다. 
태그:#가습기, #애경, #검찰, #나원이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