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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는 없었다. 뙤약볕은 무심하게 내리쬐고 땀에 흠뻑 젖은 몸은 짜증 났다. 그저 쉬고 싶었다. 흔들리며 피는 꽃을 찾아 경남 함양 오도재로 8월 4일 차를 몰아 떠났다.

경남 함양 오도재로 가는 길.
 경남 함양 오도재로 가는 길.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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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읍에서 남원으로 넘어가는 길에서 잠시 멈췄다. 지리산 가는 길, 한국의 아름다운 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뙤약볕에도 잠시 차에서 내리게 한다. 길 건너편에 횃불처럼 하늘 향한 향나무 옆에 공덕비가 있다. 오가는 길손에게 대접을 잘한 것은 물론 이웃들이 어려울 때 힘껏 도운 후덕한 인심과 어진 덕행을 기린다는 내용이다. 버스 정류장 한쪽에는 보랏빛 도라지꽃들이 환하게 피어 무더위에 지친 나를 반긴다.

대추 많이 나는 동네에서 이름이 유래한 조동마을을 알리는 이정표 옆으로는 동그란 두 눈을 우습게 뜨고 반기는 기다란 비석 하나가 있다. 비석은 언뜻 남자의 힘찬 생식기를 닮았다. 비석에는 '~말없는 자연에게 초대받게 되거들랑 고운 놀 받아서 한가로이 놀아보리라'는 '오도재' 시가 적혔다.

지리산으로 가는 길 입구는 분홍빛 배롱나무들이 마치 마중 나온 듯 기다랗게 길옆으로 선 분홍빛 꽃을 피워 반긴다.
 지리산으로 가는 길 입구는 분홍빛 배롱나무들이 마치 마중 나온 듯 기다랗게 길옆으로 선 분홍빛 꽃을 피워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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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으로 가는 길 입구는 분홍빛 배롱나무들이 마치 마중 나온 듯 기다랗게 길옆으로 선 분홍빛 꽃을 피워 반긴다. 선분홍빛 배롱나무 옆으로 노란 달맞이꽃이 내가 달인 양 고개 내밀어 또한 인사를 건넨다. 먼발치 지안재를 바라보았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는 지리산으로 들어서는 길은 180도를 6번 꺾어가는 지안재가 보인다.

배롱나무와 달맞이꽃의 환영을 받으며 조동마을에 들어섰다. 대추 많이 난다는 대추지에서 유래한 조동(棗洞)마을은 제한(蹄閒)마을과 조동마을을 합쳐서 이르는 이름이다. 제한은 옛날 제한역이 있었다고 전하는 곳으로 역촌이었다. 조선 시대 수동의 사근 찰방에 딸린 역이었다.

지리산 가는 길에서 만난 <열부광산김씨지비(烈婦光山金氏之碑)>. 점 하나 찍으면 도로 남이 된다는 부부 사이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지리산 가는 길에서 만난 <열부광산김씨지비(烈婦光山金氏之碑)>. 점 하나 찍으면 도로 남이 된다는 부부 사이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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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회관 옆에는 어른 두세 사람이 손을 맞잡아야 할 만큼 큰 느티나무가 있다. 나무 옆 지안정에는 삼베 옷을 입은 팔순의 어르신이 큰 대자로 누워 더위를 잊고 있다. 다시 고개를 넘어가려는데 비가 보인다. 1936년에 세운 <열부광산김씨지비(烈婦光山金氏之碑)>다. 백명묘(白溟墓)에게 시집온 광산 김씨는 남편이 병으로 누웠는데 여자 귀신이 남편을 해하려 하자 차라리 나를 죽이고 남편을 죽이지 말라며 귀신을 쫓아 물에 빠져 죽고 남편을 살렸다고 한다. 한참을 비 앞에서 머뭇거렸다. 점 하나 찍으면 도로 남이 된다는 부부 사이 아닌가.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는 지리산으로 들어서는 길은 180도를 6번 꺾어가는 지안재(함양읍-휴천면)가 있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는 지리산으로 들어서는 길은 180도를 6번 꺾어가는 지안재(함양읍-휴천면)가 있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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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의 사랑을 생각하며 180도로 꺾인 구비 길을 넘어갔다. 꺾여 올라가면서 나는 꽃이 되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이 절로 읊조린다. 함양읍에서 휴천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 지안재다. 지안재 정상에는 돌아온 길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나는 사람들은 피해 위쪽에 있는 정자로 올라갔다. '따악~' 캔커피를 따는 소리가 무더위를 가른다.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이 절로 읊조리게 하는 함양읍에서 휴천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 지안재다.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이 절로 읊조리게 하는 함양읍에서 휴천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 지안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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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음을 옮겼다. 옛날 장꾼들이 땀을 흘리며 넘던 고개를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아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 길을 오르다 보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전설처럼 이 뙤약볕에서 지혜를 얻으러 떠나는 수행자처럼 보인다.

