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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철원 동송으로 가는 버스 안
 강원도 철원 동송으로 가는 버스 안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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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동송 버스터미널 옆 모텔 가격은 8만 원이었다. 하루 숙박비로 잡은 예산인 2만 5천 원에서 5만 5천 원이 넘치는 금액이다. 숙박비와 식사비, 그 밖에 기타 잡비를 포함한 우리 두 사람의 하루 예산인 3만 5천 원에 비해서도 4만 5천 원이 넘친다. 최신식 시설을 포기하기로 하고 옆집 모텔로 들어갔다. 6만 원. 그 옆 모텔도 6만 원. 그 옆 모텔은 7만 원.

"뭐야. 어떡해."

터미널에서 꽤나 멀리 걸어왔지만 모텔 가격은 6만 원 아래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더스틴은 시설과 규모에 비해 말도 안 되게 비싼 모텔 가격에 분노했고 나는 당장에 상황을 해결해주지 않는 더스틴을 원망했다.

"하루 예산을 3만 5천 원으로 잡자며. 이래가지고 되겠어? 아무리 못해도 하루 숙박비를 4만 원으로 잡았어야 하는 거 아냐? 거기에 점심, 저녁 밥값만 합해도 최소 6만 원이야. 그럼 한 달에 6만 원 곱하기 30일, 180만 원. 두 달이면 3백 60만 원 석 달이면…."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해."


실제 숙박비를 조사해보지도 않고 예산을 잡아버리는 경우가 어디 있냐며, 다녀보지도 않고 실제 숙박비를 어떻게 아느냐며, 이렇게 돈이 많이 드는 여행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다른 여행을 계획하는 게 나았을 거라며, 그런 소릴 할 거면 네 뜻대로 했으면 되지 왜 이제 와서 내 탓이냐며, 그렇게 싫으면 서울로 다시 돌아가라며 말다툼을 하는 사이 해는 졌고 우리는 절박해졌다. 하여간 우리는 태도부터 글러 먹었다. 국토종단이라는 부지런함과 성실함과 철저한 계획이 요구되는 여행의 시작에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서울을 떠나는 버스를 탄 것부터가 잘못이다.

"잠깐 앉아서 예산에 맞는 모텔을 찾을 방법을 생각해보자."

보이는 모텔마다 들어가 가격을 물어보는 미련한 짓을 그만두고 길가 한쪽에 쪼그려 앉았다. 그래, 우리는 나름 국내 여행을 꽤나 다녀 본 베테랑들이잖아.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텔 선정의 기준을 정해보자. 우선 터미널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모텔이어야 해. 모텔 외관은 최소 15년 이상은 되어 보여야 마땅하고. 모텔 상호는 '모텔'이 아닌 '여관'이나 '여인숙' '민박'으로 끝나야 가격이 저렴할 가능성이 커져.

나름대로 작전을 짠 우리는 다시 일어나 동송 시내를 구석구석 쑤시고 다녔다. 30분을 더 헤맸지만 5만 원 하는 모텔 하나를 겨우 발견했을 뿐이었다. 2만 5천 원은 그만두고서도 최소 4만 원 이하는 되어야할 텐데. 시간은 가고 발은 아픈데 철원 동송 숙박업계는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이건 뭐, 하룻밤 머무를 모텔방 하나를 구하는 게 서울 시내에서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 하는, 역세권인 데다가 시내와 가깝고 인근에 대형마트가 있으며 동네가 위험하지 않은 지층 10평 이상의 풀옵션 방을 찾는 것보다 더 힘들다.

"저기 싸겠다."

더스틴이 가리킨 숙소는 우리가 추구하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곳이었다. 우리는 이미 버스터미널에서 도보 20분 이상을 떨어져 나와 있었다. 숙소 간판의 나이는 족히 40년은 되어 보였다. 모퉁이가 지워지고 떨어져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운 상호지만 '모텔'이 아닌 '여인숙'으로 끝나는 이름인 건 분명했다.

간판만 그렇지 건물 내부는 상태가 양호하길 간절히 빌며 여인숙 앞으로 갔다. 빨간 문. 저 빨간 문 너머에 있을 방. 퀴퀴한 냄새와 오래 묵은 먼지, 숨겨진 곰팡이와 오랫동안 치우지 않은 재떨이. 얇은 벽 너머 들리는 옆방 아저씨의 통화소리. 문 닫은 지 오래된 상점들의 전화번호가 인쇄된 배달 음식 전단과 작은 텔레비전 화면을 틀면 나오는 성인영화.

"저기는 좀…."
"…. 조금 더 뒤져보자."


