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한걸음 한걸음은 모두 새로 쓰는 역사였다. 웨일스가 더이상 돌풍의 팀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 한 경기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됐다. 웨일스는 에당 아자르-로멜루 루카쿠-케빈 데 브라위너-마루앙 펠라이니-티보 쿠르투아 등이 포진해 황금 세대로 불리는 벨기에를 당당하게 실력으로 제압했다.
크리스 콜먼 감독이 이끌고 있는 웨일스 축구대표팀이 한국 시각으로 2일 오전 4시 프랑스 릴 메트로폴에 있는 스타드 피에르 모루아에서 벌어진 UEFA(유럽축구연맹) EURO(유럽축구선수권대회) 2016 벨기에와의 8강전에서 3-1로 아름다운 역전승을 거두고 4강에 올랐다. 4강전에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끌고 있는 포르투갈을 상대하게 되었다.
벨기에, 나잉골란의 선취골까지는 좋았지만...
▲ 웨일스를 유로 2016 4강으로 이끈 가레스 베일. 사진은 지난 6월 21일(한국 시각) 열린 유로 2016 조별리그 B조 3차전에서 팀의 세 번째 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는 가레스 베일의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EPA
가레스 베일-아론 램지-조 알렌-애슐리 윌리엄스 등 웨일스도 벨기에 못지 않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와 스페니시 프리메라리가를 주름잡는 선수들이 즐비했지만 벨기에는 분명 버거운 상대였다.
경기 시작 후 7분 만에 벨기에 축구의 위력이 곧바로 드러났다. 비록 골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골잡이 로멜루 루카쿠의 왼쪽 측면 역습 크로스부터 시작한 그들의 공격 집중력은 놀라웠다. 야니크 카라스코, 토마스 므니에르, 에당 아자르가 연거푸 세 차례의 유효 슛을 퍼부었다.
여기서 더 놀라웠던 것은 몸을 아끼지 않고 내던지며 벨기에 선수들의 결정적인 슛을 모두 막아낸 웨일스 수비수들의 투지였다. 결과만 놓고 봐도 이처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수비력이 웨일스 축구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공격자 입장에서 '더 기술적으로 완벽하거나 상대 선수들보다 빨랐는가'와 수비자 입장에서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는가, 그리고 조직적으로 대응했는가'의 차이가 축구 경기의 점수판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 경기 결과에는 어느 팀이나, 어느 감독이라도 변명의 여지는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벨기에의 멋진 선취골이 터졌다. 13분, 에당 아자르의 패스를 받은 수비형 미드필더 라자 나잉골란이 그 공을 잡지도 않고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성공시킨 것이다. 나잉골란의 발등에 제대로 맞은 공은 회전 없이 웨일스 골문 왼쪽 톱 코너로 빨려들어갔다. 웨인 헤네시 골키퍼가 오른쪽으로 날아올랐지만 글러브 손가락 부분을 살짝 스쳤을 뿐, 도저히 쳐낼 수 없는 속도와 궤적이었다.
웨일스가 그냥 돌풍의 팀이라면 이 기막힌 선취골을 얻어맞고 의기소침하며 패배주의에 빠졌을 지도 모른다. 남은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그때부터 웨일스는 그들의 국기와 엠블럼에 새겨놓은 붉은 용처럼 용감하게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매력적인 웨일스, 아름다운 역전골26분에 아론 램지의 오른쪽 패스를 받은 윙백 닐 테일러가 과감하게 공격에 가담하여 오른발로 찬 슛은 웨일스의 반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천명하는 순간이었다. 비록 벨기에의 유능한 골키퍼 티보 쿠르투아의 슈퍼 세이브에 막히고 말았지만 8강 두 번째 경기의 대반전 포인트라고 하기에 충분했다.
웨일스는 30분에 멋진 세트 피스로 귀중한 동점골을 터뜨렸다. 아론 램지의 오른쪽 코너킥을 주장이자 센터백 애슐리 윌리엄스가 이마로 정확하게 꽂아넣은 것. 벨기에의 케빈 데 브라위너가 오른쪽 기둥 수비를 담당하고 있었지만 웨일스 선수들이 워낙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기에 공이 언제 날아 오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웨일스의 매력적인 축구는 후반전에 더욱 빛났다. 동점골을 얻어 맞으며 위기 의식을 느낀 벨기에의 빌모츠 감독이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멀티 플레이어 마루앙 펠라이니를 들여보냈지만 웨일스의 준비된 역습은 더 효율적이었다.
55분, 골잡이의 개인기가 아름답게 빛나는 역전 결승골이 터져나왔다. 웨일스의 할 롭슨-카누가 아론 램지의 패스를 받아 오른발로 부드럽게 잡아놓고는 왼발 뒤꿈치를 이용하여 180도 가량 회전하는 고난도 개인기를 자랑했다. 이 과정에서 벨기에 수비수 토마스 므니에르와 미드필더 마루앙 펠라이니는 축구장에서 가끔 볼 수 있는 '1+1=0'이라는 엉뚱한 공식에 휘말리고 말았다.
상대 선수 둘을 보기 좋게 따돌린 할 롭슨-카누는 매우 침착하게 왼발 인사이드 킥으로 결승골을 꽂아 넣었다. 어린 축구 꿈나무들에게 기본기를 왜 반복해서 연습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명장면이었다.
웨일스의 매력적인 역습은 86분에도 빛났다. 역습 과정에서 윙백 크리스 건터가 자로 잰 듯 정확한 크로스를 올려주었고 이를 후반전 교체 선수 샘 보크스가 멋지게 이마로 돌려넣었다. 극장골을 기대하며 뒷심을 쏟아붓고 있던 벨기에 선수들은 다리가 풀릴 수밖에 없는 웨일스의 완벽한 역습이었다.
벨기에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상대 공격수 가레스 베일을 어떻게 막아내는가 하는 점이 이 경기의 주요 대응 전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웨일스는 가레스 베일이라는 한 선수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팀이 아니었다. 그들은 수비 조직력과 집중력, 개인기, 역습 스피드 등 어느 것 하나 벨기에에게 뒤지지 않는 '매력적인 팀'이었다.
웨일스는 오는 7일 오전 4시 리옹에 있는 스타드 드 리옹에서 포르투갈과 결승 진출권을 놓고 실력을 겨루게 되었다. 이번 시즌 유럽 최고의 클럽에 오른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 소속의 가레스 베일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맞붙는 것만으로도 놓칠 수 없는 명승부다. 웨일스의 살림꾼 아론 램지가 바로 이 경기에 경고 누적 징계를 받아 뛸 수 없게 된 것이 변수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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