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8.06 19:01최종 업데이트 17.06.07 11:01
[꿈틀비행기 5호 열린감옥을 가다 ①] 에서 계속

덴마크 수비수거드 교도소(Statsfængslet pa Søbysøgard)의 교도관 카리나 페더슨씨. ⓒ 안홍기


12년 경력의 여성 교도관 카리나 페더슨(Karina Pedersen)씨는 '자유와 책임', '돌과 깃털의 균형'이란 말로 열린 교도소의 취지를 설명했다. 자유를 보장하되 규정을 어길 때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스스로 규정을 지키는 습관을 이 열린교도소 생활을 통해 배운다는 것이다.

페더슨씨는 "교도소는 사회복귀를 준비하는 곳"이라고 했다. 최대한 바깥 생활과 같은 형태로 살 수 있게 하고(Normalisation), 원만한 사회복귀를 위해선 가족과 친구 등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개방성(Openness)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교도소의 기본 기능인 '사회로부터의 격리'에 문제는 없을까. 덴마크를 통틀어 3% 정도의 규정위반율을 보이고 교도소에서 도주하는 이는 0.1 ~ 0.3%라고 한다. 재소자 범죄나 탈주범에 엄격한 한국사회라면 규정 위반이나 도주 사건이 있을 때마다 거센 비판여론이 일어나 존폐의 기로에 섰을 텐데, 이 곳의 열린 교도소는 1973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페더슨씨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3중 철조망이 처진 시설이 보였다. 그 곳은 폐쇄교도소다. 재소자가 감금된 상태에서 수형생활을 하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형태의 교도소라고 했다. 폐쇄 교도소 마당으로 나오면 열린 교도소 재소자들이 자유롭게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돼 있었다.

페더슨씨는 "폐쇄 교도소 재소자들이 열린 교도소의 생활을 보면서 이 곳으로 오기 위해 노력하는 효과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재소자들이 처음부터 열린 교도소로 오는 건 아니고 폐쇄 교도소에서 얼마나 잘 생활하느냐에 따라 이감 여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톰도 폐쇄 교도소에서 3년을 보내고 열린 교도소로 이감된 지 2년 됐다. 단, 탈옥하면 다시 폐쇄 교도소에 수감된다.

톰은 "처음 열린 교도소로 왔을 땐 적응이 잘 안됐다. 당연히 닫혀 있을 것 같던 문들이 하나도 잠겨 있지 않아서 놀랬다"며 "폐쇄 교도소의 교도관들이 폭력적이고 강압적이었다면, 열린 교도소는 매우 편안하다. 교도관들과도 훨씬 많은 말을 주고 받는다"고 했다.

덴마크 수비수거드 교도소(Statsfængslet pa Søbysøgard) 열린교도소 생활관 중앙복도에 걸린 알림판. 재소자들끼리 설거지 당번, 케이크 굽기 당번 순서를 공지해놨다. ⓒ 안홍기


폐쇄 교도소는 얼마나 강압적인 걸까. 수비수거드 교도소 어디에도 총은 없다는 게 페더슨씨의 설명이다. 이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향한 물리적 압박수단은 진압봉, 수갑, 최루액 그리고 일정 기간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다다.

비용 면에서도 열린 교도소가 유리하다. 재소자 1인당 1일 수용 비용은 폐쇄 교도소 232 유로, 열린 교도소는 173 유로다. 폐쇄 교도소가 교도관 등 감시 인력이 많이 필요해서 그렇다고 한다.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에서는 죄를 지은 재소자들의 행복 수준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란 걸 확인했다. 처벌의 강도를 높이는 것보다는 재범률을 낮추는 데에 정책을 집중하고 있는 덴마크는 재판 때 징역형의 비중을 줄이고, 열린 교도소 뿐 아니라 출퇴근 교도소, 전자감시, 사회봉사 등의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덴마크 수비수거드 교도소(Statsfængslet pa Søbysøgard) 본관 안에 있는 전시물. 이곳 재소자가 만든 철물로 제목은 '시간낭비'다. ⓒ 안홍기


"피해자들 불만 있지만, 범죄 발생 낮추는 데에 대다수가 동의"

범죄자 처벌이 너무 약한 건 아닌가. 유죄를 선고받은 범죄자들이 교도소를 나와 학교를 다니고 쇼핑을 하는 데에 시민들, 특히 교도소 주변 마을 사람들과 범죄 피해자들이 반대하진 않을까.

톰은 "외출할 때 내가 재소자란 걸 숨기지 않는다"며 "내가 재소자란 걸 알고 싫다면 그냥 지나칠 뿐 별다른 행동을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페더슨씨는 "범죄 피해자들에게선 '처벌이 약하다'는 불만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게 재소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결국은 범죄 발생을 낮춘다는 데에 대다수가 동의하기 때문에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처벌이 약하다고 해서 범죄가 빈발하진 않는다는 건 통계로도 확인된다. OECD의 2013년도 통계를 보면 인구 10만명당 살인사건 피살자는 미국이 4.5명, 한국은 1.5명, 덴마크는 이보다  낮은 0.7명이다. 비슷하게 '수감 생활은 형벌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라는 기조의 교정정책을 펴고 있는 노르웨이와 핀란드, 스웨덴 등도 비슷한 수치를 보인다.

교도관도 열린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게 훨씬 행복하다고 한다. 교도관이 되기 위해 교육·상담·격투기·기본체력훈련 등 3년 간의 기본교육을 받은 페더슨씨는 "대화하는 걸 즐기기 때문에 이곳이 즐겁다"고 했다. 그는 "과거의 죄는 판사들이 판단하는 것이고, 교도관들은 재소자들이 앞으로 잘 살도록 도와주는 게 역할"이라고 말했다.

'처벌이 강해야 범죄가 줄어든다'는 의견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페더슨씨는 "죄를 지었다고 형벌만 가하는 것은 재소자의 두뇌를 망친다.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괴물을 만드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열린 교도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또 놀랐다. 아직 교도소 안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처음 들어갔던 입구의 바깥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이곳엔 담장마저도 없었던 것이다.

남덴마크 오덴세로부터 남쪽으로 10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수비수거드 교도소(Statsfængslet pa Søbysøgard).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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