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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온 후 보성
 비온 후 보성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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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국토종단 가려고."

아빠는 조수석에 앉아 차창 밖으로 어지럽게 스쳐 가는 보성 읍내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차를 타고 산소, 예당을 거쳐 보성읍으로 가는 길이다. 언제 얘기할까 한참을 망설이던 말을 불쑥 꺼낸 건 그때였다. 자동차 엔진 소리가 시끄럽게 울릴 때. 창밖에서 불어닥치는 바람 소리에, 비닐봉지에 꽁꽁 싸매버린 듯 단어들이 묻혀버리는 이때.

"국토종단?"

주무르고 있던 엄마 손에 힘이 갔다. 그래 봤자 희미하고 미약한 엄마의 손아귀 힘.

"응."
"…. 회사는? 또 그만둬?"
"회사가 별거야. 대단한 직장도 아닌데."
"미쳤어…."


다행이다. 엄마가 이번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했으면, 평생 그렇게 살 거냐고 화를 냈으면, 대체 돈은 언제 모으고 집은 언제 사고 애는 언제 낳을 거냐고 따졌으면, 울고불고 난리를 쳤으면 마음이 약해졌을지도 모른다.

성인이 되고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엄마의 기대를 차근차근 깨나가기 시작한 건. 교환학생을 가겠다고 난동을 부리더니 미국까지 가서 기껏 건져온 거라고는 밥벌이 갑갑한 영화과를 나온 엉뚱한 남자. 남자에 미쳐 취업 준비도 제대로 안 하다 작은 잡지사에 들어가더니 결국 1년 만에 나와서 다시 들어간 게 계약직. 그리고 또 계약직. 또 계약직.

너 자리 안 잡을 거야? 무슨 자리. 회사에서 정규직 자리 안 준대? 줘도 안 가져. 전세라도 얻어야지 월세 아까워서 살겠어? 식비랑 똑같은 거야. 그냥 살기 위해 쓰는 돈인데 뭐가 아까워. 그렇게 맨날 여행이나 가면 돈은 언제 모아? 돈은 쓸 만큼 있어. 엄마도 돈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만 해.

"아빠야. 당신 딸 국토종단 간단다."


엄마는 체념하듯 말했다. 뒷좌석 방향으로 고개를 슬쩍 돌린 아빠의 눈이 반짝였다.

"국토종단? 힘들 텐데…. 그런 건 우리 아들이 가야 하는데. 아들 너도 운동 좀 해야지."


아빠는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빠. 잠깐 휴가 내고 다녀온다는 게 아니야. 삼 개월 정도 걸릴 거야. 다녀오면 일을 다시 해야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진 모르겠어. 삼 개월? 아빠의 입술이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꽁하게 다물어졌다. 빛나던 눈동자에 그늘이 졌다. 정적이 흘렀다.

 아빠는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빠. 잠깐 휴가 내고 다녀온다는 게 아니야. 삼 개월 정도 걸릴 거야.
 아빠는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빠. 잠깐 휴가 내고 다녀온다는 게 아니야. 삼 개월 정도 걸릴 거야.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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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빠가 있으니까 엄마는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정해진 답이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빠가 그렇게 말해줄 거란 걸. 아픈 엄마 걱정은 말고 네 마음대로 살아. 해준 게 없어 미안해. 아빠는 실패했어. 이제 다 포기하고 엄마 건강만을 위해 살아야지. 그렇게 엄마 건강 회복에 매진하겠다며 보성으로 이사를 간 지도 일 년이 지났다.

나는 아빠의 심정을 백배 이용했다. 나는 늘 내 마음대로였다. 대학 졸업 무렵 들었던 취업 대비 엘리트 반의 일명 '호랑이 강사'는 자신이 키운 제자가 외국계 큰 회사에 들어가 꼬박 4년을 일해 부모님 차를 빼 드렸다며 너희도 응당 그래야 한다고 했다.

정신 바짝 차려. 누구나 직업은 필요한 거야. 직업 없이 살 수 있는 사람 있어? 이왕 가질 직장이면 좋은 직장, 이왕 벌 돈 많이 벌어 떵떵거리며, 부모님이 자랑스럽게, 그렇게 살아야 해. 엘리트도 아니고 떵떵거리며 살 필요도 못 느낀 나는 취업 엘리트 반을 한 달 만에 그만두고 호랑이 강사가 혐오하던 비정규직 자리를 얻었다. 계약 종료 후 다른 계약직으로, 또 다른 계약직으로 징검다리 건너듯 건너오며 여태껏 별일 없이 산다.

호랑이 강사가 말하던 대로 살았다면 엄마 아빠도 좋아했을까. 어떻게든 악착같이 노력해서 정규직 일자리도 구하고, 저축도 하고, 엄마 아빠에게 돈도 넉넉히 보내주는 그런 삶을 살았더라면 조금 덜 미안했을까. 중소기업 아닌 대기업에서 비정규직 아닌 정규직 대리로 일하며 월세 아닌 전세 오피스텔에 사는 오빠는 엄마에게 조금 덜 미안할까. 무겁다. 몸덩이에 벽돌 두 개가 달린 것처럼. 깊이, 깊이, 빠져들기만 하는 무겁고 어두운 죄책감. 엄마는 아픈데, 아빠는 힘든데, 나는 내 멋대로 산다.

 차창 밖 보성 풍경.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말이 없는 차 안에는 바람 소리만 가득하다.
 차창 밖 보성 풍경.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말이 없는 차 안에는 바람 소리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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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말이 없는 차 안에는 바람 소리만 가득하다. 나는 애꿎은 엄마의 손을 힘껏 주물렀다.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이모에게 내 여행 계획에 대해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이모의 호통이 들렸다. 걔는 여행에 미쳤다니? 아니 뭐. 견문도 넓이고. 더 넓은 세계도 보고…. 엄마는 소가지 없는 딸을 위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이 뭐 멋지게 사는 거지!

주무르고 있던 엄마의 손이 잠시 따뜻하게 오그라졌다. 창밖으로 돌린 엄마의 얼굴에 은근한 미소가 번졌다. 괜히 쑥스러워진 나도 엄마처럼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조금 웃었다. 엄마 고마워. 나, 내 멋대로 살게. 엄마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래야 엄마도 나도 이렇게 같이 웃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야, 엄마를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엄마 고마워. 나, 내 멋대로 살게.
 엄마 고마워. 나, 내 멋대로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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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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