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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싱가포르 노점 두 곳이 미쉐린 가이드(미슐랭 가이드)의 별을 받았다. 주로 고급 레스토랑에 별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미쉐린 가이드가 노점 식당에 별을 부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별을 받은 '힐 스트리트 타이 화 포크 누들'은 돼지고기 육수의 국수 전문점이고, '홍콩 소야 소스 치킨 앤드 누들'은 간장에 조린 닭고기를 밥이나 면에 올려 주는 식당이다. 비싼 것도 10달러 (8500원, 싱가포르 달러 기준)을 넘지 않는 거리의 평범한 식당이다.

노점 식당이 미쉐린 가이드 '별'을 받은 배경

죽 늘어선 여러 식당 중에서 음식 하나 받은 후 아무 테이블이나 앉아서 밥을 먹는다. 가격은 3달러에서 10달러 선. 싼 건 2,500원, 비싸도 1만원을 넘지 않는다.
▲ 싱가포르의 평범한 푸드코트 죽 늘어선 여러 식당 중에서 음식 하나 받은 후 아무 테이블이나 앉아서 밥을 먹는다. 가격은 3달러에서 10달러 선. 싼 건 2,500원, 비싸도 1만원을 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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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코트 식당이 미쉐린 가이드의 별을 받게 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싱가포르의 몇 가지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연간 노동시간 부문에서 늘 멕시코와 함께 수위를 다투지만, OECD 회원국이 아닌 싱가포르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노동시간이 더 길다. (2012년 미국 노동통계국(BLS) 자료에 의하면 싱가포르의 연간 노동시간은 2409시간으로 한국의 2289시간 보다 길다)

또한 여성의 사회 참여율이 60%를 넘을 정도로 맞벌이가 보편화되어 있어 가정에서 요리할 시간을 내기가 어려우며, 일 년 내내 더운 날씨인 적도 지역 특성상 집안에서 불을 이용한 요리 자체를 꺼리게 된다. 따라서 가정에서의 요리는 특별한 날에만 하고 대부분의 경우 하루 세끼를 외식으로 해결한다.

마스터카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싱가포르가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 중 월 외식 소비액이 가장 높은 나라로 조사될 정도다.

하루 세끼를 외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서민들에게 비싼 레스토랑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싱가포르에는 수많은 푸드코트가 있다. 국민의 75% 이상이 HDB라고 불리는 정부가 공급하는 아파트에 사는데, 각 HDB 단지마다 푸드코트가 있어 서민의 외식은 대부분 여기서 이뤄진다.

HDB 단지마다 서민들의 삼시 세끼를 책임지는 푸드코트가 하나씩 있다. 힐스트리트 맛집을 찾아 가는 길
▲ 싱가포르 HDB HDB 단지마다 서민들의 삼시 세끼를 책임지는 푸드코트가 하나씩 있다. 힐스트리트 맛집을 찾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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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방문한 '힐 스트리트 타이 화 포크 누들'(아래 힐 스트리트) 역시 라벤더 지역의 한 HDB 1층의 푸드코트에 위치하고 있다. 테이블은 스무 개 남짓 있으며, 푸드코트 안에 식당 네 개와 음료를 파는 가게 하나가 전부다.

별을 받은 후 손님들 줄이 길어져서 최소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 힐 스트리트 타이 화 포크 누들 별을 받은 후 손님들 줄이 길어져서 최소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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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스트리트는 미쉐린 가이드에 소개되기 전에도 싱가포르에서 유명했던 식당이다. 1932년부터 시작해서 3대에 걸쳐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싱가포르의 여러 매체에 맛집으로 자주 소개된 이력이 있다.

미쉐린 가이드에 소개된 이후 손님이 느는 바람에 대기줄이 길다고 들어서, 일부러 오후 5시가 안 된 시간에 찾아갔는데도 스무 명 이상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에 일하는 사람은 셋, 그 중 둘은 음식을 준비하고 다른 한 명이 주문과 계산을 담당하는데 밀려 드는 손님을 다 감당하기엔 벅차 보였다.

5000원짜리 국수, 과연 맛은?

저 작은 공간이 전부다. 왼쪽의 미쉐린 가이드 인증서만 아니라면 여느 싱가포르 푸드코트 식당과 바를 바가 없다.
▲ 힐 스트리트 타이 화 포크 누들 저 작은 공간이 전부다. 왼쪽의 미쉐린 가이드 인증서만 아니라면 여느 싱가포르 푸드코트 식당과 바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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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규모는 다른 푸드코트 식당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여섯 평 정도의 넓이에 조리기구 몇 개가 전부다. 여기서 주문도 받고 요리도 하고 계산도 한다. 주방장에게 음식을 직접 받아, 비어 있는 공용 테이블에 가서 먹는 식이다. 수저와 소스는 필요한 대로 직접 챙겨 가야 한다.

