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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잠에서 깨어 뒤척이다가 시계를 보니 5시 30분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마을 산책을 하려고 나섰으나 출입문이 잠겨 있다.  다시 침대로 가서 누워있다가 6시에 나와 보니 문이 열려 있다. 마을을 잠시 산책하고 돌아와 아침을 준비한다. 우린 한국에서 여행할 때 간편하게 사용하는 마른 미역국, 우거지국을 마트에서 구입하여 왔고 친구는 김치를 건조기에 말려 가져 왔는데 밥이나 빵을 먹을 때 뜨거운 물을 부어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

5월 29일 아침 7시 숙소를 나와 길을 걷는데 사람들이 나와 순례길에 꽃 장식을 하고 있다. 몇몇 수녀들이 밑그림을 그리면 사람들이 그림 위에 생화 또는 말린 꽃들을 그림 위에 놓아 멋진 작품을 만든다. 오늘부터 5월 장미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축제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그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 그들이 부럽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새벽 풍경 ⓒ 이홍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새벽 풍경 ⓒ 이홍로
5월 장미 축제를 준비하는 시민들 ⓒ 이홍로
5월 장미 축제를 준비하는 시민들 ⓒ 이홍로
마을을 벗어나 도로 옆길을 걷는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도 불어 걷기에 좋은 날씨다. 얼마를 걷다가 도로를 벗어나 비포장 도로를 걷는다. 다음 마을 칼사디야 데 라 케사까지 18Km 동안 마을과 식수대가 없으니 미리 준비하라고 가이드북에 소개되어 있다. 끝없이 펼쳐진 밀밭길과 지평선, 그저 말 없이 걷는다.

한참을 걷다가 부산에서 오신 부부를 다시 만났다. 아저씨는 아직도 다리를 절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가 무릎 아래로 빨갛게 부어 있었다.

"괜찮아요?"
"그냥 참고 걷습니다."

아주머니는 이번이 두번째 길이란다. 이 길이 너무 좋아 남편이 퇴직하기를 기다려 같이 왔단다. 뒤에서 두 분이 걷는 모습을 보니 한 장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힘들어도 같이 걷는 것이 부부인가 보다. 가이드북에서 마을도 없고 식수대도 없다고 하여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중간에 자동차로 음식을 파는 곳이 있어 커피와 빵으로 간식을 먹었다.
지평선 위의 구름 ⓒ 이홍로
밀밭과 왕따나무 ⓒ 이홍로
부산에서 오신 부부 ⓒ 이홍로
언덕 위의 성당과 밀밭 ⓒ 이홍로
건초 수확 풍경 ⓒ 이홍로
지평선을 걷고 걸어 레디고스 마을에 도착하였다. 마을의 성당이 아름답다. 잠시 휴식을 하며 간식을 먹었다. 여기서 3Km 정도 걸으면 오늘의 목적지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 곳의 알베르게는 두 곳이 있는데 각각 50명과 52명을 수용하는 알베르게로 늦게 도착하면 침대가 없을 수도 있다.

얼마를 걸으니 왼쪽에 넓은 정원을 가진 알베르게가 보인다. 브라질에서 온 아저씨가 빨래를 널으며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든다. 알베르게에 들어가 침대가 있는지 알아보니 8유로 하는 침대는 없고 36유로 침대만 있다고 한다. 친구와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다음 알베르게로 향한다. 앞서 가던 순례객도 우리가 걸음을 빨리하니 같이 서둘러 걷는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앞에 줄이 서 있다. 침대가 있는지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까지 침대가 있고 풀이라고 한다. 우리 뒤에 독일 청년들 셋이 도착하였는데 침대가 없다고 하니 일행 중 여자 청년이 다리가 아파 더 걸을 수 없다며 상처를 관리인에게 보여준다. 사정을 파악한 관리인이 휴게실에 메트리스를 깔아 주겠다고 한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널은 후 쉬면서 지금까지 걸은 거리를 계산해 보았다. 402Km 이제 막 절반을 넘었다. 마을 산책을 나섰다. 작은 마을이어서 10분 정도 걸으니 마을을 다 둘러 볼 수 있었다. 식당에서 10유로짜리 음식을 먹는데 앞 테이블에는 이탈리아 부부가 앉았다.  서로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며 맛있게 저녘을 먹었다. 한국인 청년도 두 사람 만났는데, 이들은 만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능력이 있다.

열일곱째날, 찬란한 아침을 맞이하다

침대에 누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내 침대로 찾아와 서둘러 출발하자고 한다. 우리의 다음 목표는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인데 이 곳도 알베르게가 두 개 있는데 46명, 16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알베르게이다. 6시 20분 출발한다.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뒤 가장 빠른 시간이다. 새벽 어두울 때 걸으니 힘든 줄 모르고 걷는다. 밀밭길을 걷다 보니 동쪽 하늘에서 해가 떠오른다. 햇살을 받은 꽃과 밀밭이 찬란하게 빛난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초목이 눈부시다.

