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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다가오면 시민들은 말글과 관련한 제 애국심을 돌아본다

 흔히 사용하는 일본식 어휘와 바른 우리말 표현(출처 : 건축네트워크)
 흔히 사용하는 일본식 어휘와 바른 우리말 표현(출처 : 건축네트워크)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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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기호다. 당초 중국어와 다른 우리 한자의 발음을 잘 붙들어 의의(意義)가 컸다. 기호 자체는 의미가 없다. 다만 소리만 나타낸다. 한자 외래어 외국어 등의 뜻, 바람 천둥 기계 등의 소리들을 배경으로 자유자재로 기능한다. 소리글자 즉 표음(表音)문자의 대표라 할만하다.

소리글자는 뜻을 짊어지는 한자어나 외래어 등이 있어야 언어로서의 기능이 원활하고 원만하다. 물론 한글로만 이뤄진 토속어(고유어)를 쓸 때도 우리 말글은 멋지다.  

한자는 그림을 디자인한 글자다. 글자 하나하나가 한 단어다. 3500여년 역사를 거치며 내내 발효되고 시험되고 진화했다. 획수를 줄여 간단히 쓰는 간화자(簡化字) 채택 등 여러 번의 '혁명'도 겪었다. 뜻글자, 즉 표의(表意)문자다.

문자의 새벽, 인간이 사물을 보고 그 윤곽이나 개념을 어떻게 파악하고 설명했을까? 이에 대한 동아시아 옛 사람들의 대답이 첫 한자의 모양이다. 그 상당 부분을 동이족(東夷族)이 만들었다는 학설도 분분해 우리와도 인연 깊은 갑골문(甲骨文)은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이다.

한글날이 다가오면 언론들은 우리 말글에 침투한 왜색(倭色) 즉 일본말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기사를 많이 쓴다. '아직도 침략자들의 그런 말을 쓴단 말인가!' 하는 비분강개(悲憤慷慨)가 대다수다. 그 때마다 시민들은 말글과 관련한 제 애국심을 돌아본다. 곧 잊고 말지만, 다소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따위 말들, 쓰메끼리(손톱깎기) 와리바시(나무젓가락) 나와바리(세력권) 다마네기(양파) 벤또(도시락) 등 예전에 쓰이던 일본 말은 거의 씻겼다. 이제 식당에 가서 '요지'를 찾는다면 아마 이 사이에 낀 찌끼를 빼낼 수 없을 것이다. 왜색은 왜 즉 일본의 빛깔, 일본풍이다. 

한자어로 되어 우리말에 안겨 있는 말들 중 일본산(産)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그 잘잘못을 톺아 지적한다. 최근 불후(不朽)라는 일본식 한자어가 '불후의 명곡'과 같이 TV프로그램의 제목으로 자주 나와 걱정스럽다는 한 국문과 교수님의 신문 글도 있었다. 고개 끄덕여지는 말씀, 사전에도 그런 지적은 없다.

'역사적'(歷史的)이라는 말의 접미사 '∼적(的)'은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이 처음 쓴 말이어서 쓰지 말아야 한다는 한 신문기사도 있었다. 한글학자 최현배(1894∼1970)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글 쓴 기자가 쓴 다른 글에도 역사적 등 '~적'이란 말이 버젓이 들어 있다. 그만큼 우리 말글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표현이어서일까?

물론, 이 기자는 '신문'이나 '방송'이란 단어가 실은 일본에서 만들어져 '수입'된 용어임을 알고 있겠지? '기자'(記者)란 단어 또한 그렇다. 그렇다면 뭐가 '일본말 찌꺼기'일까?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런 식으로 한국어에 들어온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등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본인이 처음 쓴 말을 쓰는 게 잘못? 그렇다면 철학 영어 수학은?

일본인이 (처음) 쓴 말을 우리도 쓰는 것이 잘못이라면 '철학'(哲學)이란 이 단어도 잘못이다. 그뿐인가, 영어 수학 물리 지리 역사 경제 등 얼핏 떠오르는 교과목 이름들이 죄다 일본식 한자어라면 많은 우리 시민들이 얼마다 당황할까? 그 '시민'(市民)도 일본식 한자어라니, 이 당황스러움은 곧 황당함으로 바뀔 터다.

지혜(소피아)를 사랑한다(필로스)는 서양어 필로소피(philosophy)의 짝이 밝은(哲) 학문(學) 즉 '철학'이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1853∼1877) 이후 일본이 서양에 문을 열고 새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필로소피라는 학문의 이름은 철학이라고 (번역)하고 모두 그렇게 쓰자'고 (약속)했다. 우리도 중국도 그렇게 쓴다. 잘 만든 말로 느껴진다.

