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가면 당연히 발을 담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안 담그세요?"

무엇을 좋아하냐 물었더니 바다가 제일 좋단다. 키썸은 바다를 좋아하는 래퍼다. 이런 정의가 조금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한 시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든 생각은 딱 이랬다. 바다를 좋아하고 바다처럼 살고 싶은 사람. 키썸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그의 바다예찬에 조금만 귀 기울여도 쉽게 가늠할 수 있었다.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스타>에서 진행된 파도 같이 시원한 인터뷰 현장으로 함께 떠나보자.

단순한 건 바다

 키썸

키썸은 바다를 좋아한다. ⓒ 맵스엔터테인먼트


"바다는 아름답고, 생각을 단순하게 만들어줘서 좋아요. 바다에 가면 바다만 보게 되잖아요. 저는 깊게 생각하는 거 싫어요. 머리 복잡해지면 하던 일도 안 돼요."

키썸이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키썸이 추구하는 삶과 음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것 싫고, 꾸미는 것 싫고, 자연스럽고 솔직한 게 좋다. 지난 23일 발표한 그의 새 미니앨범 <뮤직(MUSIC)>에는 키썸의 이런 자유로운 성향이 가감 없이 담겼다.

그는 <뮤직>이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담은 앨범"이라고 말했다. 일상에서 친구들과 밥 먹거나 맥주 한 잔하다가 생각나는 것들을 랩으로 옮겼단다. 그래서 거창한 주제의식이나 삶에 대한 성찰(?)은 없다. 바꿔 말하면, 허세도 없다. 단지 생활인 조혜령의 솔직한 일상다반사가 담겼을 뿐이다.

키썸의 이러한 단순한 자기 고백은 청자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하고 고민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주제곡 '노 잼(No Jam)'에서 키썸은 뭘 해도 재미없다고 말하며 좀 더 신나게 놀고 싶다고 외치는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마음속으로 매일 외치는 말 아니었던가? 또 다른 주제곡 '옥타빵'도 소박하고 별거 아닌 가사로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내 꿈은 소박하게 내 방 하나 갖는 거야, 가족들과 겨울에 따뜻하게 사는 거야." 물론 키썸 자신의 이야기다. 키썸은 혼자만의 방을 아직 가져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취하는 건 바다

 키썸

키썸은 맥주도 좋아한다. ⓒ 맵스엔터테인먼트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는 건 바다'라는 시구가 문득 생각났다. 수록곡 '맥주 두 잔'을 들어도 알 수 있듯이 키썸은 맥주 애호가다. 그리고 키썸은 이번 앨범을 작업하며 완전히 자기 자신에게 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아닌 것'은 일절 취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솔직한 고백에 따르면, 이번 앨범 전에는 온전히 자기 자신답게 곡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이전까지, 랩을 하면서 행복했지만 뭔가 부족하고 공허한 느낌이 들었어요.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왜 자꾸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계속 궁금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안 해서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뮤직> 앨범에선 무조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이전까지는 자신이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 고민도 많았고, 방향성도 없었다는 키썸. 이번 앨범에서야 비로소 "나답게 내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스스로 답을 찾았고, 그것을 실천했다. 이를테면, 70%가 사랑 노래인데 사실 사랑을 많이 해본 적이 없어서 경험 반, 영화 같은 간접경험 반으로 곡을 썼고, 그럴 때마다 그 곡이 완전한 내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앨범에서 제일 먼저 쓴 곡인 '옥타빵'을 회사에 들려줬을 때 "곡 좋으니 작업 해보라"는 말과 함께 "이 부분은 수정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그때 키썸은 단호하게 "싫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며 "그 부분을 고치게 된다면 그건 온전히 내 곡이 아니게 되고, 곡이 변질하는 것"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행복한 건 바다

 키썸

키썸은 단순한 삶을 좋아한다. ⓒ 맵스엔터테인먼트


그의 음악적 고집이 멋있다고 생각됐지만 동시에, '나답게 밀어붙인 곡이 대중의 공감을 못 사면 어떡하나 걱정되진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키썸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곡을 쓰면서 '이 곡으로 대중에게 공감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만든 적은 없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먼저죠."

키썸은 이날 인터뷰에서 '내가 먼저'라는 말을 자주 했다. 모든 행복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이라는 철학이 확고했다. 랩을 왜 하느냐는 질문에도 "나는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서 행복한 일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 랩을 할 때 제일 행복했고, 무대 서는 걸 좋아해서 랩을 한다"고 명료하게 답했다. 그리고 랩은 나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이번 앨범에 있는 그대로의 키썸을 담아내고 나니 행복하냐고. 역시 망설임이 없었다. "행복해요!" 이 순간 미니앨범을 소개하고 있는 게 무척 행복하다는 키썸은, 이번 앨범을 발표할 때 꼭 자식을 시집보내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내 자식이 어디 가서도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면서도 "이미 내 손을 떠난 자식이니 어떤 반응도 좋다"고 했다.

외로운 건 바다

 키썸

키썸은 외로움을 많이 탄다. ⓒ 맵스엔터테인먼트


키썸은 외로움을 많이 탄다. 친구들과 같이 있어도 외롭다고 말한다. 쉴 때 무얼 하냐 물었더니 그냥 잠을 자고 커피를 마시고 여행을 좋아해서 바다를 보러 간단다. 얼마 전에 남해에 갔는데 바다가 너무 멋져서 숨겨두고 자기만 보고 싶었을 정도였다고. 속초 바다부터 제주도 협재 해변까지 다양한 '바다 이야기'가 이어졌고, 그 순간 키썸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바다는 키썸이 앓고 있는 인간 본연의 존재적(?)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처럼 보였다.

마지막으로 "왜 음악을 하느냐"고 물었다. 다음의 답변이 돌아왔다.

"가장 중요한 건 저죠. 만약 제 다음 앨범 계획이 8월이라고 해도, 나 자신으로부터 솔직하고 나다운 곡이 안 나온다면 억지로 앨범을 짜내진 않을 거예요. 중요한 건 앨범을 내는 게 아니고 제 이야기를 담는 거니까요."

매우 털털하지만, 가끔 외롭고, 바다에 가면 꼭 발이라도 담그고 오는 사람. 단순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본인의 성향을 랩 안에 '나답게' 담아내는, 앞으로도 그런 곡을 많이 들려주는 키썸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키썸 인터뷰 노잼 옥타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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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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