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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마가 달리고 싶어 하는 데는 백마고지역이 아니고 월정리역이다. 백마고지역에도 (세운지 얼마 안 된) 철마가 달리고 싶다는 싸인이 있긴 하지만.
 철마가 달리고 싶어 하는 데는 백마고지역이 아니고 월정리역이다. 백마고지역에도 (세운지 얼마 안 된) 철마가 달리고 싶다는 싸인이 있긴 하지만.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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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의 시작점을 철원하고도 백마고지역으로 정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비장미였다. (계약직이었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월세였지만) 집을 빼고 떠난 여행이니 그만한 의미를 부여해 줄 어느 정도의 비장미가 필요했다. 남북 분단으로 끊긴 철도, 녹슬어버린 철마,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애절한 문구. 백마고지역이라면 적당하다.

"거기는 투어로만 갈 수 있어요."


바늘 하나가 겨우 들어갈 작은 구멍들이 규칙적으로 뚫린 관광안내소의 플라스틱 창문 뒤로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 여자의 입술이 움직였다. 아, 철마가 달리고 싶어 하는 데는 백마고지역이 아니고요 월정리역이에요. 걸어간다고요? 안보 지역이라 안 되죠. 거기는 투어로만 갈 수 있어요.

망했다.

"그럼 투어를 하지 뭐."


 백마고지, 월정리역 등은 투어로만 접근 가능하다
 백마고지, 월정리역 등은 투어로만 접근 가능하다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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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분한 마음이 들어 입을 삐쭉이는 나에게 더스틴이 말했다. …. 뭐? 투어를 하자고? 처음부터 끝까지 걷자고 온 거 아니야? '철마는 달리고 싶다'에서 걸음을 시작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건데, 투어 따위로 우리의 여행을 시작하자고? 도보여행을 차 타고 시작하자고? 안돼. 내 비장미는 어쩌고.

투어가 뭐가 어때서? 한국을 더 이해해보자고 떠나온 여행 아니야? 더 많이 보고 경험하자고 걷는 건데 투어 한 번 하는 게 뭐가 대수야? 투어를 통해서만 월정리역에 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되지. 차를 타고 안 타고, 투어를 하고 안 하고가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투어를 하네 마네 승강이를 벌이는 우리를 한참 지켜보던 관광안내소 직원은 시답잖은 다툼이 지루해졌는지 창문 저 너머로 사라져 커피믹스를 홀짝였다. 홀짝이는 소리가 그치는가 싶더니 분홍 입술이 다시 창가로 등장했다. 아, 오늘 그 투어 못하겠다. 최소 인원이 10명은 돼야 출발하거든요. 월요일인데 사람이 더 올 리도 없고.

"택시를 타고 갈 수는 있어요."


안내소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 한 명이 막 소개를 받은 토크쇼 게스트처럼 두 발짝 성큼 우리 앞으로 다가섰다. 우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안내소를 떠났다.

"괜찮아. 철마가 달리고 싶은 곳에서 시작할 수 없다면, 걸어서 갈 수 있는 최북단에서 시작하면 되지."
"그게 어딘데?"
"백마고지 기념관."


아 멋대가리 없게. 백마고지 기념관이 여행의 시작이라니. 어쨌든 시작되었다. 우리의 비장하지 못한 여행이. 최북단 월정리역도 아니고, 백마고지도 아니고, 백마고지가 보일락 말락 하는 백마고지 기념관에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일단 시작했으면 반은 된 거라는 말일까. 아니면, 시작부터 망했으면 끝도 뻔할 거라는 말일까.

 백마고지 기념관에서 바라본 백마고지
 백마고지 기념관에서 바라본 백마고지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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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당시 국군과 중공군이 백자고지를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심한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내려보면 마치 백마(白馬)가 쓰러져 누운 듯한 형상을 했다고 해서 백마고지다.
 625 전쟁 당시 국군과 중공군이 백자고지를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심한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내려보면 마치 백마(白馬)가 쓰러져 누운 듯한 형상을 했다고 해서 백마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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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시작, 백마고지 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중공군이 고지 탈환을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백마고지. 10일간 지속된 전투로 약 30만 방의 포탄이 사용되었고 한국군 3400여 명, 중공군 1만여 명이 사상되거나 포로가 되었다. 고지의 주인은 24번이나 바뀌었는데, 심한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내려보면 마치 백마(白馬)가 쓰러져 누운 듯한 형상을 했다고 해서 백마고지다.

그 바로 옆 마을이 대마리. 도로엔 시뻘건 지뢰 주의 표시가 즐비하다. 빨갛고 세모난 지뢰 표시를 하나, 둘, 셋, …. 열 개 정도 지나면 군부대. 또다시 열 개를 지나면 군부대다. 대마리 마을 초입에는 다음 주에 열릴 마을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달려 있었다. 대마리 입주 47주년 기념 마을잔치.

