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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처럼 제주에 내려갈 계획을 세우고 고민하고, 결국 이것을 실행에 옮기다 보면 제주이주에 관심 있는 주변 분들, 혹은 온라인에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분들에게 꽤나 많은 질문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우리들이 툭 내뱉은 대답이 그 분들 삶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의도치 않은 영향을 줄까 우려가 들었다.

때문에 되도록이면 답변 자체를 회피해 왔는데, 실제 이주를 해 보니 '아, 이런 부분은 이주를 하기 전에 꼭 알아야겠구나' 깨닫게 된 후 태도를 조금이나마 바꾸게 되었다. 우리가 겪은 시행착오를 그 다음 분들이 또 겪는 건 제주 사회 전체로 보아도 참 불필요한 소모가 아니겠는가.

제주 이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위험하다

때이른 무더위의 습격에 입수를 감행한 용감한 분들. 올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우려나
 때이른 무더위의 습격에 입수를 감행한 용감한 분들. 올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우려나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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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부정적인 부분을 살펴보자. 정확히 말하면 제주도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깨뜨려보자.
일단 서점에 나와있는 제주 이주 관련 책들, 혹은 방송 프로그램의 경우 너무 오래된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확인해봐야 한다(특히 연예인을 앞장 세운 제주 이주 관련 프로그램은 그냥 오락 프로그램으로만 보자).

제주 이주에 대한 정보 중 몇 년이 지난 것들은 이미 현실과 많이 동떨어진 과거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주도는 연세(年稅)가 저렴하기 때문에 일단 연세부터 얻어 살면서, 집을 짓든 구매하든 하라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제주도에서 저렴한 연세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사람이 살만한 구옥이나 주택의 경우 몇 년 전만 해도 100~300만원이면 연세 집을 구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현재는 평균 700만원 이상은 지불해야 한다.

4인 가족이 살만한 깨끗한 빌라나 아파트의 경우에는 연세가 1000만원이 넘는 곳도 많다. 월세로 치면 월 60~100만원, 육지에 비해서도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때문에 1~2년만 살고 나갈 예정이거나, 혹은 갖고 있는 목돈이 부족한 경우가 아니라면 집 구입이나 건축을 위한 탐색전 개념으로 연세를 권하고 싶지 않다. 인터넷을 통해 충분히 검토한 후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고 그 중 하나를 골라 바로 계약을 하는 것이 오히려 예산을 절약하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굳이 내 집을 가질 계획이 없다면 전세를 구하는 것도 좋다. 연세가 대부분이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아파트나 빌라 소유주가 육지사람인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그만큼 전세 매물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타운하우스의 경우 실제 분양가와 은행 감정가 사이의 간극이 큰 경우가 많으므로 전세를 얻을 때는 주의해야 한다.

남들은 웃지만 내 인생의 영화 중 하나는 '홍반장'이다. 법환동은 그래서 왠지 친숙하다.
 남들은 웃지만 내 인생의 영화 중 하나는 '홍반장'이다. 법환동은 그래서 왠지 친숙하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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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이번에는 집 다음으로 많이 궁금해하는 생활비에 대해 생각해보자. 예전 책들이나 방송을 보면 제주에 이주한 후 생활비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흔히 소개되곤 했다. 하지만 이것을 무조건 현실에 대입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 있다.

각각의 가정에 따라 생활비라 부를 수 있는 예산 개념이 많이 다르겠지만 대체로 생활비라 하면 의식주와 문화생활비, 교육비, 병원비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듯하다.

책이나 방송에서 소개된 '육지보다 훨씬 적은 생활비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분들' 이야기는 육지에서 쓸데없이(?) 지출되던 문화생활비를 없애고, 입시를 위한 자녀 사교육비 등도 모두 없애고 이를 제주도의 자연에 대한 만족감으로 대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이웃들에게 얻든, 혹은 직접 텃밭에 농사를 짓든 먹거리와 관련된 비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절감이 가능했을 때 얘기인 것이다.

만약 육지에서 살던 모습 그대로, 예를 들어 아파트에서 살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아이를 학원 몇 곳에 보내고, 가끔은 시내에 나가 외식도 하고, 영화나 공연도 보고 산다면 과연 생활비는 줄어들까, 늘어날까?

제주도 물가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답이 있다. 일단 대형마트에서 파는 공산품 가격은 대체로 비슷하고, 식재료의 경우 중국산이냐 국산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삼다수와 제주산 해산물·농축산물이 아니면 조금 비싸게 느껴진다.

택배로 배송되는 물건을 보면 쿠팡과 한샘 등이 최근 제주 무료배송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택배비에 추가요금이 붙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식비의 경우에도 관광지가 많기 때문에 다른 지방도시에 비하면 결코 싼 편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육지에서 살던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여기에 제주의 자연이 주는 혜택까지 얻으려 했다면 생활비는 늘어날 것이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제주에서 보다 적은 돈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육지에서 당연시했던 혜택들을 일정 부분 포기하는 대신 제주의 자연과 문화가 주는 풍요로움에 감사함을 느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 된다.

