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학 주점에서 술에 취한 학생들의 모습.
▲ 술에 취한 대학축제 대학 주점에서 술에 취한 학생들의 모습.
ⓒ 삽화작가 이남형

관련사진보기


[아들의 이야기] 생애 첫 대학축제는 '강제 노동'

며칠 전, 대학에 입학한 뒤 처음 맞는 축제가 열렸다. 3일 동안 진행하는 축제에서 나는 '1학년 남자'라는 이유로 의자와 짐을 나르는 심부름꾼 역할을 맡았다. 뒷정리를 새벽까지 하면서 연예인 공연이나 주점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축제 또한 새로운 일상생활의 창조를 위해 삶에 균열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이런 일들은 축제답지 않았다. 밤 10시가 지나면서 주점에 앉아있던 학생들의 플라스틱 의자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취해가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얼마 전 뉴스에서 대학 축제 주점의 과도한 술 반입이 문제가 된다는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 축제라는 말을 들으면 술이라는 단어가 먼저 생각나는 사람들과, 16학번 새내기라는 이유로 노동을 강제적으로 하고 있는 우리를 보며 대학에서의 축제는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봤다.

최근 읽은 영어책 지문에서 유럽 토마토축제에 대한 글을 봤다. 그런데, 내가 겪은 축제의 모습이 떠올라 헛웃음이 나왔다. 토마토 축제는 많은 이들이 함께 즐기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뒤처리 하는 사람과 노는 사람이 구분없이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축제, 그것이 바람직한 축제의 모습일 것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일회용같은 축제의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빠의 이야기] 차라리 나는 '꼰대'가 되련다

1980년대 축제는 대동제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물론 그 당시에도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기회는 있었다. 부추전에 잔디를 뜯어 넣었다는 전설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던 시절이었다. 깜깜한 잔디밭 한구석에 오줌을 싸던 기억이 겹치면서 젓가락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기도 했다. 치마 입은 여학생을 위해 기꺼이 점퍼를 벗어주던 호기는 재채기로 이어져 체면이 구겨지기도 했다. 지금도 술을 많이 마시면 재채기가 나오는 것은 아마 그때 몸에 든 습관 때문으로 짐작한다.

얼마 전 아들이 경험하는 요즘의 축제가 궁금해 학교 나들이를 할까 잠시 고민했다.

"학교 축제 때 가서 막걸리 한잔 먹을까?"
"오지 마셔."
"왜?"
"술 마시고 잔디밭에서 오줌 쌀까봐."

술 한잔 마시고 노상방뇨 하는 기분을 즐기기에는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곳곳에 설치된 CCTV는 물론이고 자동차 뒤에서 볼 일 보기가 수월하지(?) 않은 세상이다. 블랙박스 설치가 늘어나면서 야간의 노상방뇨도 쉽지 않다. 축제를 끝나고 난 며칠 뒤, 나는 녀석과 점심을 먹으며 축제의 느낌을 물었다.

"술 많이 마셨니?"
"별로, 축제 끝나고 나서 좀 마셨지."
"처음인데 어땠어?"
"부어라 마셔라 놀자판이지 뭐…."

5월의 대학축제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행사가 빠졌다는 기사를 본 것도 그 무렵이었다. 5월 18일이 들어 있는 기간에 축제를 하는데도 상당수 대학들이 광주를 기억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역사의 기억을 보듬으며 그것이 남긴 상처와 가치를 돌아보라고 말하는 게 나이 든 꼰대의 모습으로 비친다면, 때로는 그런 꼰대도 필요하지 않을까.




태그:#축제, #대학, #5월, #꼰대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주로 글쓰고 영상기획하고, 주로 대전 충남에서 지내고, 어쩌다 가끔 거시기 하고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