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오밴드의 무대가 시작됐을 땐 억수 같은 비가 계속 되고 있었다. 하지만 관객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공연을 즐겼다.

혁오밴드의 무대가 시작됐을 땐 억수 같은 비가 계속 되고 있었다. 하지만 관객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공연을 즐겼다. ⓒ CJ E&M


"비가 그쳤네요."

노래를 부르다보니 한바탕 퍼붓던 물폭탄이 멈췄다. 혁오는 비가 그쳐서 좋다느니, 안 좋다느니 등의 부연설명 없이 그냥 "비가 그쳤다"고만 말했다. 그리고선 몇 초간 조용히 있더니 여전히 느릿느릿 말을 이어갔다.

"작년에는 저희가 (밸리록에서) 작은 무대에서 노래했는데, 올해는 큰 무대(빅 탑 스테이지)에서 하네요. 내년에는 더 큰 데에서 할게요."

박수가 터졌다. 관객의 환호에도 혁오는 크게 웃는 법이 없었다. 다만 졸린 듯한 말투로, 그렇지만 은근히 의욕 넘치는 말들을 이어갔다. "저희는 지금 앨범 준비 중이에요. 좋은 노래로 늦어지지 않게 찾아뵙겠습니다." 2016 지산 밸리록 뮤직앤드아츠 페스티벌(아래 밸리록)의 마지막 날인 24일 오후, 혁오는 말 그대로 '최고' 뮤지션들이 서는 무대인 빅 탑 스테이지에, 그것도 피크시간대에 당당히 섰다. 1년 만의 크나큰 도약이다.

무대에서 미친 듯이 뛰는 뜨거운 공연은 아니었지만, 그는 '혁오답게' 차분하면서도 사색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한 곡 부르고 느닷없이 "덥지 않으세요?"라고 묻고는 다음 곡을 시작했고, 또 한 곡을 부르고는 이젠 할 말이 떨어진 듯 조용히 기타를 조율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관객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듯 자신도 모르게 "안녕하세요"라고 말해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비틀비틀 걸어가는 나의 다리 / 오늘도 의미 없는 또 하루가 흘러가죠 / 사랑도 끼리끼리 하는 거라 믿는 나는 / 좀처럼 두근두근거릴 일이 전혀 없죠."

혁오밴드의 대표곡 '위잉위잉'이 시작되자 관객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따라 불렀다. 특히 "텔 미, 텔 미, 플리즈 돈 텔"이란 부분에선 혁오보다 관객의 소리가 더 컸다. 자신은 차분한데, 관객을 충분히 뜨겁게 만드는 것이 혁오의 매력이었다.

50분의 공연이 다 끝나자, 혁오는 휴대폰을 꺼내더니 관중에 "저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하고 묻더니 관객과 함께 사진을 남겼다. 음악팬들과 함께 만든 여름날의 이 추억이 2014년 9월 데뷔한 혁오밴드에게도 잊지 못할 시간이 된 듯하다.

 혁오는 말투가 차분했다.

혁오는 말투가 차분했다. ⓒ 손화신



혁오 밸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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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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