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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광주에는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전라도닷컴>(www.jeonlado.com)이라는 잡지가 있다. 2000년 창간 당시 인터넷 잡지로 출발해 '닷컴'이 붙어 있다. 두 해 뒤에 종이로 만든 <월간 전라도닷컴>을 내놓았다. 2016년 9월 현재 173권을 선보인 <월간 전라도닷컴>의 모토는 '전라도 사람, 자연, 문화가 있습니다'이다.

<월간 전라도닷컴>은 전라도의 어제와 오늘을 사람, 자연, 문화의 시각틀로 꼼꼼히 기록하고 있는 '귀한' 잡지이다. 둘러봐도 이런 잡지 찾기가 쉽지 않아서 귀하고, 손 큰 이의 후견 없이 자력으로 발행하고 있어 귀하다. 그래서일까. 도올 김용옥 선생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잡지"라고 극찬했고 오래전부터 애독자였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면 이런 잡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평을 남겼다. 우리 사회가 병들었다는 징표였을까? 꼭 두 해 전 이맘때 전라도닷컴 사이트는 '일베'의 공격을 받아 그동안 쌓아 둔 데이터를 날릴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특별한 유명세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전국에 걸쳐 마니아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는, 속이 꽉 찬 잡지가 <월간 전라도닷컴>이다. 이 전라도닷컴의 황풍년 편집장이 책을 한 권 냈다. 제목은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이하 <전라도 미학>)이다. 전라도와 닷컴의 짝짓기가 생경하듯이 촌스러움과 미학의 조화도 조금 낯설다. 그러나 책을 넘기다 보면 촌스러움과 미학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인지를 깨닫게 된다. 더군다나 그 촌스러움의 근원지가 전라도라면 어울림은 몇 배로 증폭된다. 모두에게 그런 감흥을 준다고 장담은 못하겠지만 필자가 읽은 <전라도 미학>은 확실히 그랬다.

 전라도닷컴 표지. 좌 2016년 8월호, 우 2016년 9월호
 전라도닷컴 표지. 좌 2016년 8월호, 우 2016년 9월호
ⓒ 전라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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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작가, 16년간 전라도 곳곳 누벼온 현장 투시 전문가
전라도의 강력한 힘을 '공감능력'에서 찾아

당초 전라도(全羅道)는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지명이다. 그러나 단순한 땅 이름이 아니다. 전라도와 가장 가까운 말은 '호남(湖南)'일 텐데, 이 둘의 뉘앙스와 용도 차이는 크다. 호남이 주로 정치적 맥락에 사용된다면 전라도는 문화와 역사 영역에서 활발하게 쓰인다. 특히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화자의 주관이 강하게 작동하는 말이 '전라도'이기도 하다. 말을 둘러싼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라도'의 면모는 찰나나 단편이 아닌 구조 속에서 온전히 드러난다. 바로 이 책 <전라도 미학>이 구조를 분해·조립하는 방법론을 활용해 '전라도'와 '촌스러움'과 '미학'을 종횡무진 엮고 있다.

<전라도 미학>은 전라도의 힘과 맛, 맘과 멋이라는 네 요소(element)에 주목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상호연관을 놓치지 않는다. 힘은 마음의 외적 표현이다. 맛이 내적 체험의 영역이라면 멋은 외양이다. <전라도 미학>은 전라도가 내장한 이들 네 요소와 그들의 상호연관이 빚어내는 여러 양태를 살피며 '전라도'의 전모를 드러낸다. 이 작업을 수행하는 저자의 기초체력도 탄탄하다. 그는 열여섯 해 동안 전라도 곳곳을 누벼온 현장 투시의 전문가다.

먼저 저자가 꼽는 전라도 힘의 원천이요 으뜸은 '촌스러움'이다. '손님이 오면 가장 먼저 밥부터 차리는' 마음, 굶어죽거나 얼어 죽을 처지에 있던 유배객 다산을 품어낸 노파의 연민이 촌스러움이다. '따순 밥 한 그럭'으로 비유할 수 있는 이런 행위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본성이자 전라도의 강력한 힘이다. 저자는 그 힘의 작동을 도처에서 읽어낸다. 무수한 무명씨들이 빚어낸 오지게 풍성한 전라도 말에서부터 '세월호 3년 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 회원들이 유가족과 동행하는 걸음걸음에까지. 저자가 포착한 전라도의 촌스러움은 다름 아닌 공감능력이다. 타인의 아픔에 자기 마음을 '온놈으로'(통째로) 담가버린다. 그 능력, 그 마음이 곧 촌스러움이다.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속에는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매혹적인 묘사들이 가득하다.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속에는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매혹적인 묘사들이 가득하다.
ⓒ 황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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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러움의 주체는 사람이다. 그래서 전라도의 촌스러움을 이야기하는 이 책 곳곳에는 전라도 사람들 이야기가 풍성하게 담겨 있다. 사람들 중에서도 '할매'들 이야기는 특별하다. 말 같기도 하고 노래 같기도 '할매'들의 읊조림을 활자로 읽을라치면, 도대체 읽는 것인지 듣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수 십년 동안 몸 안에 쌓인 연륜의 콘텐츠가 짱짱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기록자의 능력과 열성이 없으면 그 연륜을 활자화시키기는 쉽지 않다. 책 속 할매들로 인해 겪는 생생한 체험은 저자와 함께 <월간 전라도닷컴>을 꾸려온 동료이자 '할머니 전문'인 남인희·남신희 자매 기자가 늘 지켜온 존중과 경청의 자세 덕분이기도 하다.