우리(동양)에게는 없던 수많은 서양의 개념과 용어들이 이렇게 동양식 이름을 갖게 됐다. 1900년경 이 말들은 당시 일본과 유럽 등 열강(列强)에 시달리며 뒤늦게 서양(의 문물)을 배우던 우리나라와 중국에도 전해졌다.

한국은 그들의 식민지였다. 일본(인)의 틀(프레임)로 생각하고 말해야 했던 이 땅에 그들의 말이 침투한 것은 당연하다. 잘 사는 그들의 여러 모습을 해방 후에도 본보기 삼았다.

무대뽀(무철포 無鐵砲) 입빠이(일배 一杯)같은 일본 한자어도 들어왔다. 일본 한자어를 우리(한국어) 한자어 발음으로 들여온 것도 많다. 철학 음악 주식회사(株式會社) 등이 그렇다. 광복절 한글날에 일제 잔재(殘滓·찌꺼기) 때문에 짜증을 내더라도, 이런 사정쯤은 알고 있어야 무식한 헛발질을 피할 수 있다.

언젠가 왜색 말글을 쉬운 말글로 고쳐 행정에 적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람'(供覽)은 '돌려봄'으로, '호우'(豪雨)는 '큰비'로 고쳤단다. 또 '누수'(漏水)는 '새는 물', '우측보행'은 '오른쪽 걷기', '차후'(此後)는 '지금부터'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의미 있다. 우리 말글을 갈고 다듬는 실효성 있는 이런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언어에서 순결주의는 퇴영, 갓난아기로 가자는 것

'한글이 세계언어올림픽에서 수십년 째 금메달을 받았다'는 얘기가 인터넷 세상을 떠다닌다. '세계 최고 언어학자 아무개가 한글이 세계 최고 언어라고 발표했다'는 말도 흔하다. 이를 퍼뜨리며 으쓱해하는 이도 많다. 사실인가?

이런 모양은 '아리랑'이 세계민요올림픽(또는 올림픽 같은 콩쿠르)에서 계속 금메달을 땄고 모든 음악가들이 경의를 표했다는 등의 밑도 끝도 없는 '자랑'과 비슷하다. 희망과 현실을 혼동하는 빗나간 자부심, 열등감 또는 열패감의 무의식적 노출로 생각된다. 물론 사실일 수도 없고.

이런 국수주의(國粹主義)는 옹졸하고 치졸한 자폐(自閉)다. 그러고 보니 서양말 쇼비니즘(chauvinism)의 짝인 국수주의라는 말도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식 한자어다. 

그런 헛된 자긍심은 자만(自慢)을 부를 수 있다. 정작 한국어의 구조나 작용원리, 역사 등에 관심도 없으면서 자긍심만 높은 우리 시민들의 '나의 모국어'는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자칫 무지(無知)의 표지가 될 수 있다.

근대 역사가 우리 언중(言衆)의 집단의식에 남긴 깊은 상처가 그런 식으로 표출(表出)되는 것은 아닌지도 저어한다. 열등감의 다른 얼굴일 수 있다는 걱정인 것이다.

'일본어 찌꺼기'에 대한 생각처럼, 영어 등 서양언어가 무절제하게 한국어에 흘러들어 또 다른 찌꺼기가 되고 있음도 걱정해야 한다. 외래어(外來語)와 외국어의 명확한 구분도 중요하다. 다른 언어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고 '나쁜 찌꺼기'는 잘 버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터다.

말글 세상은 바다다. 세상 모든 사물(事物) 즉 일과 물건의 이름을 부르고 적는 것이 언어다. 개방의 시대, 문 닫으면 바로 패배다. 언어도 그렇다. 일본말이니까 '철학' '방송' '물리'를 버릴까? 중국서 왔으니 한자(어)도 버릴까?

언어에서의 순결(純潔)주의는 퇴영(退嬰), 즉 갓난아기 상태로 가자는 것과 다름없다. 또는 갈라파고스 제도(諸島)처럼 고립을 자청해 진화와 발전의 여정에서 스스로 멀어지는 것일 수 있다.

여러 문명과 역사의 뜻과 말이 조화롭게 섞인 언어가 좋은 언어인 것이다. 라틴어 불어 독어 등이 잘 섞인 영어를 떠올려본다. 한국어를 적는 문자인 한글은 세상 모든 말을 그 뜻과 함께 잘 적을 수 있어서 위대하다. 한국어를 구성하는 한글의 위대함을 새삼스럽게 실감한다. 한글의 진짜 가치를 이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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