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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사라진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와 기술의 발달은 우리 모두를 일자리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평생직장의 시대는 오래 전 끝났고, 100세시대 누구나 2~3번의 일(業)을 해야 생존한다. 국가도 사회도 답해줄 수 없는 문제, 결국 개인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내 일은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다. 직장을 다니면서, 또는 홀로서기를 통해 '1인기업'을 운영해온 이들에게서 답을 찾고자 한다. '직장 다닌다고 직업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한 '1인기업가'들의 경험담을 통해 해법을 찾아본다. [편집자말]
2015년 중국 스타트업의 성지 심천 방문 당시 시드스튜디오 담당자와 함께한 민광동씨(오른쪽). 2008년 설립된 시드스튜디오는 메이터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품화시킬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2015년 중국 스타트업의 성지 심천 방문 당시 시드스튜디오 담당자와 함께한 민광동씨(오른쪽). 2008년 설립된 시드스튜디오는 메이터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품화시킬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 민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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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사제를 꿈꾸던 25세 청년은 대학시절 한 여성을 만나 속세의 삶을 선택하며 인생의 첫 변곡점을 맞는다. 성직자가 아닌 삶, 세상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던 그는 취업보다 생존을 위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에 주목했다. 부동산경매, 보험영업, 막노동, 사업, 장사… 닥치는대로 일하며 돈도 벌어봤지만 그 무엇도 '내 업(業)'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답답할 때는 늘 책을 읽으며 길을 찾았던 그는 톰 피터스(Tom Peters)의 <미래를 경영하라>를 만난 후 달라졌다. 두 번째 인생의 변곡점인 셈이다.

강의 및 컨설팅 7년차 1인기업가 민광동(37)씨는 스펙 화려한 엔지니어 출신들로 즐비한 기술창업 분야에서 드물게 인문사회계열 출신 강사로 활동 중이다. 그의 강의 분야는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계획서 2가지이며, 공학을 전공한 석박사급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기술기반 스타트업 코칭을 주로 하고 있다. 고벤처포럼에서 매달 정부지원금 및 사업계획서를 주제로 정보발표를 하고 있으며 광주과학기술원의 창업멘토로도 활동중이다.  

"대학 3학년때 전국을 돌며 토지경매를 공부했었어요. 그때 알게 된 부동산 교육업체에서 대표 수행비서로 8개월간 일한 것이 제 직장생활의 전부입니다. 결혼 후 보험영업부터 중고차 판매, 노점상까지 돈 되는 건 다했어요. 영업을 하며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서울근교 농장에서 농사일도 했었고요.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노예처럼 일만 했는데 어느 날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허겁지겁 밥 먹는 모습을 보던 아내가 울먹거리더군요. 그만두면 안되겠느냐고. 그길로 농사일은 그만뒀습니다."

이후 지인의 도움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벌였지만 모두 실패의 연속이었다. 서울 명동에 넓은 사무실을 얻고 호기롭게 시작한 인터넷통신 사업은 빚만 잔뜩 지고 접어야 했다. 대전으로 내려가 제약회사 총판, 인쇄업, 동영상콘텐츠 총판, 중고자동차 영업 등 계속 다른 사업에 도전했지만 모두 다 실패했다. 빚은 점점 더 늘었고 그 즈음 아내가 첫째 아이를 임신했다.

'그래 결심했어,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자.'

농수산시장 중도매상에서 새벽 4시 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하며 월급 150만 원을 받았다. 속은 편했지만 그 월급만으론 20년간 꼬박 빚만 갚다 끝날 것 같았다. 또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이다.

'장사를 배워 내 사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업을 찾을 것인가?'

오전엔 신문배달, 오후엔 도서관에서 책 읽기

첫째 메리, 둘째 욜라, 셋째 로와 함께. 여성들에게 대학교육을 처음 실시했던 '메리'워드, 민씨가 지원자로 몸담았던 수도회 창립자인 이냐시오 로'욜라', 남미에서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다 돌아가신 '로'메로 주교의 이름을 딴 아이들 세례명이다. 육아휴직중인 아내는 '가톨릭뉴스'에 연재했던 육아일기를 모아 육아서적<디어 마이 칠드런>을 다음달 출간할 계획이다.
 첫째 메리, 둘째 욜라, 셋째 로와 함께. 여성들에게 대학교육을 처음 실시했던 '메리'워드, 민씨가 지원자로 몸담았던 수도회 창립자인 이냐시오 로'욜라', 남미에서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다 돌아가신 '로'메로 주교의 이름을 딴 아이들 세례명이다. 육아휴직중인 아내는 '가톨릭뉴스'에 연재했던 육아일기를 모아 육아서적<디어 마이 칠드런>을 다음달 출간할 계획이다.
ⓒ 민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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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살 때 서울 창동 농수산시장에서 김을 구워 판 적이 있었는데 최다 매출을 올렸어요. 김 굽는 기계가 제 속도를 못 따라올 정도였으니까요. 스무살 땐 수산도매시장에서 생선을 팔았는데 그때도 제가 골라주는 생선 아니면 안 사겠다는 소매상들이 있을 정도로 장사에 소질이 있었어요. 그런데 장사는 하기 싫더군요. 그냥 이유없이 하기 싫었습니다."

'업(業)'을 찾기 위해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오전에 신문배달을 하고 이후 시간엔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대체 뭘 해서 먹고 사는지 궁금했고 '업'을 탐구하기 위해 읽고 또 읽었다. 찰스 핸디, 톰 피터스, 구본형 소장의 1인 기업가와 관련된 책을 읽으며 '1인기업 강사'라는 직업을 알게 됐고 두근두근 가슴이 설렜다.