전라도의 맛-멋은 이런 힘-맘과 어울려 이 책에서 전라도 미학을 한껏 뽐낸다. 그 유명한 '전라도 손맛'을, 전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어깨 너머로' 배우며 성장한다. 부러 폼 잡으며 학습하지 않는다. 음식으로 익힌 손맛은 어느새 묵직한 생애를 지탱하는 살림의 손맛으로 이어진다. '쇠털같이 많은 날들의 온갖 간난신고를 꿋꿋하게 헤쳐 오신 장한 손들'이 그 주인공이다. 전라도 손맛은 '구도심 시장통 곽일님 아짐의 감동적인 첫 작품 닭 그림'으로도 이어진다.

나는 <전라도 미학> 속에서 일종의 당김음(syncopation)과 같은 선율을 느낀다. 당김음은 선율의 진행 중에 센 박이 여린박으로 변하고, 여린박이 센박이 되어 셈여림의 위치가 바뀌는 것을 말한다. 음악에 긴장감이나 반전의 재미를 더해주는 효과를 낳는다. 저자는 전라도를 구성하는 네 요소인 힘과 맘, 맛과 멋을 당김음처럼 경쾌하게 변주한다. 감정선을 깊게 이동시키기도 하고 구성을 더 내밀하게 빚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마련한 전라도 미학의 탄탄한 구조 위에 저자는 마침내 '사람'을 올린다. 네 요소의 최종적인 행위 주체인 '전라도 사람들'이다. 남도 갯마을 팔순의 아재가 찰방찰방 바닷물을 차며 걷는 걸음걸이와 뒤태를 보고 저자는 '노병의 진군'과도 같은 위엄을 읽는다. 이와 같은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매혹적인 묘사들이 책 속에 가득하다. 그 바탕에는 치밀한 전라도 미학이 있다.

저자가 마련해둔 이 구조적 장치는 참으로 매혹적이다. 풍부한 소재를 모으고 구조의 내면을 파고들며 저자는 증명한다. '전라도'는 생명들의 공동체를 희구하는 열망의 언어이며, 온갖 삿된 것에 저항하는 가치의 집합체임을. <전라도 미학>은 한 지역에 대한 사회문화적 이해를 넘어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 '전라도 인문학 개론' 혹은 '전라도 입문서'라는 부제를 붙여도 어울릴 것 같다.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이 보여주는 전라도의 촌스러운 삶은 담백하고 성실하다.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이 보여주는 전라도의 촌스러운 삶은 담백하고 성실하다.
ⓒ 황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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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사람들의 눈물과 인내, 인간적 당당함 담아
매혹적 묘사, 덩실덩실 어깨춤 같은 문장 보는 즐거움도

이즈음, 저자가 이 책에 숨긴 의도는 뭘까 궁금해졌다. 왜, 지금, '전라도 미학'을 말하는 것인가. 나는 시대정신으로 보았다. 풀어 말하면 인간성의 고양과 '호남'의 의미 찾기다. 정치언어로서 '호남'은 문화언어로서 '전라도'를 탑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직관이다. 저자는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그 뭔가를 '전라도'에서 읽어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전라도와 전라도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라고, 저자는 세상을 향해 요구한다. 한국사회의 영혼을 살찌워온 '곳간' 전라도에 침을 뱉지 말라고 항의한다. 세상에 분노하고 좌절하는 이들에게 '전라도 사람들'의 뜨거운 눈물과 인내, 그리고 인간적 당당함을 보여주며 위로하고 싶어 한다. 저자가 누구라도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전라도'를 강조할 때, 우리는 유추한다. 무명씨라는 이유로, 혹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구라도 누구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보편의 가치를.

저자의 문장을 음미하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큰 즐거움이다. 제목에도 큼직하게 쓰인 '촌스러움'이라는 말은 언뜻 문화적 차별의 뉘앙스를 풍긴다. 촌스러움이라니, '촌'이 어쨌다고. 책을 읽다 보면 도발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저자가 보여주는 전라도의 촌스러운 삶은 담백하고 성실하다.

촌스러운 사람들은 내남없이 한데 어울려 구김 없이 쾌활하다. 세상의 모든 생명에 연민을 품는다. 알고 보면 '촌'은 우리 모두의 태생지이자 지금도 우리의 목숨줄을 부지해주는 생기의 곳간이다. 욕망의 전쟁터가 된 지금 사회에 대처할 신문명론이 바로 '촌스러움'에 있다. 이 공감은 모두 저자의 글솜씨가 매개한 것이다. 전라도 할매들과 저자가 덩실덩실 함께 추는 어깨춤 같은 문장들 몇 개만 살펴본다.