식당 간판에 메뉴가 적혀 있고, 벽에는 식당 소개가 담긴 신문을 붙여 놨다. 그 옆으로 이 식당에서 가장 새것처럼 보이는 미쉐린 가이드 인증서가 놓여 있었다. 저 인증서만 아니라면 이 식당이 그리도 유명하고 특별한 식당이라는 걸 아무도 모를 것 같은 평범한 식당이다.

한쪽 벽에는 식당의 위생상태를 평가한 인증서가 붙여져 있다. 싱가포르의 모든 식당은 매년 위생 상태를 조사받고 결과에 따라 가장 좋은 등급인 A(Excellence)부터 가장 나쁜 등급인 D(poor)까지 매겨지는데 대부분 A 아니면 B가 많고 C(Average)만 되어도 손님이 찾질 않아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른다. 이 식당의 등급은 'B'.

손님이 주문을 하고 있다. 앞에 놓인 고추와 소스는 셀프. 오른쪽에 위생상태를 나타내는 스티거가 붙어 있다. 이 집은 "B"
▲ 힐 스트리트 타이 화 포크 누들 손님이 주문을 하고 있다. 앞에 놓인 고추와 소스는 셀프. 오른쪽에 위생상태를 나타내는 스티거가 붙어 있다. 이 집은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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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을 기다려 겨우 주문할 수 있었다. 이 집의 대표 음식은 다진 돼지고기로 끓여 낸 육수에 손님이 원하는 종류의 면을 올려 주는 간단한 국수다. 살짝 물어보니 돼지고기 외에 생선 말린 걸 추가로 넣어 개운한 맛을 내는 게 이 집 맛의 비결이란다. 크기를 따로 지정하지 않으면 6싱가포르달러짜리(5000원) 기본형이 나오고 좀 더 많은 양을 원하거나 따로 포장을 하게 되면 좀 더 가격이 비싸진다.

한 시간을 기다려 받은 포크 누들. 이래 뵈도 미쉐린 가이드 별 하나 받은 국수다.
▲ 힐 스트리트 타이 화 포크 누들 한 시간을 기다려 받은 포크 누들. 이래 뵈도 미쉐린 가이드 별 하나 받은 국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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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맛을 볼 차례다. 젓가락으로 면을 건져 한 입 베어 물었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면이 살짝 덜 익었다. 한 시간씩 기다리는 손님 생각하면 면 다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힘들 수도 있겠다 싶다. 젓가락을 놓고 그 상태로 몇 분을 더 기다리니 겨우 먹을 만 했다.

면이 익는 동안에 국물 맛을 봤다. 음식에 문외한인 내 입에도 뭔가 깊은 맛이 느껴졌다. 면에서 받은 배신감을 온전히 보상받을 수 있는 그런 맛이었다. 시간에 따라 면도 적당히 풀어져 면과 국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비워냈다. 기다리는 시간만 길지 않다면 자주 와서 먹을만하단 생각을 했다.

힐 스트리트가 받은 별은 하나. 이는 '해당 요리의 전문적인 음식점'이라는 의미다. 면만 제대로 잘 익어서 나왔다면 별 하나 값 제대로 하는 음식점이라고 강력 추천했을 텐데 살짝 아쉽다.

이번에는 힐 스트리트와 함께 별을 받은 또 하나의 푸드코트 식당인 '홍콩 소야 소스 치킨 앤드 누들'(아래 홍콩 누들)에 가 봐야 할 차례다. 힐 스트리트와 달리 홍콩 누들은 관광지인 차이나타운의 대형 푸드코트에 위치해 있다. 힐 스트리트에 비해 가격은 더 저렴(4싱가포르 달러, 3500원) 하면서도 싱가포르의 대표 음식인 치킨 라이스를 파는 곳이다.

차이나타운의 "홍콩 소야 소스 치킨 앤드 누들"은 30일까지 문을 닫는다. 정말 저 한칸의 식당이 미쉐린가이드 별 하나 받은 곳이다.
▲ 홍콩 소야 소스 치킨 앤드 누들 차이나타운의 "홍콩 소야 소스 치킨 앤드 누들"은 30일까지 문을 닫는다. 정말 저 한칸의 식당이 미쉐린가이드 별 하나 받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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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대부분의 외신이 집중해서 소개한 집은 홍콩 누들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8월 22일부터 30일까지 주인의 개인적인 일로 인해 문을 닫았다. 직접 찾아간 가게에는 소문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만 닫힌 문을 보며 망연자실 서 있었다. 그래서 홍콩 누들을 먹는 것은 아쉽게도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



태그:#미쉐린가이드,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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