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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무악동 무악2지구 옥바라지골목.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건물이 헐리고 도로변 상가와 구본장여관 정도만 남아있다.
 서울시 종로구 무악동 무악2지구 옥바라지골목.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건물이 헐리고 도로변 상가와 구본장여관 정도만 남아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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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의 적극 개입으로 순풍이 불 것으로 기대됐던 옥바라지골목 재생사업이 진통을 겪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5일 옥바라지골목보존대책위 인사들을 만나 옥바라지골목 일대를 청년 주도의 도시재생사업 공간으로 만들고, 인근 근대 문화명소들과 연계해 역사탐방로를 조성하는 등의 '안'을 대책위에 제시했다.

그러나, 대책위는 이 안에 구본장여관 존치와 주민 잔류 방안 등이 빠진 것 등을 지적하며 "말도 안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 종로구 무악동 무악2지역 재개발지구, 일명 '옥바라지골목'은 일제 강점기와 군부독재 시절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는 독립투사와 민주화운동가의 가족들이 옥바라지하던 여관들이 모여 있던 곳으로, 재개발 사업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반대주민들과 시민단체, 역사학계 등이 대책위를 꾸려 보존운동을 벌여왔다.

특히, 지난 5월 17일 박 시장이 이 골목에 마지막 남은 여관이자 보존운동의 구심점인 구본장여관의 강제철거 현장을 방문한 뒤 공사를 중지시키고, 이어 6월초 가진 면담에서 적극적인 보존 의지를 보였던 터라 대책위의 기대는 컸었다.

아파트 195세대가 들어설 예정인 무악2지구는 현재 대부분의 주택이 철거되고 구본장여관과 몇 채의 주택건물만 남아 있다.

서울시가 대책위에 제시한 옥바라지골목 배치도면.
 서울시가 대책위에 제시한 옥바라지골목 배치도면.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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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옥바라지골목보다 오래된 마을에 초점... 구본장여관 존치 쉽지 않아"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서울시의 '무악2구역 추진사항' 문건에 따르면, 서울시는 서대문형무소 주변 '오래된 마을'을 강조하고 있다.

건축전문가와 역사전문가 7인으로 구성된 전문가회의에서 "옥바라지골목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서대문형무소 인근 역사가로(의주로) 주변의 오래된 마을을 어떻게 보존해야 할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검토"하는 게 낫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구역 내 상당수 건물의 철거가 이루어진 불가피한 사정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이는 서대문형무소 주변 어느 특정 지역을 '옥바라지골목'으로 명명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대문형무소 수감자들에 대한 옥바라지가 있었다고 하면, 그 주변 마을 전체에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즉, 역사적 근거가 불분명해 진위 논란이 있는 특정 옥바라지골목보다는 그 주변 마을의 재생에 주목하겠다는 것이다.

또 아직 철거되지 않은 도로변 기존 상가 일부 및 한옥 등을 저층으로 남겨서 역사·생활문화유산 홍보관, 지역 커뮤니티 공간 등 청년 주도의 도시재생사업 실행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대책위가 줄곧 보존을 주장했던 구본장여관은 새로 짓게 될 아파트와 일부 위치가 중첩돼 존치가 불가능한 것으로 돼 있다.

시는 또 경교장-딜쿠샤-홍난파가옥-옥바라지골목-서대문형무소를 잇는 역사탐방로를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

시는 옥바라지골목의 재생방안을 놓고 다양한 안을 검토해왔으나, 결국 재개발조합이 기존에 추진해왔던 사업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대책위가 요구한 역사·생활문화 유산을 남기는 안으로 절충했다고 밝혔다.

철거작업이 시작되기 전 옥바라지골목의 모습.
 철거작업이 시작되기 전 옥바라지골목의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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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 "주민 배제한 재생안 말도 안돼... 박 시장 믿었는데"

이에 대해 대책위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대책위가 가장 반발하고 있는 것은 구본장여관을 헐고 남은 주민들도 떠나야 한다는 것.

대책위를 이끌고 있는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대표는 "수많은 여관들이 다 헐렸는데, 그나마 구본장여관 하나쯤은 상징적으로라도 남겨놔야 옥바라지골목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원래 그곳에 살던 주민들이 일부나마 계속 남아 도시재생사업의 주체로 살아가길 바란다"며 "주민들이 모두 쫓겨난다면 그런 역사보존이 무슨 소용 있냐"고 반문했다.

도시재생의 초점을 옥바라지골목이 아닌 의주로에 두겠다는 것도 '뜬금 없다'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투쟁해온 것이 옥바라지골목의 보존을 위한 것이었는데 갑자기 근거가 불분명하다며 의주로를 내세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책위는 "서울시가 제시한 안을 보면 '옥바라지골목'이란 명칭마저 없어지고 '옛길'이라는 모호한 말로 돼 있더라"며 허탈해 했다. 

박은선 대표는 "일제강점기때 자료가 없다고 말하던 서울시가 이제는 70년대 옥바라지 근거가 없다고 하지만, 인혁당 사건 유가족들이 이곳에 묵었던 사실 등 70년대에도 얼마든지 옥바라지 했던 근거가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난 1963년부터 최근까지 서대문형무소 반경 1킬로미터에서 등록한 여관 40곳 가운데 25곳이 무악2지구에 위치하더라"며 이곳이 왜 옥바라지골목이 아니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구본장 주인과 함께 옥바라지골목에 마지막 남은 주민 2명 가운데 한 명이자 대책위 총무인 최은아씨는 "우리는 적어도 박 시장에게만은 큰 신뢰를 갖고 있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 크게 실망했다"며 "서울시의 안을 재고해달라"고 당부했다.

옥바라지골목보존대책위 관계자들이 28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의 대책안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옥바라지골목보존대책위 관계자들이 28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의 대책안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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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수정 여지 많지 않다" - 대책위 "계속 투쟁하겠다"

그러나 옥바라지골목 문제를 담당하는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이 안이 서울시 최종안"이라며 "일단 주민들의 반대의견을 내부에서 논의해보겠으나 수정될 여지는 많지 않다"고 못박았다.

그는 구본장여관에 대해서는 "새로 짓게 될 아파트와 중첩되는 문제도 있지만, 전문가들 대부분이 (일제강점기가 아닌) 70년대에 지어진 이 건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고 존치에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27일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한 박 시장도 "(이곳이 정말 옥바라지골목인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아니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특히 "무악2구역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주거용도 건물은 아파트밖에 없다"고 말했다. 존치 예정인 건축물을 리모델링해서 아직 이주하지 않은 두 명의 주민들이 떠나지 않고 계속 거주하도록 해 달라는 대책위 주장에 대해 난색을 표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책위의 반대 의견을 확인한 만큼 다른 대안이 없는지 실무진들과 좀 더 논의해보고, 대책위와도 계속 대화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28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시장과 면담한 뒤 거의 두 달 동안 천막에서 장맛비와 무더위를 견디며 서울시의 대책을 기다려왔으나 정작 나온 안은 우리의 기대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며 "주민이 쫓겨나는 도시재생은 아무 소용이 없는 만큼 '제대로 된' 옥바라지골목 보존을 위해 계속 투쟁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시는 박 시장이 구본장여관 강제집행 당일 현장을 방문한 것은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폭력적인 집행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정비사업 강제집행 현장에서 발생하는 위법, 폭력사태 예방을 위한 대책을 마련 중이며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태그:#옥바라지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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