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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9일 오전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5차 핵실험을 감행하였다. 실험 약 4시간 후에 북한은 조선중앙TV를 통해 "조선로동당의 전략적 핵무력건설구상에 따라 … 새로 연구제작한 핵탄두의 위력판정을 위한 핵폭발시험을 단행하였다"고 밝혔다. 이 방송은 "이번 핵실험에서는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들이 장비한 전략탄도로케트들에 장착할 수 있게 표준화, 규격화된 핵탄두의 구조와 동작특성, 성능과 위력을 최종적으로 검토확인하였다"며 핵실험이 성공이었다고 주장했다.

5차 핵실험의 무거운 의미

9일자 위 방송과 <로동신문> 사설을 묶어볼 때 김정은 정권 들어 노동당의 국가 지도력은 정치사상과 제도 양 측면에서 확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중앙TV는 핵실험이 노동당의 지도하에 이루어졌고, <로동신문>은 "김정은 동지를 유일중심으로 하는 당과 혁명대오의 일심단결을 철통같이 다져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은 헌법에 핵보유국 지위를 명문화 하고 관련 법규의 제·개정을 통해 핵 보유 및 관리를 제도화 하고, '경제핵병진노선'을 통해 핵무력 강화와 핵기술의 민수경제로의 전환을 천명해왔다.

군사기술적인 측면에서 5차 핵실험은 지진 5.0~5.3, 위력 20~25Kt으로 분석되고 이번 실험이 지표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다섯 차례 핵실험 중 가장 파괴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지난 6월 발사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0'을 비롯해 북한이 계속해서 탄도미사일 기술을 개량해온 점을 감안할 때 북한의 핵무장력은 핵개발 및 보유 능력을 넘어 핵미사일로 발전해 실전 이용이 가능한 수준까지 왔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북한 관영언론은 "핵탄두가 표준화, 규격화됨으로써 우리는 여러가지 분열물질에 대한 생산과 그 이용기술을 확고히 틀어쥐고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보다 타격력이 높은 각종 핵탄두들을 마음먹은대로 필요한만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번 핵실험은 미 본토를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을 탑재할 능력을 제외하고는 한반도와 일본, 나아가 동아태지역의 미군기지를 핵공격할 능력을 갖추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5차 핵실험은 김정은 정권이 최대의 효과를 의도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공화국 창건 68주년'에 맞춰 최대 위력의 핵실험을 성공한 점은, 김정은 정권이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비전을 가시화 하고 '경제핵병진노선'의 성과를 과시해, 결국 "유일영도" 수령의 지도 아래 당과 군대, 인민의 "혼연일체"를 증명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공화국 창건 68주년 중앙보고대회'에서 박봉주 총리는 "우리 공화국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높이 모시여 사회주의강국 건설의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외적으로 5차 핵실험은 한국 주도의 대북 제재에 심각한 파열구를 내는 의미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관되고 강력하게 전개하고 있는 대북 제재외교을 일단락하고 귀국하는 일정에 핵실험을 단행한 것은, 북한이 박 대통령의 잔여 임기 중 대북정책이 뚜렷한 대안 없이 막다른 골목에 처했다는 주장으로 연결지을 공산이 크다.

북한은 또 한미일 대북 제재 공조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명분으로 핵무장력을 강화하고 그것을 체제 결속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북한은 이번 실험도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의 위협과 제재소동에 대한 실제적 대응조치의 일환으로서 적들이 우리를 건드린다면 우리도 맞받아칠 준비가 되어있다는 우리 당과 인민의 초강경의지의 과시"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의 인정 획득을 목표로 삼아 워싱턴에 전쟁과 협상 중 하나의 선택을 압박할 것이다.

북한은 미중, 한중 정상회담 등 중국이 관여하는 '북한 비핵화'를 향한 관련국들간 협력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핵무장력 강화의 길을 갈 것을 분명히 했다. 김정은 정권은 핵 비확산과 지역안정에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미국과 중국에 '우리식 사회주의'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다른 한편 미국과 중국이 여러 세계 및 지역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고, 미국이 권력교체기를 맞이하고 있는 점을 십분 활용해 핵무장력 강화와 핵보유국 지위의 기정사실화, 협상의 지렛대 극대화 등과 같은 외교안보전략상의 효과도 확보해두려 했다. 이런 다각적인 편익을 고려할 때 국제사회의 추가 제재와 중국과 지속되는 냉각은 감수할 만한 비용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의 5차 핵실험은 북한의 대내외 상황, 그 시점과 위력 등을 종합 감안할 때 김정일 정권에 다각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었고, 관련국들은 허를 찔린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김정은 정권의 5차 핵실험이 "통제불능"의 김정은 때문이라기보다는 북한정권의 합리적 계산에 의한 것이라는 평가가 더 합리적일 것이다.

