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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홍천 '삼일학림'에서 생활기술 수업 선생님이 직접 나무를 깎고 옻칠을 하여 만든 생활 도구들.
 강원 홍천 '삼일학림'에서 생활기술 수업 선생님이 직접 나무를 깎고 옻칠을 하여 만든 생활 도구들.
ⓒ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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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슥' '싹싹' 나무 깎는 소리가 리듬을 타며 들려온다. 10여 명이 앉아서 나무를 다듬고 있다. 곧고, 둥글고, 각지고, 휘어 있는 칼을 골라 하나씩 들고서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강원 홍천 고등·대학 통합 학교 '삼일학림' 생활기술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다. 여름 학기를 맞아 8월 12-13일 이틀간 집중해서 이뤄졌다. 청소년과 성인 학생이 함께 한 자리였다.

영호 선생님은 본인이 만든 나무 숟가락, 젓가락, 국자, 뒤집개, 컵, 접시를 꺼내 보였다. 옻칠까지 해 자연 색이 묻어났다.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이 아니라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세상 하나뿐인 작품이었다. 평소에 쓰는 물건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나무 깎기. 이제 학생들에게 기술을 나눈다.

칼과 끌로 나무를 깎고 파내어 컵도 만들고, 숟가락, 접시, 뒤집개 등을 만든다. 학생들이 돈 주고 사던 것들을 직접 만들어 본다.
 칼과 끌로 나무를 깎고 파내어 컵도 만들고, 숟가락, 접시, 뒤집개 등을 만든다. 학생들이 돈 주고 사던 것들을 직접 만들어 본다.
ⓒ 삼일학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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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각자 나무를 골라 어떤 걸 만들지 떠올렸다. 막상 나무에 손을 대려니 '어떻게 깎지' 하는 망설임이 앞섰다. 나무를 처음 깎아보는 사람은 막막함이 더했다. '일단 시작하자!' 하나둘 나무에 칼을 대기 시작했다. 소나무 판재 속을 파내거나 자작나무 깎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서툰 칼질에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선생님이 한 사람 한 사람 둘러보며 칼질하는 요령을 알려줬다. 둥그런 통나무로 숟가락을 만들 때는, 처음엔 곧은 칼로 나무겉을 많이 파내야 한다. 약간 납작한 형태가 되면 그때부터 살살 깎으며 숟가락 모양을 잡아가면 된다. 접시를 만들 때는 나무 판재를 받침대에 고정해 놓고, 조각칼로 속을 파낸다. 구멍이 뚫리지 않도록 깊이를 보면서 파내야 한다.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다. 다들 배고플 만도 한데, 나무 깎기에 열중하고 있다. 칼질이 점점 손에 익다 보니 도중에 마치는 게 어려웠다. 겨우 몸을 일으켜 밥을 먹으러 나갔다. 학생들이 일어난 자리에는 나무껍질과 조각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삼일학림 학생들이 나무로 집기류도 만들고, 가구도 만들며 생활기술의 즐거움을 누린다.
 삼일학림 학생들이 나무로 집기류도 만들고, 가구도 만들며 생활기술의 즐거움을 누린다.
ⓒ 삼일학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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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학림 청소년 학생들은 학교에서 지내면서 생활기술을 꾸준히 배워 왔다. 탁자나 수납함 등 자기에게 필요한 것들을 쉽게 만들 줄 안다. 직접 만들 줄 아니 웬만한 것들을 고치는 것도 곧잘 한다. 나무 깎는 것은 기존에 배우지 못한 기술이어서 이번에 대부분 수강했다.

성인 학생들은 이 수업이 개설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평소에는 직장 일이나 농사일로 생활기술 수업에 참여하지 못해서다. 여름학기 집중 학습을 기다리고 있다가 참여한 성인들이 많았다. 성인 학생들의 배움을 향한 열정은 청소년 학생들 못지 않았다.

꾸준히 깎고 파내기를 반복하니 점점 모양새가 나오기 시작했다. 각지고, 둥근 다양한 모양의 접시. 크기가 제각각인 숟가락. 자기만의 개성 있는 작품이 나왔다. 아직 투박하여 섬세한 마감 작업이 필요하지만, 직접 만들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이튿날에는 가구 만들기에 나섰다. 나무 깎는 작업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어진군(18)은 물건을 올려놓을 3단 탁자를 만들었다. 부모님께 드릴 선물이란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선생님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만들었다. 주은양(19)은 집 바깥에 두고 쓸 긴 의자 2개를 만들었다. 설계와 나무 마름질은 선생님에게 도움을 받았다.

병도씨(38)는 집에서 책 보고 공부할 때 쓸 탁자를 만들었다. 널따란 나무를 덧대어 탁자 윗부분과 다리를 만들고 서로 연결해 뚝딱 탁자 하나를 완성했다. 대나무나 신우대 발을 만들 때 쓰는 도구, 사다리처럼 쓸 수 있는 발 받침대, 의자를 만든 성인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이 이틀간 집중 수업에서 나무로 만든 것들.
 학생들이 이틀간 집중 수업에서 나무로 만든 것들.
ⓒ 삼일학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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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이틀간 만들기에 집중했다. 손과 팔에 힘이 많이 들어갔지만, 뭔가를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뿌듯함이 컸다. 필요한 도구를 직접 만들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한 학생은 이렇게 만든 것을 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바람을 나누기도 했다.

학생들이 만든 도구나 가구는 밖에서 돈으로 쉽게 살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도 값싸게 말이다. 하지만 값싼 물건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려지는 것들이 있다. 보다 싼 물품을 만들기 위한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다거나, 대형 기계에 의존하여 공장식 대량 생산을 하는 것이 그것이다. 결국 더 값싼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일하는 사람들의 희생이나 기계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만들기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기술을 배웠다. 현대인에게 이런 생활기술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돈만 주면 필요한 물건을 쉽게 살 수 있는 세상이니, 직접 만들거나 고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 같은 생활이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자립 역량은 줄어들고 의존성만 높아지게 된다. 생활기술을 꾸준히 연마하고 가르쳐온 영호 선생님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기술을 함께 나누면서, 생활의 자립 역량을 키워가자고 했다.

덧붙이는 글 | 위 글은 아름다운마을신문(http://admaeul.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삼일학림, #밝은누리움터, #강원홍천, #아름다운마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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