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자리가 사라진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와 기술의 발달은 우리 모두를 일자리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평생직장의 시대는 오래 전 끝났고, 100세시대 누구나 2~3번의 일(業)을 해야 생존한다. 국가도 사회도 답해줄 수 없는 문제, 결국 개인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내 일은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다. 직장을 다니면서, 또는 홀로서기를 통해 '1인기업'을 운영해온 이들에게서 답을 찾고자 한다. '직장 다닌다고 직업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한 '1인기업가'들의 경험담을 통해 해법을 찾아본다. [편집자말] [편집자말]
2009년 8월16일 백두산 천지에서.
 2009년 8월16일 백두산 천지에서.
ⓒ 정일석

관련사진보기


중학생때부터 태권도 국가대표를 꿈꿨다. 전문대 졸업 후 용인대 태권도학과 편입을 목표로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그때 받았던 월급 100만 원, 고시원에서 생활하면서 국가대표 꿈 하나만 바라보며 버텼다. 전성기 거듭된 부상으로 꿈을 접어야 했던 그는 지금 모션그래픽 영상제작 1인기업가로 새로운 꿈을 펼쳐나가고 있다. 정일석 NX SQUARE 대표(34) 이야기다.

해병대를 전역한 스물다섯살의 정씨는 고향 전주를 떠나 서울 신길동에서 태권도장 사범으로 일을 시작했다. 인천 송도에 새 도장을 열게 되면서 매일 밤 11시에 수업이 끝나면 새벽 2시까지 전단지 돌리며 단기간에 100명을 채우는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몸에 경련이 올 정도로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때는 오로지 태권도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태권도 국가대표 꿈, 부상으로 좌절... '스물아홉의 방황'

1년 후 용인에서 일과 운동을 병행하던 중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MRI을 찍어보니 이미 오래 전 같은 부위에 부상을 입은 적이 있었고 그 사실을 모른 채 운동을 계속하며 해병대까지 전역했던 것이다. 끊어진 십자인대가 너무 오래돼 솜사탕처럼 약해졌고 2번의 수술 끝에 운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2008년 5월 중국 체육관과 교류 및 시범행사.
 2008년 5월 중국 체육관과 교류 및 시범행사.
ⓒ 정일석

관련사진보기


"저는 스물대여섯살쯤 나이가 들어서 전성기가 온 경우였어요. 바로 그 시기에 부상과 수술, 재활로 몇 년을 보내면서 다시 운동을 시작했지만 몸이 예전같지 않았어요. 점점 몸을 사리게 되고 그러다 보니 예전의 기량이 회복되지 않아 운동에 점차 흥미가 떨어졌어요. 한마디로 의욕 상실 상태였죠."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다. 2010년 학점은행제로 원하던 용인대 체육학과 입학에 성공했지만 오로지 태권도만을 향했던 그의 열정은 사그라지고 있었다. 스물아홉, 태권도를 뺀 자신의 삶에 대한 방황과 고민이 시작됐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했던 시기, 디지털카메라로 태권도장에서 아이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도 찍으며 편집하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맥북의 자체 편집 툴 아이무비(iMOVIE)를 이용해 음악을 넣고 동영상 만들어 주변에 보여줬더니 반응이 괜찮았어요. 종이로 된 태권도장의 월 수련계획표를 영상으로 만들어 도장에 팔면 되겠다는 아이디어만으로 무작정 일을 시작해보기로 했죠. 영상에 대해 배운 적이 없었지만 아이무비에 이어 독학으로 전문가 편집 프로그램 파이널컷프로(FinalCutPro)까지 익힌 후 자신감이 생겼어요."

2015년 영상제작회사에서 일했던 정일석씨.
 2015년 영상제작회사에서 일했던 정일석씨.
ⓒ 정일석

관련사진보기

2D·3D 배웠지만 취업안돼 '좌절'

2012년 용인대 태권도학과를 졸업하고 고향 전주로 내려가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고 태권도 영상제작 사업을 시작했다. 1년 동안 각종 태권도 행사를 쫓아 다니며 밤새 동영상을 만들어 납품하길 반복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좀처럼 수익이 나질 않았다. 들어가는 품에 비해 단가가 너무 낮았던 것. 또 독학으로 하다 보니 작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에 그치는 한계상황도 왔다. 제대로 배워야했다.

2013년 6월, 서울에 있는 영상아카데미에서 2D, 3D를 8개월간 배웠지만 바로 취업이 되지 않았다. 태권도를 그만둘 때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라 다짐했기 때문에 취업이 절실했다. 당시 나이 서른둘, 과연 이 분야에 재능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자신감이 점점 떨어졌다. 어머니의 권유로 전주로 내려와 6개월 과정인 국비지원 웹디자인교육과정을 수강했다. 

"답답한 마음에 학원 원장님께 제가 이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끼가 없다고 하면 당장 그만둘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원장님이 '끼도 있고 재능도 있으니까 계속 열심히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 말 한마디를 믿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이때부터 그의 목표는 명확해졌다. 다행히도 웹디자인학원을 수료한 후 곧바로 취업이 됐다. 인턴으로 2달동안 웹디자인 작업을 했지만 영상을 할 때보다 재미가 없었다. 오랜 기간 운동을 해왔기 때문인지 정씨는 정적인 웹디자인보다 동적인 영상이 더 좋았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2014년 브랜드 컨설팅 그룹 인터브랜드와 네이버가 공동주관한 브랜드백과 영상 공모전에서 브랜드스토리백과 탐스(TOMS)로 가작을 수상한 경력도 있었다.

