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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부당해고, 언제까지 계속 될까요?
9월 30일 티브로드 노사가 잠정합의를 했다. 올해 설날 전에 해고돼 길거리 노숙농성투쟁을 한 지 243일, 단식으로 시작된 국회 앞 노숙농성 32일만이다. 잠정합의안은 10월 4일 희망연대노조 티브로드비정규직지부 총회에서 85%의 높은 찬성률로 가결돼 부당해고에 맞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일단락됐다. 2013년 원청사용주를 무릎꿇리는 인상적인 승리를 쟁취했던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6년 노조말살을 목표로 강행된 태광그룹의 대량해고에 맞서 다시 승리했다. 드문 일이다.

반가우면서도 착잡하다

4일 밤 국회 앞에서 열린 티브로드 해고 노동자들의 승리보고대회에서, 한 참석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4일 밤 국회 앞에서 열린 티브로드 해고 노동자들의 승리보고대회에서, 한 참석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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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우면서도 착잡하다. 복직 합의로 해고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 정상 생활을 되찾게 됐으니 잘 된 일이다. 늘 눈에 밟혔을 가족의 얼굴도 펴질 테니 다행이다. 마지막까지 남은 22명의 해고노동자들이 회사측의 갖은 부당노동행위와 탄압에도 꺾이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운 결과라 감흥도 적지 않다. 하지만 맘 한켠은 무겁고 불편하다.

매년 판박이로 반복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당해고와 복직투쟁이 일상이 된 사회가 정상인가. 무엇보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인 노동3권 때문에 해고됐다. 노조활동을 활발히 했다고 사용주에게 찍혔다. 가장 많은 조합원이 가입한 지회라고 원하청 사용주들의 표적이 됐다. 선별해고되고 업체 변경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이유가 노동조합 때문이었다. 이런 현실에서 헌법과 노동법이 다 무슨 소용인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도 모자라 감히 원청사용주에게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다니 지나친 하극상이라 여겼겠지. 헌법과 노동법 위에 자본의 무한이윤 추구가 옥상옥으로 도사리고 있으니. 그건 탐욕도 아니다. 대한민국 사용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는 시험대일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선 비정규노동 착취와 갈취가 최고의  능력이다.

설사 노동자들의 항의와 반발에 부딪혀 차질이 생기더라도 사용자로선 손해볼 건 없다. 장기 투쟁으로 유도하면 노조로 가입할 유인이 확 줄어들 테니 노조 탄압과 말살 의도는 그대로 관철되는 셈이다. 투쟁 승리조차 따지고 보면 해고된 노동자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 뿐이니, 내년에 똑같은 요구를 외치면서 싸울 수 밖에 없는 조건을 그대로 두고 복직을 축하하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다.

악순환의 핵심고리 간접고용 비정규직

1천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비정규직 문제 개선과 해결은 정치권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강조하는 대표적인 노동 의제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앞세워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의 식언과 역주행으로 중앙정부와 집권여당은 제 역할을 내팽개쳤다. 그나마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정부들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앞장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마침 여소야대가 된 국회도 지방정부와 함께 좋은 일자리를 늘려가는 교두보가 될 거라 기대한다.

가장 큰 문제는 재벌대기업이 맹주인 민간부문이다. 사내유보금을 잔뜩 곳간에 쌓아두고도 나쁜 일자리를 양산해왔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근간을 뒤흔드는 불법적인 일자리를 재벌대기업이 앞장서 만들어왔는데,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 아래 권한 없는 바지사장을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대표적이다.

