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작가 백남준(1932.7.20. ~ 2006.1.29.)의 생전 모습. ⓒ 백남준아트센터


작가 백남준 (1932.7.20. ~ 2006.1.29.)

7월 20일은 그가 태어난 날이며 올해는 그가 떠난 지 10년 되는 해다. 그의 절친 요셉 보이스가 떠난 지 꼭 30년 만에 그의 곁으로 돌아갔다. 또한 20일은 그가 먼저 떠난 요셉 보이스를 기리기 위해 현대 화랑(갤러리 현대) 뒷마당에서 <늑대의 걸음으로>라는 이름의 추모 굿을 펼친 날이며 동시에 인류사적으로는 그가 가장 오래된 TV라 불렀던 달에 인간이 처음으로 발 디딘 날이기도 하다. 즉 20일은 작가 백남준에게도, 그저 무더운 일상을 지나는 중인 우리에게도 꽤 의미가 있는 날이다. 그리고 조금 더 유난 떨자면 그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떻게 유효한지를 잠시 멈춰 생각해보기에도 썩 괜찮은 즈음이지 싶다.

1984년 미국의 공영방송 PBS와 뉴욕의 WNET 주관 아래 그가 미국, 프랑스, 독일, 덴마크 등 전 세계 11개국에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송출해 범지구적인 충격을 터뜨린 지 30년이 넘었다. 백남준은 이 프로젝트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지만 동시에 40만 달러를 빚지게 되었다. 이것은 아이러니다. 물론 록펠러 재단으로부터 17만 달러를 후원 받았고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과 같은 동료 작가들의 작품을 팔고 파리 방송, KBS와 같은 방송사의 지원으로 약 10만 달러 정도의 금액이 더 모였지만 그는 이 위성 아트를 끝내고도 몇 년을 더 지독히 고생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진정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술이란 그 스케일이 지구를 덮어도 결코 남는 장사는 못되는구나'와 같은 미디어 아트 특유의 반(反)사업성이 아니다. 그럼 당시 돈 40만 달러라는 거금을 들여가면서까지 그가 TV라는 캔버스에 그리고자한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대중을 긍정하다

 백남준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스틸컷

백남준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스틸컷 ⓒ 백남준아트센터


그는 TV쇼의 방식으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기획하고 연출했다.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조지 클림튼(George Plimpton)을 진행자로 세우고 뉴욕, 파리 등 세계 곳곳에서 스타들을 출연시켜 100여 명의 세계적 아티스트를 1월 1일 오후 12시, 한 채널, 한 프로그램 속에 혼재하도록 집결시켰다. 그것은 말 그대로 혼재(混在)였다. 샬롯 무어만, 존 케이지와 같은 아방가르드 작가들뿐만 아니라 이브 몽탕이나 톰슨 트윈스와 같은 대중적인 스타들이 함께 자리했다. 그들은 차례로 나와 단순한 해프닝 예술은 물론 노래, 코미디, 악기 연주들을 선보였다. 모든 이들이 어울릴 수 있도록 그는 TV쇼를 디자인 했다. 그에게 대중은 중요했다.

그에게 인공위성은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고 그래서 그는 TV를 긍정했다. 그에게 TV는 작품을 위한 재료 혹은 오브제 그 이상이었다. 그에게 매스미디어는 만국민에게 고스란히 전달 된 에스페란토어였다. 그는 대중을 긍정했고 그래서 그들과의 소통을 긍정했다. 당시로서는 다소 무모했던 생방송의 방식으로 진행한 것 역시 이것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실시간으로 아티스트들의 모습을 방송함으로써 '사전 검열'과 같은 모종의 빅브라더에 대한 가능성을 차단하는 동시에 일절의 왜곡이나 편집 없이 송출함으로써 기술 속에서 가장 완전한 인간상을 구현한 셈이다. 잘못이 두려워 공영방송이라는 무게를 외면하고 아예 채널을 닫아버린 어느 녹취록 속 두 위인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그는 다소 비관했던 조지 오웰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백남준 식 버라이어티의 오프닝에서 조지 클림튼은 말했다.

"오웰…. 당신은 좀 틀린 것 같군요."

