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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재 글, 그림/ 계수나무
▲ <혼자 남은 착한 왕> 이범재 글, 그림/ 계수나무
ⓒ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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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인간이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었을 때, 그 때는 누구도 그 무엇인가를 지배하지 않고 지배받지 않는 세상이었을 것입니다.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자고 싶은 만큼 자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가며 소유에 대한 욕망 없이, 자족하는 삶이 이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의 정복자로 나서고, 타인과 경쟁하며 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기 시작하면서 힘의 원리가 계급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힘이 물리적인 힘이든, 경제적인 힘이든 인간의 삶에는 '계층'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신분제'라는 묵직한 힘이 사회를 지배하였고, 오늘날에는 경제와 정치의 힘이 사회를 지배합니다. 그래서 '계층'의 밑바닥에서 힘의 억압 아래 살아야하는 민중들은 끊임없이 '유토피아'를 꿈꾸곤 합니다. 반대로 결코 만나기 싫은 섬뜩한 '디스토피아'를 상상하기도 하지요.

조지 오웰의 <1984>는 '빅브라더'라는 '절대 권력'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모습을 숨 막히게 그려내었습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과학이 절대적 힘으로 작용할 때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세밀하게 상상해 냈습니다. '절대적 힘'이 만들어낸 유토피아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범재 글, 그림/ 계수나무
▲ <혼자 남은 착한 왕> 나무를 없애는 착한왕의 왕국 이범재 글, 그림/ 계수나무
ⓒ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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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재의 <혼자 남은 착한 왕>에도 '절대 권력'을 가진 '착한 왕'이 등장합니다. 그는 <1984>의 절대 영웅 '빅브라더'처럼, <멋진 신세계>의 완벽하게 합리적인 듯한 '과학'처럼 '착함'을 가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착한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착하지 않는 것은 그의 왕국에서 모두 버려버립니다. 착하지 않은 물건도, 착하지 않은 식물도, 착하지 않은 사람마저도 모두 왕국 밖으로 내쳐집니다.

그런데 그 '착하다는 것'이 오로지 절대 권력자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니 난감할 노릇입니다. '착한 왕'은 낡은 물건은 착하지 않다 하여 모조리 버립니다. 가장 낡은 물건을 버리면 그 다음 물건이 또 가장 낡았으니 물건은 끊임없이 버려지고 새 것들로 채워집니다.

열매 맺지 않는 식물은 모두 착하지 않다고 뽑아버리니 산과 들은 황량해집니다. 못 생긴 사람, 키 작은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 '착한 왕'이 보기에 특별한 사람들은 모두 왕국 밖으로 추방당하고 맙니다. 추방당하는 사람들을 보니 우리 모두가 알 만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모차르트, 마이클 잭슨,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 스티븐 호킹.....

그림책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도 가끔 이런 일들이 벌어집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착한' 행동 때문에 멀쩡한 물건들이 버려지기도 하고, 온통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기도 합니다. 아무 잘못 없는 자연이 망가지기도 하고,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이 죄인이 되어 내쳐지기도 하지요.

이범재 글, 그림/ 계수나무
▲ <혼자 남은 착한 왕> 이범재 글, 그림/ 계수나무
ⓒ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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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왕'은 결국 광기에 사로잡힙니다. 그림자는 착하지 않은 것이라 규정하고 그림자를 만드는 '해'를 없애버릴 것을 명령하지요. 그리고 도무지 아무리 노력해도 해를 떨어뜨리지 못하는 신하들마저 모조리 쫓아냅니다. '착한 왕'은 결국 '혼자'가 됩니다.

혼자 남은 착한 왕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에게도 명령하지 못하고 아무런 일도 혼자 할 수 없었던 왕은 어느 날 결국 거울을 보며 이렇게 외치게 됩니다.

"저 더러운 자가 누구냐? 저 자를 당장 쫓아내도록 하라."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은 '절대 권력'의 존재 자체가 '착하지 못함'을 이야기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함을 가장한 독재를 휘두르는 것은 점점 더 독재자 자신을 고립시킬 뿐인데도 말입니다.

<혼자 남은 착한 왕>은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여러 권력자들을 떠오르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그림책 세상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혼자 남은 착한 왕>들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말지, 성난 군중들에 의해 버려지게 될지는 아마도 그들의 왕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선택'에 달려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합니다.


혼자 남은 착한 왕

이범재 글.그림, 계수나무(2014)


태그:#혼자 남은 착한 왕, #이범재, #계수나무,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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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 보물들을 찾아 헤매는 의미 탐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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