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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담대한 경제학자의 저서가 전 세계에 엄청난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저서는 한국에서도 출판되어 불평등에 관한 논쟁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논란의 주인공은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 토마 피케티였다. 그는 자신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갖는 불평등에 대하여 깊게 탐구했다.

그는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소득과 분배의 비율을 파악하고, 분배구조의 불평등을 논증했다. 그에 따르면, 소수 부유계층에 자본이 쏠리면서 불평등은 점점 심해진다. 따라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를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에는 찬반이 갈리지만, 그의 주장이 불평등에 대한 담론을 활발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경제학 서적은 원래 이해하기 쉽지 않은 데다가 그의 책은 무려 820p라는 엄청난 분량을 자랑한다. 대학교 전공 서적을 생각하게 하는 분량이다. 피케티의 주장을 조금이나마 더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책이 있으니 바로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다.

만화로 보는 21세기 자본
 만화로 보는 21세기 자본
ⓒ 고야마 카리코, 스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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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말 그대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쉽게 이해하도록 만화로 그린 책이다. 만화는 <교실 뒤뜰에는 천사가 묻혀 있다>를 그린 고야마 카리코가, 감수는 <21세기 자본>의 일본판 번역자인 야마가타 히로오가 맡았다.

책은 한국식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구성이 아닌, 일본식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도록 편집되어 있다.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만화와 섹션, 칼럼으로 나뉘어 있다. 만화 부분에서는 주인공 츠키무라 히카리의 이야기가, 섹션과 칼럼에서는 만화 부분에서 다뤄진 경제학적 함의와, 이와 관련한 피케티의 논의를 정리한다.

주인공 츠키무라 히카리는 평범한 중소기업을 다니는 회사원이다. 작은 광고 대행사의 사무직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애완동물로 문조를 기르고 있다. 특별한 물질적 자본도, 인적 자본도 없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으며, 직장의 사장은 임금을 체불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별한 경제학적 지식도 없다.

그러나 문조(애완용 새의 한 종류)를 키우는 모임에 나가면서, 히카리는 경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문조를 키우는 모임 회원들은 각자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다. 모임 장소를 제공하는 아마노가와 메구미는 거대 가문의 딸로 물질적 자본도 인적 자본도 풍부하다. 유명한 그림책 작가인 에비나 후쿠오는 과거에 인기작을 출간하여 인세로 살아갈 정도의 작가이다. 한편 중소기업 직원인 기노시타 켄토는 연봉을 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고, 대학 강사인 도이 키요시는 연구실을 갖는 것이 목표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히카리는 소득과 불평등의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경제가 어느 이상 성장한 나라에서는 경제성장이 둔화되어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유동성이 적은 사회에서는 재산은 대대로 물려지고 사회적 지위의 대물림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즉, '참고 노력하면 경제가 좋아지고 급여도 오른다'는 말은 환상 속의 이야기군요…?" 세계적 최첨단 기술이 있는 선진국에서 1인당 생산 성장률이 장기간에 걸쳐서 연율 1.5%를 웃도는 나라의 역사적 사례는 하나도 없다… 과거 수십 년을 돌아보면 최고 부자 국가의 성장률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성장은 최소한 연 3~4%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이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 51p

히카리와 함께 문조를 키우는 모임에 참여하는 후루토 메이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점차 격차 사회에 대해 절망하게 된다. 경제는 성장하지 않는데 자본 수익률은 높은 현실에 우울해 하는 것이다.

책의 핵심적인 주제는 자본 수익률이 경제 성장률보다 커지는 현실이다. 책에서는 이를 r>g로 표현하는데, 격차가 크게 벌어져 성실하게 일하는 것보다 세습으로 재산을 상속받는 것이 유리해지는 상황을 일컫는다. 책은 이런 격차가 민주주의 사회의 가치관과 맞지 않으며 갖지 못한 자의 불만이 쌓이는 원인으로 지적한다.

히카리는 스스로의 삶과 경제적 요소에 대해 고민한 끝에, 친구 아마노가와 메구미의 도움을 받아 애완동물 카페를 개업한다. 현실의 우리는 격차를 바꾸기 위해 뭔가 할 수 있을까. 피케티는 r>g인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세계적인 규모의 자본세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순수하고 안전한 경쟁은 r>g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실행하기 어렵다면 격차 시정을 위해 사회보장, 기술 보급과 기능 향상, 누진소득세 등을 위한 정책을 채택할 것을 주장한다.

어디까지나 만화책인 만큼, 피케티의 주장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나 사료 분석을 위한 책은 아니다. 경제학적인 내용을 읽는 데 필요한 마음의 긴장을 덜어주는 책이다. 경제적인 불평등과 격차에 대해 묘사된 부분이 많지만 마냥 어둡고 절망적이지도 않다. 피케티는 격차 문제에 맞설 해결 방법이 존재한다고 보고 있으며, 만화의 분위기도 전체적으로 가볍기 때문이다.

다만, 섹션과 칼럼의 경제학적인 설명이 간략하게 요약되어 있어 만화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부분은 아쉽다. 또 이 책만으로 방대한 내용의 전제를 다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 피케티의 주장을 간단하게 이해하고 경제학에 대해 흥미를 갖기 위해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 빈부격차 확대를 경고하는 피케티의 이론

야마가타 히로오 감수, 코야마 카리코 그림, 오상현 옮김, 스타북스(2015)


태그:#21세기 자본, #경제, #경제학, #만화, #피케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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