쇼는 성공이었다. 전 세계에서 2500만명이 시청했고 백남준은 이것으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백남준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스틸컷

백남준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스틸컷 ⓒ 백남준아트센터


그를 추동하는 힘은 언제나 긍정으로부터 나왔다. 백남준의 로봇과 브라운관은 인간을 옥죄는 뻔한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백남준 식 테크놀로지는 그것들이 인간의 팔 다리, 혹은 두뇌와 관계를 빼앗겨 버릴 것이라는 당시 이념에 대한 반박이었다. 그는 웃으며, 긍정하며 반박하는 재주가 있었다. 물론 그것은 조소나 조롱이 아니었다. 그는 특유의 너털웃음과 유머로 유럽의 여느 지식인들도 공연히 웃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고 그런 특유의 성품 때문이었는지 그는 비관하고 부정하는 힘으로는 예술이 나아갈 수 없음을 굳게 믿었다.

"창조가 없는 불확실성은 있지만 불확실성 없는 창조란 있을 수 없다"라고 말하는 그는 심지어 부서지는 피아노에서도 창조와 탄생을 찾았다. 다소 기괴하게 변형된 그의 피아노에서는 건반을 누르면 드럼의 타음이 나고 라디오의 주파음이 흘러나왔다.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가 당시 보여줬던 파괴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터지고 있는 유아적인 반달리즘 분자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하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의 주 무기였던 파괴라는 그 창조의 맹아를 그들이 얼마나 폄하하고 있는지, 그들이 망치고 있는 것이 단순히 가시적인 사회 질서와 같은 영역이 아닌 그 이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지표가 된다.

백남준식 '창조철학'

"표현은 인간의 자유를 뜻한다. 예술은 인간의 배설적 행위이기 때문에 사회의 안전벨트 역할을 한다."

98년 교토 상 수상 후 그가 한 말이다. 안전벨트가 되는 그의 파괴는 새로운 시작점을 강하게 아로새기기 위한 강력한 긍정 행위이다. 또한 그의 몸 속 깊게 배어있는 창조에 대한 백남준 특유의 철학은 신기루와 같은 (정책화된) 대한민국의 창조, 그 크리에이티브 콤플렉스에 오랜 시간 시달리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지금 같은 시기 더없이 시원한 오아시스가 될 것이다.


 백남준 <바이바이 키플링> (1986) 스틸컷

백남준 <바이바이 키플링> (1986) 스틸컷 ⓒ 백남준아트센터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이후로도 백남준은 1986년에 <바이 바이 키플링>, 1988년에는 올림픽을 기념하는 <손에 손 잡고>를 구현함으로써 '위성 오페라 3부작'을 완성시켰다. 특히 <바이 바이 키플링>은 정글북의 작가로도 유명한 영국의 러디어드 키플링에 대한 전면적 공격이었다. "동은 동, 서는 서, 이 둘은 영원히 만나지 못하리"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키플링에게 백남준은 강력한 펀치를 가한 것이었다.

또한 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일주일 전 이뤄진 <손에 손 잡고>에서는 그 제목처럼 인간을 지향하는 그의 목적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데이빗 보위, 류이치 사카모토와 같은 유명 뮤지션들이 참여 했던 이 프로젝트에는 특히 소련의 세르게이 큐효힌과 그의 밴드가 레닌그라드에서 연주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백남준이라는 문화 코드가 이념을 넘어서는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통이라는 이름의 미디어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맞춘 백남준 위성 프로젝트 '손에 손잡고(Wrap around the World)'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맞춘 백남준 위성 프로젝트 '손에 손잡고(Wrap around the World)' ⓒ 백남준아트센터


인간은 백남준이 실행한 모든 예술의 최종 지향점이었다. 그에게 소통은 인간과 인간 사이를 메우는 미디어 자체였다. 그는 텔레비전, 전자회로의 네트워크를 불교, 도교의 인연과 같다 보았고 나아가 그것들이 결국에는 모두 노자의 도와 같다 여겼다. 그는 아이들이 자신의 작품에 자석을 가져다 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이의 자석이 음극관에 가닿는 순간, TV 속에 주사되는 이미지들이 기계의 것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신의 예술, 그리고 인간의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즉 <참여TV(1969)>나 <랜덤 액세스(1963)> 와 같은 작품에서 나타나는 그의 쌍방향성(Interaction)은 단순히 관객의 흥미를 끌기 위한 요소가 아닌 기계라는 수단을 통해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 단계인 셈이다. 이렇듯 그의 예술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인간의 모든 행위를 긍정한다.(심지어 그는 자신이 로봇을 이용해 작업하는 것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말했다. 자신의 로봇들을 구동하는 데는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고위 공무원들이 대중을 개·돼지쯤으로 아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이것은 우리 국민의 낮아진 자존감과 자의식이 마냥 우리의 괜한 피해의식 탓이 아니라 분명한 외부의 폭력에 의한 것임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구의역 사건에 대해 술자리에 앉아 "어떻게 그게 내 자식 일처럼 느껴지냐" 따위와 같은 뒷말이나 편하게 하시도록 우리를 때 되면 세금이나 내는 기계쯤으로 아는 이들이 나랏일을 도맡은 시대에, 특히 그런 이가 교육부의 소속이라는 사실 속에 아이를 진정 좋아하던, 아이들이 진정 좋아하는 그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백남준이라는 큰 산이 자신의 작업을 통해 우리 존재를 온전히 긍정하고 있음은 어떤 포퓰리즘 잔뜩 묻은 정치인들의 감언이설 천 마디보다 큰 위로가 된다. 그가 평생을 온 힘 바쳐 긍정하는 대상이 우리 자체라는 사실은 그 어떤 지성의 조언보다 분명하고 따뜻한 독려가 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맞춘 백남준 위성 프로젝트 '손에 손잡고(Wrap around the World)'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맞춘 백남준 위성 프로젝트 '손에 손잡고(Wrap around the World)' 중에서. ⓒ 백남준아트센터


