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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봉평 '메밀꽃 피는 마을'로 발효기행을 다녀왔다. 메밀꽃은 9월에 피지만, 평창 봉평은 메밀꽃 피는 마을로 이름을 얻었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덕분이다.

평창을 가는데 토요일과 초파일(부처님오신날, 5월 14일)이 겹쳐 2시간이면 갈 길을 4시간이나 걸려 갔다. 그래도 가고 싶은 마음에 45인승 버스에 가득 찬 여행객들은 아무도 투정하지 않았다.

정체 덕에 오전 봉평 흥정계곡에 있는 허브나라를 방문하는 시간이 증발해버리고, 곧바로 메밀막국수집으로 향했다. 봉평엔 큼지막한 메밀막국수집이 많다. 몇 군데 막국수집을 가보았는데 이제는 솜씨들이 좋아 맛들이 엇비슷하다.

예전에 강원도를 여행할 때 소문난 막국수집을 찾아가보면 포장도 안 된 마을 안쪽에 허름한 집이기 예사였는데, 이제는 솜씨 좋은 식당들이 큰길가에 나와 있다. 메밀막국수, 메밀전병, 메밀싹과 버무려진 메밀묵, 메밀막걸리해서 메뉴도 다양하다.

평창 봉평 이효석 문학관 뜨락의 이효석 문학비.
 평창 봉평 이효석 문학관 뜨락의 이효석 문학비.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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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흥정계곡 안의 허브나라 정원.
 평창 흥정계곡 안의 허브나라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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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별로 없어, 버스 타고 오는 관광객들이 와야 이 음식점들이 운영될 텐데, 걱정부터 앞선다. 이 음식점들을 위해서라도, 지방자치단체는 관광객을 부지런히 유치해야 하고, 관광 자원도 만들어내야 처지가 된 것 같다. 

막국수를 먹고나서 이효석 문학관을 둘러봤다. 산 언덕에 자리잡은 문학관을 오르는 길목에 가산 이효석 문학비가 있었다. 이효석은 1907년에 평창에서 태어나 36살 아까운 나이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평창보통학교를 다니고 경성고보, 경성제대를 나와 직장생활을 하고 교직에 몸담았다. 그 이력을 보면 명석하고 곱상한 기질을 지닌 인텔리였다는 게 느껴진다. 짧은 생이었지만 그래도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아름다운 소설을 남겨, 평창군민들 속에 살아있다. 문학의 힘이고 글의 힘이기도 하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허브나라는 안 갈 수 없었다. 식물과 꽃과 자연은 언제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허브나라에 이어 찾아간 곳은 메밀막걸리 양조장이었다.

한때 면마다 하나씩 있었던 양조장, 지금은...

평창에는 한때 면마다 양조장이 1개씩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형편이 달라졌다. 현재 평창에는 4개의 양조장, 진부에 오대양조와 진부탁주합동, 평창의 봉평메밀F&B영농법인, 방림면에 계촌주조장이 있다. 면마다 하나씩 있던 양조장 중에서 살아남은 양조장은 진부양조장밖에 없다. 다른 3개의 양조장들은 1990년대 이후에 생겨났다.

진부에 있는 오대양조의 홍성일 대표는 1991년부터 강원도의 특산주인 감자술, 서주(薯酒)를 만들고 있다. 강릉 성산 양조장이 문을 닫자 2001년에 그곳 영업권을 사서 막걸리를 팔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2012년에 오대산 탁주를 일본 수출용으로 만들어 내보낸 적이 있다. 두어해 전에는 강릉 성산에 내려가 단오주 막걸리를 빚은 적도 있다.

진부 양조장은 진부면 소재지의 진부시장 뒷길에 있다. 1965년에 심봉섭씨가 진부 양조장을 인수해 운영했는데 그때는 소주, 약주, 막걸리를 모두 만들었다. 도중에 진부양조장과 속사양조장이 합해져 진부탁주합동이 됐다가 1998년에 심봉섭씨의 아들 심달섭씨가 지분을 모두 인수해 다시 진부양조장이 됐다.

진부양조장에서는 오대산 찰옥수수 막걸리와 당귀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 당귀 막걸리는 진부의 당귀를 쓰는데, 당귀의 향이 은근하게 돈다. 진부는 영동고속도로의 진부나들목에서 가까워 물류수송의 유리한데, 심 대표는 이점을 적극 활용하여 냉장차를 이용해 주변 관광지 음식점에 열심히 배달하고 있고, 요사이는 아들 심재헌씨가 양조일을 도와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계촌막걸리는 치악산 동편에 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0년 전에 고향에 돌아온 김재하 대표가 일제 시대부터 있었다는 양조장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양조장이 살림집과 함께 있는데, 원래는 100m 쯤 떨어진 농협 옆에 양조장이 있었다고 한다.

계촌 양조장에서 빚는 술은 계촌 감로주로, 일반 막걸리보다 맑고 노란 빛이 투명하다. 찹쌀을 50%나 넣어서 단맛이 강하고, 부드럽다. 김 대표는 감로주를 2시간 냉동실에 얼렸다가 2시간 산행을 하고 한 잔씩 따라 마시면 딱 좋다고 했다. 안주 없이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술이라고 하니, 치악산 산행을 하고 나서 산밑에서 마시기 좋은 술이다.