"초가 옆으로 우뚝 솟은 수은행나무를 말아 감고 분홍빛 선명한 꽃망울이 벙글벙글 피었다. 우듬지까지 기어올랐던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다 팽그르르 떨어지며 허공을 긋는다." (23쪽)

"한겨울 몸서리나게 매서운 찬바람을 맞으며 하염없는 호미질과 조새질로 굴을 캐고 추리고 발라내는 아짐들의 한 생을 발견할 때 비로소 남포 굴의 참맛을 음미할 수 있으리라."(112쪽)

"올망졸망 돌담 밖으로 주렁주렁 곶감 매달은 가지가 휘휘 늘어지고, 하얀 깨꽃 너머로 호박덩굴이 무성하게 기어간다. 땡볕의 서슬에 논도 밭도 숨을 죽이는데 장마 뒤끝이라 뒷동산 계곡을 훑고 내려온 시냇물만 기세 좋게 찰랑찰랑 흘러간다."(127쪽)

"맵찬 겨울바람이 무시로 불어대는 오일장도 눈물겨운 손들의 집결지다. 소가죽처럼 거칠고 질긴 손들에 박힌 지긋지긋한 고난의 이력에도 불구하고 내놓은 말씀들은 무심한 듯 평화롭고 곱기만 하다."(264쪽)

저자의 문장이 안내하는 <전라도 미학>은 왕대마을 윤순심 할매의 '인간론'을 빌어 완성된다. "아가,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다 도둑놈 되드라. 사람은 속에 든 것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벱이니 내 마음을 지켜야제 돈 지키느라고 애쓰지 말아라."(321쪽)

 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이 쓴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행성B잎새 출판. 2016년 8월 출간. 총348쪽
 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이 쓴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행성B잎새 출판. 2016년 8월 출간. 총348쪽
ⓒ 황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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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 정수를 담은 책이자 문화의 옷을 입은 정치담론서
호남의 정치인, 호남에 관심 가진 정치인들에겐 필독서

<전라도 미학>은 일반 글쓰기 교재로는 물론이고, 각 학교에서 '전라도학' 교과서로 쓰인다 해도 부족함이 없다. 무엇보다 호남의 정치인, 호남에 관심 가진 정치인들에겐 필독서다. '전라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이 땅에서 바른 정치인의 길을 걷기 난망하다. 저자는 역사의 심연에서 '전라도적인 것'의 원형질을 길어 올린 다음, 인간성이 통째로 무너지고 정의로움이 엷어지는 시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한다. 그래서 <전라도 미학>은 문화의 옷을 입은 정치담론서이기도 하다.

모처럼 '전라도'의 정수를 담은 책을 읽었다. 황풍년씨는 저자이면서 이미 그 자체로 '전라도'이다. 그가 용인하든 용인하지 않든 그는 한때 또 다른 나였다. 우리는 기자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전라도의 한 시대를 통과했다. 나는 지금 현실정치의 영역에서 지역자치를 고민하고 있고, 그는 전라도 미학의 올곧은 탐구자로 살고 있다.

그는 "글로 업을 삼는 나약한 손으로 위대한 손의 역사와 귄있고 게미진 말씀을 기록하고 쌓아왔으니 나는 실로 분에 넘치는 행운을 누려온 셈"이라고 말한다. 아니다. 행운을 누린 사람은 이 책 읽을 기회를 누린 나다, 우리다. 그런 행운을 선사한 그가 "큰일이다. '지역'이라는 꼬리를 앞에다 붙이는 온갖 장르의 '문화'가 시들시들 신명을 잃어가고 있는가 보다"고 걱정한다. 뜨끔하다. '한때의 나 자신'인 그가 내게 부과하는 숙제처럼도 들린다.

<전라도 미학>은 황풍년의 글을 빌어 전라도가 전하는 말이다. 그 말의 핵은 세상살이 '뭣이 중한지 알고나 살아라'라고 나는 독해한다. 담백하고 고운 문장 속에서 튀어 나오는 이처럼 촌스러운 메시지로 인하여 내 정신은 굳은 어깨를 풀 때처럼 아프고 시원하다. 나는 <전라도 미학>이 많이 팔리기를 갈망한다. 누구라도 전라도를 좀 더 잘,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그렇다. 많이 팔리면 <월간 전라도닷컴> 살림살이에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또한 그렇다.  무엇보다도 아프면서 시원한 정신의 자각을 함께 경험해 봤으면 해서 그렇다.

나는 <전라도 미학>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전라도에 관한 텍스트이자, 전라도가 여전히 건강하다는 점을 웅변하는 책의 증거물이라고 확신한다. 전라도 사람으로서 황풍년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 꽃 중에 질로 이쁜 꽃은 사람꽃이제

황풍년 지음, 행성B(행성비)(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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