핵분단체제의 형성과 지속가능성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장과 그에 대한 한미일 주도의 지속적인 국제 제재는 장군멍군식의 행동(Tit-for-tat) 패턴을 보이며, 세계에 한반도를 장기분쟁지역으로 새삼 각인시켜주고 있다. 전쟁까지 치른 적대세력들이 '힘을 통한 평화' 노선에 따라 서로 경쟁하는 식으로 자신의 존립과 행동을 정당화 해왔다. 그렇게 형성 지속되어 온 분단체제는 이제 남북 양쪽에서 핵공격이 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핵분단체제의 출현이다.

핵분단체제는 1) 냉전 해체 이후 북한의 안보 불안을 관계정상화, 평화체제 수립을 향한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하지 못한 것을 일차 배경으로, 2) 2000년대 2차 북핵 위기를 6자회담을 이용해 해결하지 못한 것을 이차 배경으로, 3) 김정은 정권 들어 계속된 3차 핵실험(2013년 2월 12일)을 분기점으로 해 형성되어갔고, 4) 이후 북한은 그런 상태를 기정사실화 하는 군사 도발과 외교를 전개해왔고, 5) 한미일 주도의 대북 제재와 북한급변사태 대비가 핵분단체제 형성을 촉진했다.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자멸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맹비난했고, 중국 측은 "결연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국내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북한을 규탄하는 결의안 채택과 군중행사가 이어질 것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채택 등 추가 제재 결정이 나올 것이다. 여기에 북한이 추가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발사로 대응할 수도 있다.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은 더 어려워졌다. 북한은 추가 제재를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핵위기를 더 조성해나갈 것이다. 북한 핵무기연구소는 9일 발표한 성명 말미에 "미국의 가증되는 핵전쟁위협으로부터 우리의 존엄과 생존권을 보위하고 진정한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국가핵무력의 질량적 강화조치는 계속될 것이다"고 밝혔다.

북한이 만약 조건이 맞아 대화에 나선다면, 최소한 대화를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 하는 선전의 장으로 삼거나, 최대한 핵군축 협상 개최를 주장하며 기존 핵능력을 보존하려는 전략으로 나설 것이다.

좁은 문과 넓은 문

그러나 한미일 등 서방국가들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부정하고 핵폐기 입장을 고수할 것이다. 그 결과 북한의 핵능력 강화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다는 것을 명분으로 해서 국내에서 사드 배치는 물론 핵무장이나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주장은 비핵화의 길을 모색할 대화의 문을 닫는 것임은 마찬가지다. 다만 한반도에서 군비경쟁을 새로운 차원, 즉 핵군비경쟁의 길로 끌어들일 것이 다른 점이다.

한편, 야당 일각과 진보성향 언론에서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 원인을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서 찾으려는 움직임도 경계할 바다. 북한의 1차 핵실험은 2006년 10월 노무현 정부 시기 발생했다. 대북 강경정책을 전개할 때 핵실험이 더 많았다고 강경정책을 제일 원인으로 삼는 것은 토론의 여지가 있다. 북한의 핵실험 배경을 대내적, 대외적 측면으로 나누고, 대외적 측면을 북한의 안보위협을 기준으로 판단할 경우 제일 대상이 남한보다는 미국이기 때문이다. 위 핵무기연구소의 성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북한이 핵실험 이유를 밝힐 때도 대내외적 명분을 제시했는데, 북한이 일관되게 주장한 제일 요인은 '미국의 계속되는 적대시 정책'이었다.

향후 한반도는 핵분단체제를 공고히 하는 핵군비경쟁의 길로 본격 진입하는 경우와 북한의 핵능력 동결과 핵확산 방지를 목표로 하는 핵협상으로 나서는 경우, 기본적으로 둘 중의 하나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앞의 길은 안보 포퓰리즘의 지지를 받는 넓은 문이고, 뒤의 길은 망상 혹은 종북이라는 낙인을 받을 소지가 큰 좁은 문이다. 물론 목하 서울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반응은 앞의 길로 나아갈 공산이 크다.