빨간 문 너머에서 여행을 시작하면 앞으로의 여행도 그 방처럼 우울하고 퀴퀴할 것이라는 암울한 예감에 더 절박해진 우리는 어두운 동송 시내를 뒤지고 또 뒤졌다. 은하 여인숙을 발견한 건 10분을 더 헤맨 뒤였다.

문을 열자 가루비누 냄새가 확 끼쳤다. 1층에서 이불 빨래가 한창이었다. 산뜻한 냄새가 마음에 들어 가격을 물었다. 3만 원. 예산에 비해 5천 원이 비싸지만 값을 깎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주인아주머니는 1인용 방이라 침대가 좁지만 괜찮다면 쉬다 가라며 열쇠를 쥐여줬다. 2층 방으로 올라갔다. 벽지에서 은은한 담배 향이 났다. 배달 음식 전단 옆에 텔레비전 리모컨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전원을 켜니 작은 화면 속에서 발가벗은 사람들이 느닷없는 비명을 질러댔다.

 철원 동송의 밤거리.
 철원 동송의 밤거리.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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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을 사는 한 우리는 루저가 아니다

앞으로 고기를 먹을 기회가 많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1인분에 3천 원 하는 삼겹살로 저녁을 먹었다. 여관으로 돌아와 변기통 옆에 달린 작은 샤워기로 샤워를 했다. 내일 저녁에는 샤워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밤에는 여관이 아닌 길가 어디에선가 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내일 밤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일 여행이 시작되기나 할까. 백마고지역으로 간 후 남쪽을 향해 걷기 시작하는 것 외에 아무런 계획이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걷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구를 만날지,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잠을 잘지,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는 좁다란 1인용 침대에 몸을 바짝 붙이고 누웠다. 발아래로 꺼진 텔레비전의 회색 화면이 보였다. 우리는 내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늘 내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국으로 가서 살 수도 있어. 대학원에 들어갈 수도 있어. 돈을 좀 모아야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2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고민과 나아지지 않는 상황들.

오늘의 내일 이야기는 조금 방향이 다르다. 7시에는 일어나야 할 거야. 백마고지로 가는 시내버스는 검색해놨지? 가서 바로 걸음을 시작할지는 모르겠어. 백마고지 근처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부터 걸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걷기 시작하면 중요한 건, 지치지 않는 거야. 물을 많이 마시고, 잘 먹고, 잘 쉬어야 해.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속이 울렁대서 더스틴을 향해 모로 누웠다. 작은 매듭 여러 개가 뱃속에 들어앉은 기분이었다. 매듭 조각들은 개미가 되어 뱃속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침대에서 일어나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뱃속에 들이부었다. 차가운 맥주로도 매듭은 삭혀지지 않았다. 더스틴도 불안한지 배를 벅벅 긁어대다 창문을 열어 동송 시내를 바라봤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어둑한 골목길을 걸었다.

더스틴, 우리는 루저야?

아니 루저 아니야.

루저 맞는 것 같은데. 우리 이제 30대야. 안정을 찾아야 할 나이라고. 결혼한 지 4년이 됐는데 우리를 봐, 애도 없고 집도 없고 제대로 된 계획도 없고. 그나마 살고 있던 집도 없애버리고 하룻밤 3만 원 하는 모텔방을 찾겠다고 두 시간을 헤매고 다녔잖아. 믿을 수 없을 만큼 찌질해. 아무래도 반박할 수가 없어. 우리, 루저 맞는 것 같아.

아냐, 우리 루저 아니야. 불안하다고 사람들 기준에 맞춰 사는 게 더 나약한 거야.

뭐라도 될 줄 알았던 서른한 살. 적어도 불안하지는 않을 줄 알았던, 방향 없는 방황 같은 건 오래전에 끝났을 줄 알았던 나이.

뭐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것도, 제대로 갖춰진 것도 없는 엉망진창의 현재. 될 대로 되라지 하는 마음으로 떠나버린 서울과 직장과 친구들. 동송의 밤거리보다 어둡고 막막한 앞으로의 길.

어둑한 밤공기가 콧속에서 살랑거렸다. 한없이 짙어 보이던 검은 공기는 의외로 상쾌했다. 나는 달빛을 보며 걷는 더스틴의 손을 잡았다.

나쁘지 않아. 가진 게 없다는 건, 속박당할 것도 없다는 거니까. 집도, 직장도, 관계도,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는 상태. 모든 것이 멈춘 상태. 오로지 여행으로만, 길만으로만 꽉 찰 당분간의 시간. 돌아갈 공간도, 돌아갈 관계도, 아무 기반도 남아있지 않은, 공중으로 붕 떠버린 상태. 어지러운 기분이 된 나는 더스틴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두렵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건, 오랜만의 설렘이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두렵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건, 오랜만의 설렘이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두렵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건, 오랜만의 설렘이었다.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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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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