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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양한 기생충이 있다. 비교적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회충과 요충부터, 전통적인 퇴치 대상이었던 머릿니, 이질을 일으키는 아메바까지 기생충의 세계는 다양하다. 기생충이 사는 숙주도 동물부터 물고기, 고래에서 사람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다른 생물과 달리 기생충의 존재는 사람들의 경멸의 대상이다. 대부분의 기생충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쩌다 보이는 거대한 기생충이나 현미경으로 확대한 기생충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흉측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몸에 다른 존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꺼림칙하기도 하다. 기생충이 우리 몸에 해를 끼친다는 인식도 강하다.

하지만 기생충 역시 생물 종의 하나이며,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생물이다. 기생충이라고 다 해가 되는 것도 아니라서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기생충도 있으니 마냥 멀리할 대상은 아닌 것이다. 물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기생충에 대해서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니 더 알아둘 필요가 있다.

착한 기생충, 나쁜 기생충, 독특한 기생충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겉표지.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겉표지.
ⓒ 서민,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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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생충에 대해 독학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한국엔 기생충학 대중화 전문가가 있다. 단국대학교 의대의 서민 교수는 유명한 기생충 전문가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다양한 강연을 진행하며 기생충학의 대중화에 힘써 왔다. 그런 서민 교수가 이번에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를 통해 우리를 기생충의 세계로 초대하고자 한다. 전작인 <서민의 기생충 열전>에서 다루지 않은 착하고 독특하고 나쁜 기생충을 다룬다.

책의 제1장은 착한 기생충, 제2장은 독특한 기생충, 제3장은 나쁜 기생충을 다룬다. 제1장에서 다루는 착한 기생충들은 사람들에게 큰 위험이 없고 비교적 얌전히 기생하는 무리다. 제2장에서 다루는 독특한 기생충들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기생충인 포충, 눈에 사는 동양안충 등이다. 제3장에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광동주혈선충, 이질아메바와 같은 무시무시한 기생충들이 등장한다.

제1장에 등장하는 착한 기생충 중에는 인간의 혈액을 빠는 기생충인 구충이 있다. 목을 앞쪽으로 구부린 갈고리처럼 생긴 기생충인데, 흙 속의 유충이 피부를 뚫고 들어와서 감염된다. 설명만 들으면 흉악한 기생충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인류에게 쓸모가 많은 착한 기생충이다.

전문가들은 구충이 면역반응을 조절함으로써 면역질환을 치료한다고 추측하고 있다. 또한 구충이 피를 빨 때 사람의 피가 굳지 않도록 분비하는 항응고제를 심장 질환이나 뇌졸중 환자에게 사용하는 특허도 회사에서 연구하고 있다고 하니 잘만 하면 수많은 인류를 살릴지도 모르는 의학계의 열쇠를 쥔 기생충인 셈이다.

제2장에 등장하는 독특한 기생충 중에서도 정말 독특한 동양안충은 눈에 사는 기생충이다. 다른 먹을 거리가 우글거리는 위나 장에 살지 않고 좁디 좁은 눈에 살고 있다. 다행히 대부분 사람보다는 동물의 눈에 산다. 감염 방법도 신기한데, 동물의 눈물을 먹고 사는 아미오타 초파리에 의해 감염된다. 위험성은 다른 기생충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 동양안충의 연구와 관련하여 서민 교수가 직접 기생충 연구의 어려움에 대하여 적은 기록이 함께 실려 있으니 그 고초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궁여지책으로 연구 잘하기로 소문난 건국대 유재란 교수의 연구실에 가서 배웠는데, 그때 받은 일이 바로 동양안충 연구였다. 첫 번째 과제는 우리나라 개의 동양안충 감염률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평소 개를 좋아하긴 하지만 개 눈꺼풀을 핀셋으로 제끼고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서로 좋은 일이라며 개를 다독였지만,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개들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 165P

생달팽이 먹을 땐 조심 또 조심 

외국에서 거대한 달팽이가 먹고 싶어졌다면 주의하여야 한다. 생달팽이를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간 달팽이 안에 들어있는 광동주혈선충 때문에 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3장에 등장하는 광동주혈선충은 달팽이 속에 살다가 쥐가 달팽이를 먹으면 쥐의 뇌에서 거주하는 기생충이다. 인간이 광동주혈선충 유충에 감염되면 뇌수막염을 일으키고 심지어 생명도 앗아가니 요주의 대상이다.

이렇게 다양하고 흥미로운 기생충을 다루는 기생충학은 현재 위기에 빠져 있다. 기생충학이 기본적으로 자연대가 아닌 의대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1997년 발생한 외환 위기 이후로 의대생들이 기초 의학연구를 기피하기 시작했고 현재 신진 연구자의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민 교수는 이러한 기생충학의 위기를 학자들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길 기원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어쩐지 눈에 띄는 조그마한 것들은 다 기생충이 아닌가 하는 찝찝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특별부록으로 기생충 감염 자가 검사법이 실려 있다. 눈 밑을 까면 있는 혈관을 기생충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으며, 늘 배가 고파서 몸에 기생충이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면 기생충은 하루에 밥풀 한두 톨 먹는 것이 고작이니 안심해도 좋다고 한다.

기생충을 다룬 대중서도 별로 없지만, 유머러스한 문체로 기생충을 다룬 책은 더욱 적다. 다양한 사진 자료로 기생충의 모습과 증상도 보여주니 어린이나 성인 모두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기생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니 생활 지식으로도 쓸모가 많다. 서민 교수의 다음 책이 기대된다.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 지구의 2인자, 기생충의 독특한 생존기

서민 지음, 을유문화사(2016)


태그:#서민, #기생충, #숙주, #감염, #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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