딜라이브(이전의 씨앤앰)와 티브로드,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삼성전자서비스 등 최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된 케이블방송통신과 가전업계 기술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이들 상시지속 업무에 종사하던 기술자들은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외주화돼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불법파견과 위장도급 혐의가 짙은데도 온갖 차별과 불이익을 감내하며 일했고, 결국 노동조합을 결성해 권리 찾기에 나섰다. 실질적 의사결정권을 지닌 원청사용주는 외주하청업체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탄압으로 일관했고 투쟁이 벌어지면 장기화되기 일쑤였다. 선진국 그룹인 OECD 가입국으로서 가장 치명적인 치부인 비대한 비정규직 규모를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가 제어하지 못한 채 재벌 주도의 극단적인 노동시장 양극화로 치닫고 말았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노동시장을 하향평준화하는 악순환의 핵심고리다. 극복해야 될 불법적이고 비인간적인 고용형태다. 전원 복직을 쟁취한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도 착잡한 이유다. 외주하청업체가 아닌 원청업체의 정규직으로 복귀하는게 아니므로 언제든 또 부당해고를 당할 수도 있다. 내년에는 누가 길거리로 쫓겨날지 장담할 수 없다. 시한폭탄 돌리기에 다름아니다. 오늘의 승리가 내일의 패배로 이어질 수도 있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가 근본적으로 뒤바뀔 때, 진정한 의미의 복직을 축하할 수 있을 것이다.

티브로드 비정규직 투쟁의 의미와 성과

4일 밤 국회 앞에서 열린 티브로드 해고 노동자들의 승리보고대회 참석자들이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4일 밤 국회 앞에서 열린 티브로드 해고 노동자들의 승리보고대회 참석자들이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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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승리는 대단히 값진 의미를 지니고 있고, 주목해야 할 성과도 많다.

첫째, 진짜사장을 끌어내 합의하게 함으로써 원청사용주와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2013년 태광그룹 계열사인 티브로드 본사를 점거해 원청사용주의 항복을 받아낸 역사적 쾌거에 이은 승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사실 연초 51명 조합원 대량해고는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조의 강력한 투쟁력을 약화시킬 의도로 강행된 원하청 사용주들의 치밀한 계획의 소산이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선봉에 선 티브로드 노조에 대한 태광그룹 차원의 부당노동행위였던 것이다. 티브로드 지부는 줄기찬 노조 탄압으로 조합원 수가 많이 줄어들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 난국을 타개하며 마지막까지 싸워 해고자 전원 복직을 쟁취한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가뭄의 단 비처럼 짜릿한 승리다.

둘째, 임금을 동결하면서 해고자 전원 복직을 선택한 티브로드 지부 조합원들이 옳았다.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동료의 해고를 방관할 수는 없다. 언제 어떻게 내 목으로 날아들지 모르는 비수 아닌가. 민주노조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동료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흔쾌하게 받아안은 조합원들이 이번 투쟁 승리의 비결이다.

셋째, 원청인 티브로드가 외주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 안정을 위해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합의 내용은 특기할 만 하다. 원청사용자성을 부담스러워하며 합의문에 서명을 남기는 것을 꺼려해온 원청의 이전 행태와 확연하게 대비된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다른 사업장에선 꿈도 못 꿀 일이다. 희망연대노조 산하 케이블방송통신 지부들이 투쟁으로 다져온 성과 위에서 비로소 가능한 고용안정 합의였다. 티브로드 해고 노동자들의 단결투쟁이 가장 큰 동력이었음은 물론이다.

넷째, 노조 탄압으로 악명높은 태광그룹을 바로잡는 투쟁이었다. 흥국생명 정규직 정리해고에서부터 티브로드 간접고용 비정규직 대량해고에 이르기까지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을 부정하고 노조 활동을 사갈시해온 태광그룹에 맞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승리한 것이다. 파국으로 치달아온 노사관계 정상화와 함께 오너 일가의 불법적인 부당내부거래와 각종 비리를 시정하지 않고는 태광그룹의 앞날도 위태로울 수 밖에 없다. 이번 티브로드 비정규직 투쟁 승리는 태광그룹과 티브로드가 거듭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다섯째, 이전 상근자 수를 그대로 확보한 단체협약 갱신도 소중한 성과다. 정당한 요구를 내건 해고노동자들의 온몸을 바친 투쟁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조직 확대의 교두보를 사수했다는 의미가 크다. 부당한 노조 탄압으로 줄어든 조합원 수를 복구하고 늘려나가는 것이 이후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여섯째, 폭넓은 사회적 연대의 힘이 뒷받침된 투쟁이었다. 진짜사장재벌책임공동행동을 중심으로 지역과 부문의 단체들까지 망라해 정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껏 연대하고 지원했다. 2차례에 걸친 집단단식과 각종 기자회견과 면담투쟁, 집중투쟁문화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티브로드 비정규직 투쟁 승리에 힘을 보탰다. 투쟁이 장기화된 이후 급급하게 연대기구를 꾸리는 방식을 지양하고 투쟁의 시작부터 적극 결합해 역할한 것이 주효했다.