1984년부터 1986년, 1988년. 2년 간격으로 위성 쇼를 진행하던 백남준은 정확히 2년 뒤 1990년 7월 20일, 지금의 '갤러리 현대' 뒷마당에서 보이수를 위한 굿을 한다. 보이수(普夷壽)는 그가 생전 아끼던 요셉 보이스에 한국식 이름을 지어준 것으로 그 자리에는 피아노, TV에서부터 물론 우리의 전통 물건인 곰방대와 제기(祭器), 그리고 보이스의 상징과도 같은 토끼까지 다양한 장르의 오브제들이 뒤엉켜 등장했다. 진정 해원(解寃)의 굿을 넘어선 향연의 장이었다. 그의 강한 퍼포먼스에 함께 있던 다른 무당들이 기가 눌리고 마당 중앙의 나무가 벼락에 맞아 쓰러질 정도였으니 이는 그 자리에서 그의 기운이 어땠는지 가히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끝나고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백남준은 "보이스가 다녀갔구먼!" 하며 좋아 했다고.

이 자리는 보이스를 위한 굿판이었지만 평생 광대이기를 자처한 백남준은 실로 우리 모두가 쉬어가며 의지하기에 충분하고 또한 영험한 영매다. 실제로 생전 그는 영매(A medium) 노릇을 톡톡히 수행한 작가였다. 기술과 미술의 경계에서,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서, 대중 예술과 아방가르드의 경계에서, 마지막으로 사람과 기계의 경계에서 그는 누구보다 중간자의 역할을 완전하게 수행했다.

천년을 쓸 수 있는 문화자본?

 백남준

다수의 전시관에서 백남준이 당신을 기다린다. ⓒ 백남준아트센터


누군가는 백남준의 존재를 두고 "천년을 쓸 수 있는 문화자본"이라고 했다. 그런 백남준 선생은 생전 우리 민족을 두고 20세기 죽도록 고생했던 만큼 21세기에 더욱 잘 나아갈 것이라 굳게 믿었다. 이것은 그저 백남준 특유의 성품에서 나오는 낙천적 맹신이 아니다. 반평생을 TV로 예술하느라 제작비 마련에 늘 골머리를 앓았고 군사정권 시절 작품명 하나 짓는 데도 나라의 눈치를 보며 작품 활동을 해오던 그였다.

그럼에도 그는 나라를 긍정했고 자신의 삶을 긍정했다. 그는 한숨 쉬고 부정하는 힘으로는 그것이 무엇이든 지속적으로, 그리고 진정 아름답게 빚어 낼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이것이 미디어 아트, 비디오 아트의 시초가 복제의 아이콘, 팩토리 아티스트인 앤디워홀이 아니라 백남준이 되는 분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다수의 <자화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작품 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돌부처의 이미지다. 어지러운 삶에 몸이 지쳤다면, 그보다 마음은 더욱 지쳐있다면 천년은 가히 의지할 수 있는 '백남준' 만신에게 잠시 다녀오자.

이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서울시립미술관(SeMA), 백남준 문화센터 등 다수의 공간에서 그를 기념하는 전시를 현재 진행하고 있다.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창신동 집터에는 '백남준 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인간 백남준을 되짚는 공간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 이 밖에도 나라 곳곳에서 그를 돌아보는 전시가 진행 중이니 어렵지 않게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곳을 들어가든 웃는 얼굴의 백남준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웃으며 당신에게 말해줄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완전히 아름다운 인간 존재라고.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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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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