4Km 정도 걸으니 모라티노 마을이 나온다. 바르에서 커피와 빵으로 아침 식사를 하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길을 걷는다. 오늘 걷는 길도 아름다워 피곤함을 잊고 걷는다.  우린 두 시간 정도 걷다가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는다. 친구는 순례길을 걷기 위해 새 신발을 사 신고 왔다. 한 달 정도 신고 이상이 없어 신고 왔는데, 신발이 작아 물집은 물론 발까락이 까맣게 멍이 든다. 신발을 사 신고 하루에 2시간 정도 걸었을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이 곳에서 하루에 7~8시간 걸으니 발이 부어 신발이 작게 되는 것 같았다. 나는 3년 정도 된 등산화를 신고 왔는데 별 문제가 없다.
아침 일찍 출발한 순례길 풍경 ⓒ 이홍로
아침 햇살에 빛나는 밀밭 ⓒ 이홍로
들판의 성당 유적지 ⓒ 이홍로
사아군 시내 풍경 ⓒ 이홍로
사아군 산 베니토 수도원 ⓒ 이홍로
성모의 다리 ⓒ 이홍로
양귀비꽃이 아름답게 핀 순례길 ⓒ 이홍로
오늘은 23Km 정도 걸어 정오 즈음이면 알베르게에 도착할 것 같다. 길을 걷다가 혼자 걷는 한국인 대학생을 만났다. 이 학생은 대학 1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가 제대하고 몇 개월 아르바이트를 하여 비용을 마련한 뒤 이 곳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아버님이 여행을 다녀 오라고 하여 혼자서 킬리만자로를 올라갔다 왔다고 한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젊을 때 많은 경험을 하는 것도 공부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통해 수 많은 경험을 하며, 그런 경험을 통해 지혜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 학생을 통해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지금까지 산티아고 가이드북과 생장피드 포르에서 제공한 순례 일정표를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순레길을 걸어 왔다. 그런데 이 학생은 책도 지도도 없이 오직 카미노 어플을 활용하여 순례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우리 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누리면서. 작은 마을에 도착하여 바르에서 커피를 마시며 카미노 어플을 다운 받았다. 이 어플은 알베르게 정보 뿐 아니라 알베르게로 길을 안내하기도 한다.

목동에서 온 이 대학생은 래온에서 하루 더 머물기 위해 조금 더 걷는다고 하며 앞서 걷는다. 서둘러 걸은 덕분에 12시 20분에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원하는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여섯 사람의 순례객이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줄을 서 있다. 배낭을 벗어 놓고 마을을 산책하다가 마트가 있어 빵과 과일을 사 가지고 점심을 먹었다. 오후 1시 30분에 알베르게 문을 연다. 마음에 드는 침대를 선택하여 짐을 풀고 샤워하고 빨래까지 한 후 마을 산책을 나섰다.

마을 언덕 위에 오래된 유적이 있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의자도 있다. 조용히 혼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긴다. 내가 스페인의 어느 시골 마을을 마음 편하게 산책하고 있다는게 꿈만 같다. 이 길을 걷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였지만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고 혼자 떠나온 게 미안하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을 하고 싶다.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 마을 풍경 ⓒ 이홍로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 마을 풍경 ⓒ 이홍로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 마을 풍경 ⓒ 이홍로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 마을 풍경 ⓒ 이홍로
성당 기부제 운영 알베르게에서의 나라별 노래자랑 ⓒ 이홍로
스페인 순례자의 노래와 식당 자원봉사자의 밝은 웃음 ⓒ 이홍로
우리가 묵는 알베르게는 정원이 46명이고 성당에서 운영하며 기부제 운영 방식이다. 7시에 저녁을 먹는데 요리는 돼지 갈비 복음밥이다. 메뉴는 간단하였지만 맛이 있어 한 그릇 반을 먹었다. 저녁 후 8시부터는 미팅 시간이다.

식사 후 주방 봉사 아저씨의 사회로 알베르게에 묵고 있는 사람 하나 하나를 소개하고 국가별로 노래자랑을 한다. 순례객 중에 스페인 순례객들이 가장 많았고, 기타를 치며 카미노 노래를 불렀다. 한국 사람은 부산에서 온 부부와 우리 두 사람, 모두 4명이다. 우리 차례가 왔을 때 어떤 노래를 부를까 잠시 논의 한 뒤 "아리랑"을 불렀다.

와인을 알맞게 먹은 뒤라서 흥을 돋우기 위해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더니 순례객들이 손뼉을 치며 즐거워 한다. 즐거운 시간을 마치고 일찍 잠을 자려 했는데 바로 옆 침대에 엄청난 코골이가 있어 완전 잠을 설쳤다.
태그:#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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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취미가 있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이야기나 산행기록 등을 기사화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싶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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