금번 북한의 핵실험 타이밍을 감안할 때 감정적이거나 관성적인 대응을 금물이다. 많은 지적처럼 비난보다는 분석, 무망한 압박보다는 현실가능한 해결 방안을 모색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정부가 압박 일변도의 접근보다는 위기상황을 관리하고 상대의 의도와 우리의 대책을 준비할 이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대통령을 비롯한 박근혜 정부가 내놓고 있는 강경, 압박 일변도의 접근은 상황 관리와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접근법을 스스로 좁히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상황관리와 대책 마련을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 미국, 중국 등과 협조해 북한과 비공개 접촉도 검토할 만하다. 대화를 보상이나 양보로 간주하고 주관적인 판단 하에 압박 모드에만 집중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북의 핵능력 강화에 일조할 뿐이다.

상황관리 노력과 함께 향후 대북정책, 비핵정책의 목표와 중간단계 설정이 중요하게 되었다. 북한이 핵보유 능력을 가진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나 이를 관련국들이 공식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상황관리 하에 일차적인 과제는 북한의 핵확산을 예방하는 일이다. 북한이 핵능력을 고도화 하고 그 기술과 물질을 외부로 확산하는 것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기본 과제다. 여기에 미국, 중국, 러시아가 공감대가 있기에 한국(과 미국)은 적절한 제재와 상황관리 하에 (미국,) 중국, 러시아를 통해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는 노력이 우선이다.

한국의 선택지

사실 한반도 비핵화는 1994년 10월 이후 제네바합의 이행, 2005년 9월 9.19 합의 이후 등 몇 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관련국들, 특히 미국과 북한간 불신으로 좌초되었다. 21세기 들어 유일한 북한의 다섯 차례 핵실험과 한반도의 긴장을 고려할 때 기존의 비핵화 합의가 사문화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반도 비핵화의 길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그것이 비록 좁은 문이라도 해도 말이다.

북한의 입장은 분명하다. 이라크, 리비아 침공과 같은 예에서 보듯이 미국의 계속되는 적대 정책 하에서는 핵무장이 당연하고 합리적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북한은 경제지원, 관계정상화를 걷어차고 미국에 핵군축협상과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왔다. '비핵개방3천'으로 불린 이명박 정부의 대북 압박과 그에 동조한 오바마 정부의 '선의의 무시정책'은 북한의 핵무장 명분과 시간벌기에 이용만 되었을 뿐 일말의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이제 공은 워싱턴으로 넘어갔다. 오바마 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김정은 정권은 적어도 1년의 추간 시간을 벌게 됐다. 물론 미국이 움직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사이 한국이 움직이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그럴 가능성도 높지 않다.

한국의 입장에서 비핵화 목표를 포기할 수 없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폐기나 핵무장을 선언하면, 한미원자력 협정과 한국군 작전통제권 등을 둘러싸고 미국과의 갈등은 물론 북한의 핵무장 덫에 빠져드는 딜레마에 들어간다. 미국의 전술핵무기 도입도 마찬가지다.

북의 핵동결을 현실적인 과제로 잡고 북한과 대화의 모멘텀을 확보해 비핵화의 길을 다시 닦아야 한다. 한국이 주도하고 미국, 중국이 지지, 보증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길 외에 대안이 없다. 북핵문제의 역사적 연원과 현실적 심각성, 그리고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위해 이제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한에 대비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자는 말을 실천할 때다.

박근계 정부가 그 일에 나설 때다. 그렇지 않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국민의 선택이다. 한국과 민족과 지역의 미래를 깊고 충분히 논의하는 기회를 차기 지도자와 정부를 결정하는 시간에 가져야 한다. 폭넓은 숙의를 통한 성숙한 민주주의는 안보문제에도 적용될 때 그 보편성을 가질 수 있다. 이성이 마비되는 선거 시기를 앞둔 이때 문민통제의 헌법 원리에 입각해 안보와 평화 문제를 이성적으로 논의할 장을 다양하게 만들어 운영할 필요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주의와 함께 동행하지 않을 때 평화는 납치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이 글을 쓴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코리아연구원 연구위원이기도 합니다.



태그:#5차 핵실험, #핵분단체제, #9.19 공동선언, #경량화 소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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