'메밀로 묵도 만드는데 막걸리 못 만들겠습니까'

봉평 메밀막걸리 제조장에서, 엄 공장장이 설명을 하고 있다.
 봉평 메밀막걸리 제조장에서, 엄 공장장이 설명을 하고 있다.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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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이 찾아간 봉평메일 F&B 영농조합법인은 2009년에 생겼다. 메밀 가공업을 하는 변찬수 대표가 메밀막걸리를 만들고자 설립한 양조장이다. 변 대표는 평창의 장평양조장을 운영하다가 문을 닫은 엄규식씨를 만나, 메밀막걸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엄규식씨는 처음에는 전분 함량이 낮아 메밀로 막걸리를 만들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변대표는 '메밀로 묵도 만드는데, 막걸리를 못 만들 게 없다'며 밀어붙였고 그래서 메밀막걸리가 탄생하게 됐다. 봉평메일 F&B에서 만드는 메밀막걸리엔 쌀 70%, 밀가루 25%, 메밀 5% 비율로 들어간다. 메밀 5%를 사용하였을 때 막걸리의 빚기도 수월하고 구수한 맛도 돌더라는 것이다. 메밀막걸리는 9월에 열리는 봉평 메밀꽃 축제 기간의 히트 상품이 됐고, 그 뒤로 다른 양조장에서도 메밀막걸리를 빚기 시작했다.

봉평 메밀막걸리 제조장의 병입하는 시설들.
 봉평 메밀막걸리 제조장의 병입하는 시설들.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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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메일 F&B의 공장장인 엄규식씨는 3대째 양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인 엄봉익씨는 충주호가 수몰되기 전에 청풍에서 양조장을 운영했다. 수몰돼 이주하면서 금성양조장을 인수해 운영했고, 그 뒤로 인구가 많은 봉평양조장을 인수해 평창에 살게 됐다.

엄봉익씨는 주변 양조장 종사자들과 함께 제천곡자공장을 운영했는데, 그의 둘째 아들이 이어받아 운영하다가 2000년대 초반에 문을 닫았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발로 디뎌 누룩을 만들었는데, 막걸리 양조장들이 전통 누룩을 외면하게 되면서 곡자공장도 속절없이 문을 닫게 됐다.

1980년대만 해도 평창군의 7개 읍면에 모두 양조장이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양조장이 평창읍내에 있던 평창탁주합제조장이다. 지금은 평창 양조장 건물은 도시계획에 일부가 잘리고, 개조돼 옷가게로 변했다. 양조장 주인이었던 정석진씨는 1998년에 양조장을 그만두고 부근에서 모텔을 운영하고 있다.

평창 지역 양조장 잔혹사, 해법은?

정 대표는 요즘도 지인들로부터 제때 양조장을 잘 그만뒀다고, 신통하다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그는 술이 팔리지도 않아 시어터지고, 이러다가 술만 버리는 게 아니라 밑천까지 다 내버릴 것 같아서 그만뒀다고 했다. 그의 전성기는 1970년대였다. 일꾼을 두고 말마차 2대를 가지고 평창읍내 구석구석 배달을 다녔는데, 그때는 시골에 막걸리 말고 마실 술이 달리 없었다. 그런데 가게가 생기고 냉장고가 들어와 소주·맥주가 팔리면서 차차 소비자의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고급이 되면서 막걸리가 맥없이 무너졌다고 한다.

그렇게 없어진 막걸리 제조장이 평창탁주합동 말고도, 미탄양조장, 횡계양조장, 장평탁주공동제조장, 대관령주조, 청강주조합자 회사들이 있다. 이들 양조장에서 만든 술들은 투박한 막걸리지만, 한때는 시골마을에 가장 세련되고 잘 나가던 즉석 식품이었다.  

이제는 막걸리를 지역 연고로 팔 수 없는 세상이 됐다. 대형 양조장들의 냉장차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저렴하게 세련되게 팔아댄다. 지방의 작은 양조장들은 기계보다는 몸을 더 많이 사용하니 가격 경쟁을 하기도 어렵다. 지방의 작은 양조장들이 살 길은 평창 봉평 메밀막걸리처럼 지역의 특산물과 지역의 관광명소와 축제와 어우러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법으로 외지 막걸리가 못 들어오게 막고 지역에서 알뜰하게 팔 수 있었지만, 이제는 지역민들을 감동시키고 관광객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야 막걸리를 팔 수 있다. 

봉평메밀막걸리 변찬수 대표는 올해 메밀꽃 필 무렵에 메밀카페를 낼 예정인데 그곳에서 메밀커피, 메밀막걸리, 메밀커피막걸리, 메밀묵, 메밀파스타 들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술은 농산물의 가공 상품인지라, 요리하는대로 그 형태가 달라진다는 것을 변 대표는 잘 알고 있었다. 변신하지 않으면 지역 양조장들도 살아남기 쉽지 않게 됐다. 냉혹하고 씁쓸한 이야기지만, 세상일이 그렇다.

메밀이 들어간 봉평 메밀막걸리.
 메밀이 들어간 봉평 메밀막걸리.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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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막걸리, #평창, #메밀막걸리, #봉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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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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