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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산행에 나선 아이에게는 산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호기심 덩어리다
 첫 산행에 나선 아이에게는 산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호기심 덩어리다
ⓒ 오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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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일요일 새벽 5시.

세 살배기 아들이 눈을 떴다.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것도 잠시 "엄마~ 아빠~"를 불러가며 자기랑 놀아달라고 칭얼대기 시작했다. 이럴 땐 최대한 꿈쩍 않고 자는 척 하는 게 상책. 하지만 이런 노력도 곧 이어진 아들의 눈, 코, 입 찌르기와 배 올라타기 공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요즘 아내는 둘째를 임신해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잔다. 결국 "오늘만이라도 내가 아들과 놀아야겠구나" 하는 심정으로 아들을 방에서 데리고 나왔다.

하지만 아이는 거실로 나오자 마자 "나가~ 나가~"를 외쳐댄다. 요즘 한창 밖에서 뛰어노는데 재미가 들어서 그런지 하루 종일 "나가~"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순간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을 바로 오늘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들을 안고 신발을 신긴 뒤 무작정 집을 나섰다.

밖에 나가는 것과 뛰는 것 그리고 차를 타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인지라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는 얌전했다. 지나가는 나무들을 보면서 "나무 많아~ 나무 많아~"를 외치는 아들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집 근처에는 낮은 산이 있다. 평소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며 오르락내리락 하는 산인데 성인 걸음으로 왕복 1시간 코스다. 언제 한번 아들과 함께 손 붙잡고 와야지 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눈곱은 둘째 치고 이빨도 못 닦고 까치집 머리까지 한 채로 아들과 등산로로 향했다. 결혼을 한 뒤 아내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근 3년간 산에는 가볼 엄두도 못 냈었다.

하지만 오늘 아들과 함께 산행을 한다니 같이 있는 것만으로 설레었다. 비록 세 살 인생에서 첫 산행이지만 아들도 씩씩하게 한발 한발 잘도 걸었다. 조그만 아이가 아장아장 씩씩하게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뿌듯한지.

'으으으~' 나무를 밀어보는 아이
 '으으으~' 나무를 밀어보는 아이
ⓒ 오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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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면서도 나무, 풀, 들꽃이 마냥 신기한지 가던 길을 멈춰 서고 한동안 바라보고 있지를 않나 커다란 나무에 고사리같이 작은 두 손을 대고 "으~~" 하고 미는 모습을 보니 마냥 웃음만 나온다.

그래도 산은 산인지라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지는 않을까 내리막길에서 뛰다 넘어지는 것은 아닌가 이래저래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다행히 세 살 꼬마의 첫 산행은 순조로웠다. 지나가는 아저씨, 아주머니가 귀엽다고 손을 잡을라 치면 "안돼~"라고 외치며 손을 뿌리치다가도 다시 환하게 웃어 주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오래도록 지금의 그 환한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평소보다 오래 걸린 산행이었지만 아들과 함께 하니 발길이 가벼웠다. 아들이 힘들어 하는 것 같으면 목마를 태워 주기도 하고 또 그게 지루한 것 같으면 길 위에 내려줘 같이 걸었다. "언젠가 아들이 성장하면 내 손을 잡고 날 이끌 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도 해 봤다. 먼 훗날 이야기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무슨 상상을 해도 즐거웠다.

하산길에는 아들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목마를 태웠다. 재잘재잘 끊임없이 떠들던 아이가 조용해졌다. 이상하다 싶어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어봤다. 반쯤 감긴 눈, 몸 중심을 잡지 못해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결국 남은 하산길 동안에는 아들을 안고 내려 왔다. 둘의 체온으로 온몸이 뜨거웠지만 아들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참 좋았다. 한참을 내려오니 등산로에 벤치가 있어 잠시 아들을 내려놓았다. 첫 산행이 피곤했는지 잠에 취해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남은 산행도 아들을 안고 내려 왔다.

아이가 크면 첫 산행을 추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빠는 아들과의 첫 산행 추억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다음에는 꼭 엄마랑 새로 태어날 동생과 다 같이 오자.


태그:#산행, #아이와아빠,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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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힘든 세상이지만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세상 사람만이 희망이고, 희망만이 살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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