하나 다행인 것은 제주 이주를 결행한 분들이라면 이러한 대체 과정을 거치며 오히려 더 큰 만족도를 얻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날씨에 따라 입장이 통제되기도 하는 용머리 해안. 길고 긴 세월이 깍아놓은 흔적에 왠지 가슴이 찡해온다.
 날씨에 따라 입장이 통제되기도 하는 용머리 해안. 길고 긴 세월이 깍아놓은 흔적에 왠지 가슴이 찡해온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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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익숙해짐에 따라 소중함을 잃어가게 마련이다

이번에는 반대로 방송이나 책 등에서 부정적으로 알려진 부분에 대한 긍정적 측면을 얘기해보자. 최근 들어 제주로 이주했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육지로 돌아가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에 많이 소개된다.

(물론 방송사에서는 어떤 공익목적으로 이를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제주이주에 대한 장점들만이 너무 보도되어 시청자들이 피로감을 느끼다 보니 반대 편의 그늘을 조명하여 시청률을 올려보자는 목적일 게다)

하도 제주 이주에 대한 실패 사례가 많이 소개되다 보니 이주를 준비하던 분들 중에도 겁을 집어먹고 조언을 구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해드릴 말이 없다. 애초에 이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조언을 해드릴 내공도 부족하거니와, 이주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문제는 개개인의 경제적, 문화적 환경에 따라 너무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정도는 분명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언급한대로 제주로 이주한 분들 대부분은 육지에 비해 줄어든 수입과 부족한 인프라를 감수하고라도 제주의 자연환경이 주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린 분들이다.

때문에 생활이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이 자연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유지된다면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소중한 자연환경도 계속 누리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져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면 불현듯 제주의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지면서 결국 육지의 편리함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지곤 한다.

제주로 이주했다가 다시 육지로 돌아간 분들 대부분이 "멋진 자연풍광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 보다 보니 무덤덤해졌다. 그리고 그 후에는 도시의 편리함이 그리워졌다"고 말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바로 여기까지가 최근 방송이나 관련 서적에서 보여주는 제주 이주의 그늘이다.

집 구하러 다닐 때 자주 이용했던 서귀포 한 게스트하우스 마당에는 비 맞기를 즐기는 코카가 살고 있더랬다.
 집 구하러 다닐 때 자주 이용했던 서귀포 한 게스트하우스 마당에는 비 맞기를 즐기는 코카가 살고 있더랬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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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 나오지 않는 그 다음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그렇게 제주 이주에 실패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분들은 도시의 삶에 만족하고 있을까? 불행하게도 대답은 '아니오'인 경우가 많다. 애초에 제주로 이주를 할 만큼 도시생활이 몸에 맞지 않는 분들이다. 이런 분들이 제주에서 유턴하여 다시 지옥철과 탁한 공기, 뿌연 하늘, 꽉 짜여진 도시의 리듬에 적응할 수 있을까?

결국 또 다시 제주로의 2차 이주를 준비하는 분들도 있고, 도시나 제주나 결국 나에게 행복이란 없구나 포기하고 살아가는 분들도 있다. 도시도 정답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떤 거창한 해석이나 결론을 내릴 내공이 나에게는 없다. 다만 그 동안 도시에서 거쳐온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이러한 현상들을 최대한 자료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비오고 바람부는 날이면 도시에서는 입에 대지도 않던 막걸리가 왜 그렇게 땡기는 걸까.
 비오고 바람부는 날이면 도시에서는 입에 대지도 않던 막걸리가 왜 그렇게 땡기는 걸까.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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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몇 년이 지난 후 "내가 그때 콩깍지가 씌웠었구나" 후회를 한다 해도, 혹은 헤어지게 된다 해도 그 당시 우리가 느꼈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결코 잘못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누군가에 대한, 혹은 무엇인가에 대한 사랑이라는 강렬한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조금씩 보이지 않았던 단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고, 그 다음에는 그 모든 것을 감싸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인생이 아닐까.

처음 제주와 사랑에 빠지고 모든 것이 그저 좋게만 느껴지던 그때, 바로 그 순간 감정을 되도록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 그리고 제주가 나에게 주는 모든 것들을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살아가면서 제주가 나에게 실망과 아픔이라는 감정을 안겨줄 날이 분명 오겠지만 그 또한 내 선택에 따라 감당해야 할 몫이기에 기꺼이 안고 갈 것이다. 그리고 설사 제주와 헤어지는 날이 온다 해도 정말 진심을 담아 덕분에 즐거웠노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간단한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우리에게는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부디 제주이주를 꿈꾸는 다른 분들이 겪어야 할 번뇌의 시간이 조금이라도 짧아지기를 기원한다.


태그:#제주이주, #제주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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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 : 제주, 교통, 전기차, 복지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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