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하고 독하게 영화 속의 메시지를 읽고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청년의 통통 튀는 감성을 담아 표현하고 소통하겠습니다. [편집자말]
인권영화란 인권을 증진하고 인권에 대한 현안을 알리기 위해 인권에 관련된 주제의식을 담아낸 영화다. 꼭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지 않더라도 인권에 대한 주제의식이 담겨있다면 인권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예로 들면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도 인권영화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고, 김철민 감독의 <불안한 외출>과 같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도 인권영화로 볼 수 있다.

인권영화들의 경우 보통 주제가 무겁다. 영화 <변호인>에서 '부림사건' 관련자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자행되는 무자비한 고문은 보는 이들을 괴롭게 만든다. '종북'이라는 낙인이 찍힌 후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 진 <불안한 외출> 속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그렇기에 인권영화 대부분은 인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볼 때마다 기분이 나빠지거나 답답함이 커진다.

하지만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영화 <시선 사이>는 답답함보다는 유쾌함에 가까운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비교적 가볍게 느껴지는 주제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떡볶이를 통해 보여주는 학생인권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프로젝트를 통하여 만들어진 영화인 <시선 사이>는 비교적 가볍게 느껴지는 주제를 담아내고 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프로젝트를 통하여 만들어진 영화인 <시선 사이>는 비교적 가볍게 느껴지는 주제를 담아내고 있다. ⓒ 영화사 진진


<시선 사이>는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3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와 '과대망상자(들)', '소주와 아이스크림'이다. 이 중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는 여고생과 떡볶이라는 짝이 잘 맞는 조합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여고생인 지수와 친구들은 떡볶이를 정말로 좋아한다. 그들은 친구 삼촌의 떡볶이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떡볶이를 함께 먹으며 웃는 셋의 모습은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에게 시련이 닥친다. 학업 증진을 목적으로 학교가 교문을 닫고 학생들의 출입을 막기 시작한 것.

당연한 게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는 학생들에게 무척 중요한 문제다. 이들에 교문이 닫혀있어서는 안 된다. 교문은 언제든 학교 앞 분식집이나 꼬치가게에 갈 수 있는 소중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급식이 특별히 맛있지 못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영화를 보며 학생 때 모습이 떠올라 계속 웃음이 났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방학 때도 수업을 진행하고 자습을 시켰다. 쉬는 시간이 되면 학교 앞 분식집에서 파는 천 원짜리 치킨 덩어리나 오백 원짜리 빨간 주먹밥을 먹기 위해 몰래 교문을 나서곤 했다.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몰래 통과하는 교문은 스릴 그 자체였다. 스릴을 즐기고 나서 먹는 간식들은 더욱 맛있었다.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인지, 지수의 모습이 더욱더 공감 갔다. 어째서 대학을 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지도 못하고 대학을 가야 한다는 이유로 공부를 강요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떡볶이는 잠시의 일탈이었을 테다. 그것을 막는 닫힌 교문이 지수에게 밉게 느껴졌을 것이다.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는 학생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귀여운 방식으로 전달한다. 고작 떡볶이가 왜 중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라. 당신이 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도 모르는데 자꾸 강요당하고 해야만 한다면 작은 것에서라도 재미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영화는 떡볶이를 통해 이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로 학생들의 자유를 뺏는 것들이 정말 많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공부를 이유로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도 못 보게 했고, 자율학습이라는 이름 아래 학생들을 밤 11시까지 학교에 잡아뒀다.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고 학교가 허락하는 것만 할 수 있었다. 외투를 입는 것도 머리 스타일도. 모든 것들이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지켜져야 하는 규칙들이었지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 이것이 교육의 현실이고, 학생 인권의 현실이 아닐까. 영화는 재미있게 풀어내지만, 떡볶이는 학생의 자유이다. 학생들에게도 자유는 소중하다.

소주처럼 쓴 인생에는 아이스크림이 필요하다

 둘은 아이스크림과 함께 소주를 마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한다. "나 한번 안아주면 안돼?"

둘은 아이스크림과 함께 소주를 마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한다. "나 한번 안아주면 안돼?" ⓒ 영화사 진진


'과대망상자(들)'은 정부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 사는 우민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민은 더한 망상에 빠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상한 대화가 자꾸 나온다. 북한에서 넘어온 비둘기에게 북한에서는 김수현이 인기가 있는지, 이민호가 인기가 있는지를 물어봤다는 등의 이야기다. 뜬금없이 불어와 일어, 영어 등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그들은 진지하게 연예인 이야기를 한다. '과대망상자(들)'은 그 이름만큼이나 혼란스럽고 보는 이를 당황스럽게 한다.

하지만 솔깃한 이야기도 있다. 우민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에게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나서 다른 해직교사들의 명단을 넘겨달라고 하는 모습이나, 평가를 강요받으며 살아가는, 목적 잃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빨갱이라 하고,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음모론을 떠들지 말라고 일침을 가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해직교사들이 포함돼있다는 이유를 빌미로 법외노조 판결을 받았다. '과대망상자(들)'의 망상들은 알고 보면 현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것들이 아닐까.

제일 좋았던 작품은 '소주와 아이스크림'이다.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쓰디쓴 소주와 달디단 아이스크림이라니. 서로 다르고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궁합이 잘 맞다. 소주처럼 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인생을 달래주는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보험설계사인 세아는 보험을 팔기 위해 지인들에게 연락한다.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시선들과 불편함이다. 보험을 팔아야 하는 세아와 거절하는 지인들의 관계가 편할 리 없다. 그 과정에서 세아는 점점 더 외로워지고 쓸쓸해진다. 게다가 엄마까지 세아를 속상하게 한다. 세아는 연락이 되지 않는 언니를 만나기 위해 언니 집을 찾아가는데 언니는 나타나지 않고, 한 아줌마가 나타난다. 아줌마는 소주 빈 병을 아이스크림으로 바꿔 달라고 부탁한다. 세아는 아줌마의 부탁을 받아 아이스크림을 들고 오지만 아줌마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고독사로 떠난 것이다. 죽기 전에도 외롭게 살다가, 죽고 나서도 바로 발견되지 못하는 고독사. 고독사란 세 글자가 쓸쓸하게 느껴졌다. 아줌마의 삶도 쓸쓸했을 것이다. 다리를 다치고 일을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기 힘들어졌을 것이고,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어려워졌을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외로워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아줌마에게 필요했던 것은 누군가의 작은 손길, 작은 포옹 한번이 아니었을까. 타인의 무관심 속에서 아줌마는 점점 고독해지고 결국 고독사라는 슬픈 결말을 맞았다.

세아는 아줌마의 모습에서 연락이 되지 않는 언니의 얼굴을 떠올렸고, 자신이 매몰차게 거절했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고, 점점 쓸쓸해져 가는 자신의 얼굴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녀는 간절한 마음으로 언니의 집을 다시 찾아갔고 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둘은 아이스크림과 함께 소주를 마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한다. "나 한번 안아주면 안 돼?"

세아에게도 작은 손길이나 포옹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쓰디쓴 소주를 달래주는 아이스크림처럼 쓰디쓴 인생에 포옹이나 손길이 아이스크림같이 달콤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선 사이>는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것들까지 가볍지는 않았던 것 같다. 평소 가볍게 여기고 무관심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쳐다볼 수 있도록 만드는 그런 매력. 그 작은 것들은 우리 삶을 조금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시선 사이 떡볶이 과대망상자 소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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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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