"애초 태권도를 그만두고 진로를 바꿨을 때 영상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영상산업에 대한 비전을 봤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 분야에 내가 재능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죠. 영상분야는 감각 있는 사람이 잘 따라가고 표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때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영상이란 걸 찾았던 것 같아요."

영상제작회사 시절 연봉 2200만원... 지금은 5배 수준

2015년 6월, 정씨의 말대로 그의 감각을 좋게 본 한 영상제작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6개월동안 그곳에서 홈쇼핑 관련 영상, 공기업 홍보영상 등 3D, 2D작업을 담당했다. 이후 프리랜서로 일해 오다 지난 4월 8일 사업자등록을 하고 본격 1인기업(NX SQUARE)을 시작했다. NX SQUARE는 모션그래픽을 기반으로 홍보영상, 프로모션, 바이럴, 전시영상 등 다양한 분야의 2D, 3D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하며 정씨가 기획부터 제작, 영업, 마케팅까지 전 과정을 담당한다.

"클라이언트사와 미팅해서 원하는 방향, 비전을 논의한 후 시나리오 작성, 스토리보드를 만든 후 컨펌을 받기까지가 기획단계입니다. 일러스트, 전문 편집 툴을 이용해 영상으로 만드는 제작과정을 거치죠. 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하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고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점이 강점이죠."

1인기업으로 독립한 이후 정일석씨.
 1인기업으로 독립한 이후 정일석씨.
ⓒ 정일석

관련사진보기


막상 1인기업으로 활동을 시작하니 영업이 문제였다. 좋은 학교를 나오지도,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밟지도 못했기에 정씨는 이 분야에 인맥이 없다. 직접 발로 뛰며 일을 따와야 하는 것은 물론 마감을 맞추기 위해 밤새 일하는 것도 다반사다. 그러나 일을 끝냈을 때 얻는 성취감은 그 모든 힘든 점들을 잊을 만큼 짜릿하다.

"회사를 다닌다면 시키는 일만 하면 되지만 저는 기획, 제작부터 영업, 마케팅까지 다양한 경험이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영상분야는 규모의 한계가 있어서 다양한 작업을 하기 위해선 1인기업에 머물지 않고 회사를 키워나갈 생각입니다. 지금은 모션그래픽 중심이지만 3D, AR, VR까지 작업 가능한 영상콘텐츠제작회사로 키우는 것이 꿈입니다."

'인맥'이라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정씨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발로 뛰는 방식으로 승부한다. 먼저 회사소개서부터 대기업 사례를 참조해 꼼꼼하게 작성한다. 접촉할 만한 회사를 찾아보고 그 회사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한 후 맞춤전략을 구상한다.

영상을 통한 홍보나 마케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참석할 만한 모임이나 세미나에 반드시 참석하고 뒤풀이까지 남아서 명함 한 장이라도 더 건넨다. 5~6개의 SNS를 운영하며 흐름을 파악하고 괜찮은 이벤트나 정보를 스크랩해둔다. 4월에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회사의 포트폴리오 영상을 무료제작 이벤트를 실시한 것도 한 예다.

사실 웹디자인이나 영상업계 연봉 수준은 워낙 박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정씨가 다녔던 웹디자인회사는 연봉이 1800만 원, 영상회사는 2200만 원 수준이었다. 4개월차 1인기업가 정일석씨의 수입은 어떨까.

"사업자등록을 한 이후 첫 한 달 간은 서류, 홈페이지 작업을 하느라 수입이 미미했지만 5~7월까지 수입은 괜찮은 편이었어요. 3개월 매출을 연봉으로 환산하면 직장 다니는 친구들의 5배 정도는 될 것 같아요. 연말까지 매출 5000만원~1억원 정도를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7월 부터 3D작업을 시작했고 8월엔 작가를 섭외해 새로운 형태의 영상기획도 계획중입니다. 하고싶은 일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만족스럽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수익도 괜찮은 편이라 일에 대한 욕심이 생깁니다. 올해는 시작단계인 만큼 많은 일을 해서 포트폴리오를 쌓을 계획입니다."

2009년 8월16일 백두산 천지에서.
 2009년 8월16일 백두산 천지에서.
ⓒ 정일석

관련사진보기


태권도 사범일 때부터 후배나 제자들에게 그가 늘 하는 조언이 있다.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지금은 거기에 하나 더 추가됐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밤을 새든 돈을 못 벌든 괜찮잖아요. 그리고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인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서른둘 나이에 절실한 마음으로 웹디자인학원 원장님께 끼가 있는지 물어봤듯이 말이죠. 그러기 위해선 자기성찰이나 탐색을 통해 자신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거다 싶으면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1인기업가를 위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저는 34년동안 계속 바닥이었고 힘들었어요. 1인기업은 주변에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을 찾아가 영업을 할 수 없다면 1인기업을 하면 안 됩니다. 영업할 때 쭈뼛쭈뼛 거려서도 안 됩니다. 자기 스스로 일을 찾아야 하므로 적극적으로 찾아다니고 신청서든 제안서든 성심성의껏 써야 합니다."




태그:#1인기업, #영상제작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