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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뚜얼 슬렝 대학살 박물관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매표소 앞에 부착된 포켓몬 고 게임 금지 안내판 앞을 무심코 지나가고 있다.
 캄보디아 뚜얼 슬렝 대학살 박물관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매표소 앞에 부착된 포켓몬 고 게임 금지 안내판 앞을 무심코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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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가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아픈 역사의 장소로 기억되고 있는 곳마저 침투해 현지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문제의 발단이 된 곳은 수도 프놈펜 중심에 위치한 대학살 박물관(Genocide Museum)이다.

현지에서는 뚜얼슬렝 수용소 또는 'S21 감옥'으로도 불리는 이 박물관은 과거 여자 중고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정치범 수용소로, 지난 1975년~1979년 사이 무려 1만4000명이 넘은 사람들이 희생된 참혹한 역사의 현장이다. '킬링필드의 시대'로 불리는 과거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지금도 매일 수천 명이 넘는 국내외 방문객들이 찾는 주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포켓몬 고 게임은 증강현실(AR) 기능을 위성항법시스템(GPS), 구글 지도와 결합시켜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포켓몬을 수집하는 것으로 일본 닌텐도의 자회사 포켓몬랩과 구글에서 분사한 나이언틱랩스가 개발한 스마트폰 게임이다.

한국에선 구글과 지도 반출 문제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아직 정식 출시가 되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포켓몬 고 열풍은 강원도 속초를 난데없이 '핫플레이스'로 만들기까지 했다.

박물관 매표소 유리창에 '포켓몬 고 금지' 안내판 부착

70년대 킬링필드 당시 무려 14000 명 이상 민간인이 정치범으로 몰려 수감된 채 고문끝에 목숨을 잃은 악명높은 뚜얼 슬렝 대학살 박물관의 모습.
 70년대 킬링필드 당시 무려 14000 명 이상 민간인이 정치범으로 몰려 수감된 채 고문끝에 목숨을 잃은 악명높은 뚜얼 슬렝 대학살 박물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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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지난주부터 아시아 15개국에서 '포켓몬 고' 게임서비스가 본격 시작됐다. 이번에 추가된 15개국은 태국,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대만, 부르나이 등이다. 캄보디아에도 지난 6일부터 정식 출시됐다.

프놈펜 북쪽에 위치한 하이엔드 쇼핑몰 TK 아베뉴는 포켓몬 괴물이 많아 나타난다는 입소문 탓에 지난 주말 내내 젊은 20대 게임마니아들로 북적였다. 급기야 가상현실 속 포켓몬이 대학살 박물관에 많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대부분 과거 킬링필드 이후 태어난 현지 젊은 세대들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박물관측과 희생자 유가족들은 크게 당황한 기색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각) 나온 현지 조간신문을 통해서야 뒤늦게 포켓몬 고 소동을 알게 되었다는 매표소 직원과 경비원들은 방문객들이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 일일이 감시의 눈길을 보냈다. 한 유럽인 20대 젊은 방문객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뭔가 열심히 누르는 모습을 보이자, 한 검표직원이 다가가 그의 주변을 기웃거리며 살피기까지 했다.

매표소 앞에서 일하는 또 다른 검표직원은 "그런 게임이 있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애초부터 그들의 입장을 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표소 앞 유리창에는 이미 포켓몬 고 게임을 금지하는 안내판이 부착되어 있었다. 검표직원은 관련 기사가 나간 지난 10일 오후에 부착했다고 귀띔해주었다.

홀로코스트 박물관, 아우쉬비츠 감옥 박물관도...

당시 이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생존자중 한명이자 크메르루주 희생자 협회장인 춤 메이(86)씨는 희생자들의 영혼이 깃든 곳에서 게임을 한다는 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다.
 당시 이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생존자중 한명이자 크메르루주 희생자 협회장인 춤 메이(86)씨는 희생자들의 영혼이 깃든 곳에서 게임을 한다는 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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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대다수는 캄보디아에서도 포켓몬 고 게임 열풍이 일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미 소문이 났는지 이날 오전 내내 외국인 관광객들 말고는 게임을 하기 위해 일부러 박물관을 찾는 현지 젊은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뚜얼슬렝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생존자중 한 명이자 크메르 희생자 협회장인 춤 메이(86)씨는 현지 기자들이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다음날인 11일까지도 이 문제에 대해 여전히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건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강조해 말했다. 참고로 그는 대학살이 자행되던 지난 70년대 중반, 크메르루즈군의 손에 사랑하는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을 잃은 희생자 가족이다(관련기사 : 1만4000명 처형된 이곳, 전기고문은 '기본').

캄보디아 다큐멘터리 센터 책임자이자 크메르루즈 관련 역사 자료들을 수집해온 장 욕 츠항씨는 기자가 지난 10일 밤 보낸 이메일 질문에 대해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까지 탓할 필요는 없다"면서 "우선은 어른세대들이 아이들에게 이곳이 갖는 의미를 알게끔 가르칠 필요가 있다"라고 답변했다.

사실 그동안 포켓몬 고 게임은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빚어왔다. 미국 뉴욕의 홀로코스트 박물관도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자 제작사인 나이언틱랩스사에 즉각 항의해, 박물관에서는 게임 접속이 안 되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 외에도 폴란드의 아우쉬비츠 감옥 박물관과 일본의 나가사키 원폭기념박물관에도 최근 같은 조치가 취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캄보디아 데일리>를 비롯한 현지 언론 매체들은 게임 제작사인 나이언틱랩스사가 아직 캄보디아에서 야기된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이렇다할 공식 해명이나 답변을 내놓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킬링필드의 끔찍한 기억

당시 여자 중고등학교 건물을 개조해 만든 뚜얼 슬렝 수용소(S21 감옥)의 모습.
 당시 여자 중고등학교 건물을 개조해 만든 뚜얼 슬렝 수용소(S21 감옥)의 모습.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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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캄보디아는 과거 1970년 중후반 킬링필드 시대를 겪으며, 양민 200만명이 기아와 질병, 그리고 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비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당시 급진공산혁명주의자 폴폿이 이끈 정권은 자신들이 정권을 획득한 첫해를,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된다는 의미로 영년(Year Zero)으로 명명하고, 물물교환체제로 바꿔 시대를 거스르는 원시시대 경제로 만들어버렸다.

또한 동시에 농업을 기반으로 한 지상 유토피아를 만든다는 명분 아래 도시민들을 농촌으로 강제로 이주시켰고, 이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을 대량 학살했다. 심지어 안경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지식인 또는 가진 자로 간주해 무고한 양민들을 마구잡이로 살해했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이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바로 이러한 고문 끝에 희생된 사람들이었다.

지난 2006년 당시 이러한 잔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지도자 4인방의 처벌을 논할 수 있는 유엔주도 전범재판소(ECCC)가 출범했지만, 최고 지도자인 폴폿은 이미 1998년 사망했고, 당시 외무부장관을 지낸 이엥 사리와 그의 아내이자 사회부장관이었던 이엥 티어리엣은 재판도중인 2013년 3월과 작년 8월 치매 끝에 노환으로 병사했다.

정권 2인자였던 누온 체아와 국가주석을 지낸 키우 삼판은 지난 2014년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나머지 전범들에 대한 재판 중 상당수는 여전히 계류중이다. 또 현재 재정난과 과거 크메르루즈군 출신인 훈센총리의 반대에 부딪혀 기소조차 못한 이들도 적지 않다.


태그:#캄보디아, #크메르루즈 희생자, #포켓몬 고, #CHUM MEY, #뚜얼 슬렝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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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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