대마리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건 1967년이다. 본래 북한 소속이었던 철원지역을 남한이 수복하고, '수복 지역에 사람들을 이주시켜 농사를 짓게 하면 식량 증산이 가능할 뿐 아니라 북한의 침략에 즉각 대응하고 대북 심리전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정부가 이주민을 들여왔다. 막 이주한 주민들은 천막생활을 하면서 농간지를 개간했는데, 농지를 개간하기 위해 땅에 묻힌 지뢰를 제거하다 죽거나 다친 사람이 여럿이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 3,400여 명, 중공군 1만여 명이 사상되거나 포로가 되었다는 백마고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철원 대마리 길가엔 시뻘건 지뢰 주의 표시가 즐비하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 3,400여 명, 중공군 1만여 명이 사상되거나 포로가 되었다는 백마고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철원 대마리 길가엔 시뻘건 지뢰 주의 표시가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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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리 마을 초입에는 다음 주에 열릴 마을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달려 있었다. 대마리 입주 47주년 기념 마을잔치. 대마리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건 1967년이다.
 대마리 마을 초입에는 다음 주에 열릴 마을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달려 있었다. 대마리 입주 47주년 기념 마을잔치. 대마리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건 1967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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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지뢰가 묻혀있을지도 모르는 간담 서늘한 곳이지만 길가 양쪽으로 펼쳐진 논밭만은 푸르고 푸르다. 백마고지 기념관을 둘러본 우리는 5km 거리의 노동당사를 향해 걸었다. 빨간색 지뢰 주의 표시와 색감이 묘하게 어울리는 벽돌색 도로표지판에는 좌측으로 8km를 가면 월정리 전망대가 나온다는 안내가(우리를 약 올리듯) 적혀 있었다.

8km. 걸어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아무리 북한이라지만 지척에 있는 곳을 투어가 아니면 못 간다고 생각하니 괜히 심술궂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하여 노동당사 방향으로 얌전히 걷던 우리는 군부대 앞에서 일을 벌이고 말았다. 군부대 입구를 지키고 선 병장에게 저벅저벅 걸어가 버린 것이다!

"저기요. 저희가 국토종단 중인데. …. 오늘이 그게. 첫날이거든요. 월정리역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은데. 그게…. 거기까지 걸어갔다가 금방 나오면 안 될까요?"

(당연히도) 한국말은 더스틴과 나 둘 중 내가 더 잘하지만, 문제는 내 말주변이 그리 신통치 않다는 거였다. 저기요! 하고 크게 내지른 내 목소리는 '국토종단'부터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월정리역'에서부터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최전방에서 심각하게 국방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 앞에 서서 재미없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기분이랄까. 힘들게 폐지를 끌고 가는 할머니의 수레에 가방을 올려놓고 철딱서니 없이 킥킥 웃다가 문득 부끄러움을 알아버린 아이의 기분이랄까. 괜히 왔다. 괜히 물어봤다. 5초간 아무도 말이 없었다. 질문을 띄운 나도, 내 옆에 선 더스틴도, 황당한 질문을 받은 군인도. 군모 아래로 동그랗게 그늘진 군인의 앳된 얼굴에 당황이 묻어났다. 꼼지락거리는 군인의 손 뒤에는…. 총? 진짜 총!

"그게…. 걸어가실 수는 없을 텐데…. 차를 타야 갈 수 있는데…. 상병에게 여쭤볼게요 근데…. 상병이 지금 안 계셔서…."


물총도 아니고 비비건도 아니고 귀 뚫는 총도 아닌 실제 총에, 그것도 우람한 군인 키의 반이 넘는 거대한 총의 위협에 놀라 뒷골이 스산했으나 아무렇지 않은 척 당당하게 선 나에게 군인이 한 말. 오히려 당황한 건 군인이었다. 나는 쿨한 척 알았다고 돌아서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만두자. 철원 최전방 지역에 와서 안보 지역을 걸어가겠다니. 바보짓도 정도껏 이어야지.

 백마고지 기념관으로 이어지는 도로
 백마고지 기념관으로 이어지는 도로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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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마고지 전투 기념비
 백마고지 전투 기념비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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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가세요? 태워드릴게요."

미련을 버리고 갈 길이나 가고 있는데 군용차량이 멈춰 섰다. 차? 차를 타면 갈 수 있다고 했지. 그냥 차도 아니고 군용차량이 갈 데까지 태워주겠다니. 겨우 잠재웠던 미련이 갓 포장한 아스팔트 위 연기처럼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사정을 설명했다. 두 번째 하는 설명이라 훨씬 논리적이었다. 상대방이 먼저 제안한 도움이라 자신감도 있었다. (하루도 안 됐지만) 국토종단을 하고 있고, 월정리역에 꼭 가고 싶다. 투어는 인원이 안 차서 오늘 운행을 안 한다는데 이 차로 들어갈 수 있냐. 아무래도 군용 차량이니까 가능하지 않겠느냐.

"그래요? 일단 타보세요. 저희랑 같이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


쑥스러움 가득한 동그란 군모 속 앳된 병장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노련함과 짬밥이 느껴지는 그의 대답. 더스틴과 나는 신이 나서 차량 위로 올랐다. 첫날부터 차를 타면 되겠냐고 따지던 두 시간 전의 나는 까맣게 잊었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는 순간 방지턱을 지난 지프차가 덜컹거렸다. 가방 속 수첩이 공중으로 붕 떴다. 덜컹대는 군용 차량의 박자에 맞춰, 조수석에 앉아있던 군인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국토종단 하시면, 철원에서 어디까지 걸으시게요?

부산. 부산이요.

부- 하고 발음할 때 파르르 떨리던 입술이 산-하고 발음하자 설렘인지 긴장인지 모를 감정을 털어냈다. 걷기 시작한 지 이제 두 시간. 벌써 이렇게 말해버려도 되나. 부산에 간다고. 걸어서 부산까지 갈 거라고. 부, 산, 이라는 소리를 내기 위해 부딪힌 두 입술과 혀가 지나간 자리에서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이 섞인 묘한 공기가 맴돌았다.

지프차가 다시 덜컹, 우리를 들었다 놨다. 다시 마음이 부- 하고 떨렸다. 앞으로의 여행에, 여행이 데려다줄 인연에의 예감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시작에서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이었으면.

 노동당사 가는 길
 노동당사 가는 길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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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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