잠시 쉬어가라는 주막의 유혹도 넘겼지만 수줍은 듯 고개 숙이고 해맑게 웃는 여인의 나무 조각상 앞에서는 차를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쉬어가라는 주막의 유혹도 넘겼지만 수줍은 듯 고개 숙이고 해맑게 웃는 여인의 나무 조각상 앞에서는 차를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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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어가라는 주막의 유혹도 넘겼지만 수줍은 듯 고개 숙이고 해맑게 웃는 여인의 나무 조각상 앞에서는 차를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수한 여인의 웃음이 새겨진 나무 조각 뒤로는 '변강쇠와 옹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이름표를 붙인 남근과 여근을 닮은 돌비석이 나온다. 돌비석 뒤로는 장승들이 즐비하다. 여느 장승과 달리 남근을 닮았다. 전국을 떠돌던 변강쇠와 옹녀가 살기 좋은 찾아다니다 오도재(휴천면-마천면)에 살게 됐다는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

전국을 떠돌던 변강쇠와 옹녀가 살기 좋은 찾아다니다 살았다는 오도재에 있는 ‘변강쇠와 옹녀의 사랑 이야기’ 공원.
 전국을 떠돌던 변강쇠와 옹녀가 살기 좋은 찾아다니다 살았다는 오도재에 있는 ‘변강쇠와 옹녀의 사랑 이야기’ 공원.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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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에 따르면 한날은 옹녀가 나무를 해오라고 하자 변강쇠가 나무하러 가서 나무꾼들과 놀다 빈 지게로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바가지가 무서운 변강쇠가 장승 뽑아 나무로 때다가 동티가 나 병을 앓다 장승과 같이 뻣뻣하게 되어죽고 말았다. 옹녀는 중 · 초라니 · 풍각장이들에게 장사만 지내 주면 같이 살겠다고 하여 그들은 서로 덤비다 폭사하고 말았다. 기어이 나중에는 각설이패 · 마종군들이 송장을 서로 나누어지고 갖은 고생을 다 하여 북망산으로 갔는데, 마종과 뎁뜩이가 진 송장은 강쇠와 초라니등에 붙어 뗄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 네이버 국어국문학 자료 중에서

천하의 변강쇠도 마누라 바가지가 무서워 장승으로 나무하다 죽었다니 웃음이 절로 난다. '~열다섯에 얻은 서방(書房) 첫날밤 잠자리에 급상한(急傷寒)에 죽고, 열여섯에 얻은 서방 당창병(唐瘡病)에 튀고, 열일곱에 얻은 서방 용천병에 펴고, 열여덟에 얻은 서방 벼락맞아 식고, 열아홉에 얻은 서방 천하에 대적(大賊)으로 포청(捕廳)에 떨어지고, 스무 살에 얻은 서방 비상(砒霜) 먹고 돌아가니, 서방에 퇴가 나고 송장 치기 신물난다.~'는 가루지기타령의 한 구절도 덩달아 떠오른다.

오도재 정상에서 만나는 ‘지리산제일문’.
 오도재 정상에서 만나는 ‘지리산제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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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 주위에는 닭의장풀이며 개망초, 큰금계국이 만발했다. 부처꽃이 그들 사이에 한들거린다. 옹녀와 변강쇠의 사랑 이야기를 뒤로하고 꺾여진 고개를 돌면 바로 '지리산제일문'이 나온다. 해발 750m. 주차장과 휴게소가 있는 곳에 차를 세우자 서늘한 산 공기가 먼저 알고 달려온다. 코를 한껏 벌려 이 시원한 경치를 가슴에 담으며 구비 길을 돌아본다. 텁텁한 도시와 다른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기분이 맑아진다.

하늘을 향해 입 꽉 다문 돌조각 새가 보인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솟대처럼 내 바람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하늘을 향해 입 꽉 다문 돌조각 새가 보인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솟대처럼 내 바람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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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제일문’ 누각에서 법화산 정상 1.6km 이정표 따라 걷자 이슬 머금은 보석처럼 빛나는 칡덩굴 잎사귀들이 보인다.
 ‘지리산제일문’ 누각에서 법화산 정상 1.6km 이정표 따라 걷자 이슬 머금은 보석처럼 빛나는 칡덩굴 잎사귀들이 보인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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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빙수같이 핀 사위질빵꽃 사이로 고운 최치원, 점필재 김종직 등의 시가 자연석에 새겨있다. 하늘을 향해 입 꽉 다문 돌조각 새가 보인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솟대처럼 내 바람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질경이가 바닥을 덮은 제일문 옆으로 옮겼다. 캔에 담긴 막걸리며 부산에서 온 막걸리와 광주에서 온 막걸리가 놓여 있는 산신각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내문에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532년 신라의 침공을 받자 선량한 백성들을 전쟁의 제물로 삼을 수 없다며 나라를 물려주고 9만 대군을 거느리고 제한역 아래 와서 머물렀다고 한다. 오도재 넘어 촉동에 대궐터를 잡기도 하고 적을 방어하기 위해 추성을 쌓았다고 전한다. 구형왕후가 이곳에 올라 제단을 쌓고 망국의 한과 선왕의 명복을 빌었다. 성황당이 생기고 길손이 기도하면서 제를 지내던 곳을 복원했다고 한다.

길지 않은 꼬부랑길에서 우리 삶을 생각한다. 인생을 닮은 길에서 쉬어간 하루다.
 길지 않은 꼬부랑길에서 우리 삶을 생각한다. 인생을 닮은 길에서 쉬어간 하루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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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각 옆으로 삼봉산 3.9km, 오도봉 2.3km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 따라 잠시 걸었다. 제일문 누각에 올랐다. 법화산 정상 1.6km 이정표 따라 걷자 이슬 머금은 칡덩굴 잎사귀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다시 전망대로 내려왔다. 살짝 발만 들어도 풍경은 달리 보인다. 평지에서 바라보던 거리와 동네를 살펴보는 재미가 색다르다. 길지 않은 꼬부랑길에서 우리 삶을 생각한다. 인생을 닮은 길에서 쉬어간 하루다.

덧붙이는 글 | 경상남도 인터넷뉴스 <경남이야기>
진주지역 인터넷언론 <단디뉴스>
<해찬솔일기>



태그:#지리산 가는 길, #오도재, #지안재, #변강쇠, #옹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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