일곱째,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의 역할도 컸다. 투쟁보다 어려운 게 교섭이다. 특히 원청사용자의 결정이 핵심인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에선 더욱 그렇다. 원청사용자까지 포함한 다자간 합의를 중재한 을지로위원회가 있었기에 잘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취하' 아쉬워

가장 아쉬운 건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취하다. 합의가 노사간 타협의 산물인 만큼 원하는 걸 다 얻을 수도 없고 양보도 해야 한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취하는 노조도 조합원 토론을 거치며 고심이 컸던 사안이지만, 원청의 요구가 강했던 만큼 고용안정 요구와 맞바꿀 수 밖에 없었다. 불가피한 타협의 결과다.

이는 티브로드 지부와 희망연대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양산돼온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그대로 이어갔더라도 현실은 그닥 달라지지 않는다. 불법파견 확정 대법원 판결마저 무력화되는 기울어진 운동장인 우리나라에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은 원청의 정규직 지위를 확인받는 중요한 법적 수단이긴 하지만 대단히 제한적이다. 다만 노조가 소송 주체여서 다른 사업장에 미칠 영향이 있기 때문에 우려가 있는 것이다. 결국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이 관건이다.

해고자 전원 복직과 단협 갱신을 쟁취한 티브로드 지부는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향해 다시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은 취하해야 하지만 현장투쟁으로 애초 목표를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한다. 원청업체 정규직화가 달성되지 않는 한 매년 반복되는 해고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온전한 복직은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화라고 하는 보편적인 노동의 요구가 실현될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직접고용 정규직화 투쟁은 왜곡되고 뒤틀린 한국 노동시장을 바꾸는 큰 싸움이다. 티브로드 지부만으론 안된다. 케이블방송통신과 가전업계를 비롯한 기술서비스 노조들이 단결해 공동요구를 내걸고 투쟁해야 한다. 희망연대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공동투쟁본부를 꾸린 이유 아닌가. 재벌대기업이 만든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아래로부터 혁파하는 대한민국 정상화 투쟁이기에 일점돌파 결의로 힘을 모아나가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올해 티브로드 비정규직 투쟁 승리는 이후 직접고용 정규직화 투쟁이 결실을 맺을 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당면해선 조직 확대가 가장 중요한 과제다. 노조는 쪽수가 무기인 대중조직이다. 이번 투쟁의 성과가 현장 조직 확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금방 의미도 반감된다. 과반수 노동자를 조직하는 건 복수노조 시대 절체절명의 과제이기도 하다. 원하청사용자들의 협공에 맞서기 위해선 더욱 조직 확대를 최우선으로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티브로드 정규직 노조 조직강화와 확대도 중요하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조가 긴밀하게 공조해야 현장을 살맛나는 일터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원하청사용자들에게 당부드린다

원하청사용자들에게 당부드린다. 노사관계의 기본은 신의성실의 원칙으로 합의를 이행하는 것이다. 합의를 잘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여러 차례 경험했겠지만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힘을 더 가진 사용자가 합리적인 행태를 보일 때 노사관계가 안정화될 수 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는 기업의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소모적인 노동현장의 갈등과 내홍이 확대재생산되지 않도록 노조와 상호협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통을 감내하면서 오랜 시간을 노숙농성하다 복귀한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응당한 배려와 후속 조치도 필요하다. 정신적, 물질적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마땅함에도 노사합의를 받아들이고 현장으로 돌아간 해고노동자들이 이후 건강하고 평온한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입니다.



태그:#티브로드, #복직, #간접고용, #비정규직, #부당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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