"2010년 1월 대전의 가출청소년쉼터에서 첫 강의를 했습니다. 리더십 8주과정 책을 보고 강의안을 만들어 직접 찾아가서 강의 제안을 했죠. 첫 강의 후 그 다음주에 가면 아이들이 거의 없었어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석달 동안 꾸준히 하고 나니 스스로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강의안 만들기를 반복했다. 아직 강사로서 네임밸류가 없던 상황이니 시장진입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12년부터 '창업강의' 분야로 집중하면서 한밭대 창업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실무를 경험하기 위해 대학원 2학기부터 기술벤처기업의 창업멤버로 합류하게 됐다. 대학원과 회사생활을 병행하며 만든 콘텐츠를 모아 2015년 <스타트업을 하는 깐깐한 방법> 책을 출간했다.

귀촌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과 함께 놀 거리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이다.
 귀촌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과 함께 놀 거리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이다.
ⓒ 민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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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폐가 직접 수리, 연애시절부터 귀촌은 꿈"

민씨는 현재 ㈜폴리앤파트너스의 대표 컨설턴트이자 ㈜레이다앤스페이스라는 전자통신연구원 창업기업에서 사업화 기획 및 마케팅 업무를 겸하고 있다. 아내와 세 아이와 함께 충남 공주시 정안면에서 3년째 귀촌생활중이기도 하다. 귀촌은 헬렌과 스콧 니어링 부부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란 책을 읽은 후 부부가 연애시절부터 함께 꿈꿔온 로망이었다.

"오래된 폐가를 사서 손수 수리하고 200평 정도 밭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불편하긴 하지만 시골에선 아이들과 놀 거리가 많아서 좋습니다. 강의를 나가지 않으면 주로 집에서 생활하는데 1인기업으로선 별 문제 없습니다.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일곱 살, 다섯 살, 두 살 세 아이와 하루종일 씨름 하느라 일은 주로 새벽에 합니다."

강사 활동 초기 몇 년간은 돈을 벌기보다 써야할 때가 많았다. 강의가 없는 날에는 인력시장에 나가며 생활비를 벌기도 했다. 카드 돌려막기로 비수기를 넘길 때도 부지기수였고 예전 사업할 때 진 빚을 지금도 갚아나가고 있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가난'에 대한 역치가 높아졌다고 할까요? 저나 아내나 웬만해선 통장에 잔고가 없어도 그러려니 합니다. 어차피 바닥을 치던 때 시작했던 일이라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힘든 점이 없습니다. 뭘 해도 처음 시작했던 당시보다 나은 상황이니까요. "

7년차 1인기업으로서 수입에 대한 질문에 민씨는 외벌이로 5인가족 생계를 유지할 정도는 된다고 말한다. 실질수입은 비슷한 또래 과·차장급 대기업 직장인보다 많은 편이지만 1인기업인 만큼 혼자 감당해야 할 부분을 감안하면 체감 수입은 그들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민씨는 3가지 측면에서 직장인보다 만족도는 훨씬 높다고 말한다. 스스로 라이프스타일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 가족과 함께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 강의와 컨설팅 업무 자체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점. 1인기업가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에 대해 민씨는 분명하게 말한다.

"고객이 원하는 콘텐츠와 내가 원하는 콘텐츠 사이에 접점을 잘 찾아야 합니다. 고객이 원하는 콘텐츠만 좇으면 자신만의 전문분야의 깊이가 부족하고, 내가 원하는 콘텐츠에만 집중하면 직업이 아닌 취미생활이 돼버리죠. 쉽지 않지만 둘 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2015년 베트남 시장조사중인 민광동씨.
 2015년 베트남 시장조사중인 민광동씨.
ⓒ 민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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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씨의 주력분야인 기술창업 강의는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지만 2~3년 후면 경쟁이 치열해 질 것으로 내다본다. 스타트업 경험자나 고스펙 엔지니어 출신 강사들이 점점 늘고 있어 이들과 어떤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도 크다. 그러나 그는 조바심 내지 않는다. 현재의 일에 충실하다 보면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는 법, 소상공인센터로부터 2번의 해외창업 강의요청을 받고는 새로운 니즈가 있음을 직감했다.

해외창업을 직접 시도해보기 위해 작년 오사카, 홍콩, 중국 심천 등 2개월간 시장조사를 다녀왔다. 실무경험 만큼 좋은 스펙은 없으니 해외창업을 직접 해보면서 강의 콘텐츠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결론은 중국 일본보다는 베트남이 가능성 높다는 판단이었고 직접 베트남 현지에서 창업을 해보기로 했다. 마침 해외사업 관련 펀딩제안과 맞물려 내년 초 파트너와 함께 호찌민에서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저는 지금도 무조건 하루 50페이지의 책을 읽고 노트에 정리하는 습관을 갖고 있어요. 또 생존전략 차원에서 정보를 수집합니다. 2시간짜리 강의 의뢰가 들어오면 수강생 성향에 맞추기 위해 10시간 이상 준비할 때도 허다합니다. 1인기업에 도전하기 위해 자신만의 강력한 무기가 있다면 좋겠지만 없더라도 만들어가면 됩니다. 여건이 나쁘더라도 일단 주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하다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를 겁니다. 거기에 맞춰 실행하다 보면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들어갈 수 있어요."

매월 고벤처포럼 연사로 사업계획서 정보발표중인 민광동씨.
 매월 고벤처포럼 연사로 사업계획서 정보발표중인 민광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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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1인기업, #기술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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