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8.29 16:36최종 업데이트 17.06.0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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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틀비행기 6호에 탑승한 것은 '놀이'때문이었다. 행복지수 1위인 나라 덴마크, 그곳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놀까? 어찌 보면 참 우스꽝스런 질문이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려고 덴마크까지 가다니 말이다. 그러나 유치원 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겐 중요한 질문이었다.


꿈틀비행기는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저자 오연호씨가 이끄는 덴마크 행복교육 견학 여행이다. 꿈틀비행기 6호는 지난 8월 9일부터 16일까지 7박 9일간의 일정으로 여러 교육기관을 다녀왔다. 유치원 교사인 내가 가장 기다렸던 곳은 '숲 유치원'이었다.

8월 15일 아침, 우리 일행 37명은 코펜하겐 근교에 있는 스톡홀름스게이브(Stockholmsgave) 유치원을 방문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시원하게 뻗은 아름드리 나무였다. 그 사이로 유치원 건물이 보였다.

자신을 이 유치원의 '리더'라고 소개한 쇄른 에밀 마크프랜드(Søren Emil Markeprand)씨가 우리를 친절하게 맞이했다. 그는 덴마크 유치원의 약 90%가 국립이며, 숲 속에 자리 잡은 숲 유치원은 전체의 약 10%라고 설명했다. 이 유치원은 2차대전 직후에 만들어졌는데, 현재 70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유치원의 리더 쇄른 에밀 마크프랜드 유치원의 역사와 교육철학 등을 이야기하고 있는 스톡홀름게이브 유치원의 리더, 하늘색 셔츠와 9부 바지, 검은색 양말에 운동화를 신은 그의 모습에서 소탈함이 묻어났다. ⓒ 김수옥


마크프랜드씨는 이 숲 유치원의 교육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 두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자연에서의 놀이. 덴마크는 특별히 실외 활동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자연에서 느끼고 소통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경험이 중요한데, 교실 안에서보다 자연에서 신체, 정서, 사회성 발달이 더 잘 되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이 유치원에서 읽기와 쓰기와 산수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냥 이 자연 속에서 놀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합니다. 오늘 아이들이 따고 있는 이것이 사과라는 것을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감성과 몸으로 배우게 합니다."

둘째, 자연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교사다. 교사를 통해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면서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교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룹모임 시간에도 교사가 무엇을 가르치기보다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유치원에서도 똑같은 그룹모임 시간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수업의 형태로 어떤 내용을 가르치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덴마크 사람들은 유아기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간에 대한 믿음이며, 믿음의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사랑과 존중이 좋은 사람이 되는 밑거름이다.

유치원 건물 가로로 길게 지어진 건물은 복도를 두고 양쪽으로 여러 방이 자리하고 있다. 아이들이 활동하는 교실에서는 문을 열면 바깥으로 곧장 나갈 수 있다. ⓒ 김수옥


유치원 벽에 걸린 교사들의 사진 유치원의 복도 벽에는 교사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정규교사 외에도 유연하게 시간제로 근무하는 보조교사가 있어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를 개별적으로 돕고 있었다. ⓒ 김수옥


마크프랜드씨가 강조한 철학은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모습 속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바깥으로 이동하는 동안 잠깐 지났던 교실에서 눈에 띈 장면. 오, 세상에. 하얀 머리카락을 대충 묶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선생님이 아이들 사이에 앉아있었다. 나중에 이야기 나눠보니, 올해 나이는 65세이며 유치원에서 22년 근무하셨다고 한다.

그에게 유치원 교사로서 유아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놀고 경험하는 것"이란다.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사과를 따고 싶어요"라면서 할아버지 선생님을 재촉하는 바람에 그만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사다리를 가져오고 아이들과 함께 사과를 따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사랑하는 손자들과 사과 따기를 즐기고 있는 할아버지의 느낌이 배어난다. '나도 한국에서 유치원 선생님을 하고 있다'면서 반가움을 표시하자 빨갛게 익은 예쁜 사과 하나를 선물로 내민다.

덴마크의 할아버지 선생님 할아버지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사과를 따고 있다. 우리나라 유아교육 현장에도 할아버지 선생님이 함께 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 김수옥


사과나무 앞 창고 건물에서는 아이들이 따 온 사과로 즙을 짜느라 분주하다. 바구니에 담겨온 사과를 팔뚝 굵은 남자 선생님이 칼로 대충 썰어 기계 속으로 던져 넣는다. 그러면 아이들은 힘껏 손잡이를 돌려 사과를 잘게 부순다. 혼자 돌리다가 힘들어하자 친구가 와서 함께 손잡이를 돌리고, 작은 몸집의 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숨죽여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다.

한동안 그 과정을 지켜보던 내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갑자기 웬 눈물...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 눈물은 이들의 자연스러움에서 내가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가.

아이들과 선생님이 사과를 자르고 부수고, 즙을 짜내는 모습은 그냥 자연스러웠을 뿐이다. 만약 내가 그곳에 선생님으로 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사과를 자르는 것이 숫자를 가르칠 좋은 기회라 여겨 일부러 숫자를 세어보게 하거나, 사과 짜는 기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보자고 제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경험을 글이든 그림이든 표현해보자고 했을 것이다.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싶었을 테니까,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 배움이라고 생각하니까.

한국의 교사들이라면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덴마크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그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순간순간 즐기고 있었고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웠으며 인간적이었고, 곧 놀이였다. 굳이 무엇을 가르치려 하기 보다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기다려주며, 도움을 요청할 때 손을 내밀며 온전히 그 순간에 함께 머물러주는 것. 그것이 내가 본 자연스러움이었고 놀이였다.

눈물을 감추지 못해 눈이 벌겋게 된 나를 향해 사과를 자르던 팔뚝 굵은 남자 선생님이 미소와 함께 울지 말라고 외쳤다. 그는 내 눈물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사과를 자르던 선생님과 함께 미숙한 영어 실력 탓에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 주었던 선생님과 기념촬영을 했다. ⓒ 김수옥


우리나라로 돌아와 이 글을 쓰는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궁리 중이다. 꿈틀비행기 6호 참여자 중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계신 분이 있었는데 9월에는 그곳도 방문하기로 했다. 우리 안에서도 이미 새롭게, 다르게 실천하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 그들을 찾아가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아이들의 삶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궁리하되 천천히 한발 한발 긴 호흡으로 내디뎌 보련다. 성급하게 씨를 뿌리기보다 황무지 땅에서 돌을 골라내는 마음으로, 내 안에 있는 자연스러움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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