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를 촉구하며 닷새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대표실에서 당직자가 건강을 걱정하며 혈압을 측정하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를 촉구하며 닷새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지난 9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대표실에서 당직자가 건강을 걱정하며 혈압을 측정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달 26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곡기를 끊었다. 그는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린 국회의장이 사과할 때까지 단식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당이 국정 감사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국회의장에 대해 막말을 내뱉고 출근길을 막아섰다. 낯선 광경이었다. 정치적 저항 수단이 마땅찮은 야당이 해오던 방식이었다.

무엇보다 낯설었던 것은 단식이라는 수단 그 자체였다. 목숨 걸고 제 뜻을 전달하겠다는 의지 자체는 낯설지 않다. 지금 이 순간도 숱하게 많은 사람이 그저 말 한마디 전하기 위해 굶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단식과 이정현 대표의 단식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북아일랜드 공화주의자 '바비 샌즈'의 죽음을 통해 그 차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단식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교도관들이 재소자를 구타하고 강제로 씻기는 장면. 영화 <헝거>의 한 장면. 바비 샌즈를 비롯한 공화주의자들은 단식에 이르는 과정에서 모든 자유를 빼앗긴다.

교도관들이 재소자를 구타하고 강제로 씻기는 장면. 영화 <헝거>의 한 장면. 바비 샌즈를 비롯한 공화주의자들은 단식에 이르는 과정에서 모든 자유를 빼앗긴다. ⓒ 오드(AUD)


바비 샌즈는 1981년 5월 5일 사망한 북아일랜드 공화주의자다. '(공화주의자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기 전에 단식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 66일 만이었다. 스물일곱 청년의 시체는 처참한 몰골이었다. 하루하루 죽어가는 제 몸을 보면서 단식을 이어가는 것은 보통의 각오로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바비 샌즈의 뒤를 이어 10명의 동료가 단식 후 사망했다.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다. 바비 샌즈를 비롯한 공화주의자들은 북아일랜드가 영국연합왕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아일랜드 공화국과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몇 세기 동안 이어진 영국 정부의 탄압으로 북아일랜드 가톨릭계 주민들이 차별받고 있으며 독립 말고는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공화파는 준군사조직 PIRA(Provisional Irish republican army)를 중심으로 무장 투쟁을 불사했다. 영국이 이주시킨 주민들도 '얼스터 의용대'를 조직하여 여기에 맞서면서 죽고 죽이는 테러가 빈발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법적 절차도 제대로 밟지 않고 공화파를 대대적으로 체포했고 바비 샌즈도 이때 체포되어 14년 형을 선고받는다.

 정치적 의사 표현으로서의 단식은 본래 약자의 언어였다. 그러나 이정현 대표는 이 단식을 모욕했다.

정치적 의사 표현으로서의 단식은 본래 약자의 언어였다. 그러나 이정현 대표는 이 단식을 모욕했다. ⓒ 오드(AUD)


바비 샌즈를 비롯한 공화파는 HM(Her Majesty)메이즈 교도소에 집단 갇혔다. 자유로운 삶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친 그들이 오히려 더욱 엄격한 통제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공화파 재소자들은 교도소 내부에서도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정치범 지위를 요구하며 일반 재소자들과 다른 처우를 요구했다.

죄수복을 입지 않고 노역을 하지 않겠다는 등 네 가지 요구사항이었는데 사소해 보이는 이 요구사항은 상징성이 더 컸다. 요구사항대로 정치범 신분인 '특수범주지위'가 부여되면 이들의 테러 행위는 목적 없는 범죄 행위가 아니라, 독립이라는 정치적 요구사항을 쟁취하기 위한 행위라는 사실에 설득력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공화파는 이를 관철하려는 방법으로 죄수복을 벗고 모포 한 벌만 두르고 생활한다. 또한, 샤워를 거부하고 배설물을 아무렇게나 흘려보냈다. 이른바 '모포 투쟁'과 '불결 투쟁'이다. 사회에서는 물론 감옥에서도 모든 자유를 박탈당한 그들에게 이제 남은 투쟁의 장은 적나라한 몸뚱어리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 대신 재소자들을 구타하여 무력화시킨 후 감방에서 끌어내고 감방 안의 배설물들을 '물대포'로 깨끗하게 씻어낸다. 구타로 기진맥진한 재소자들의 몸은 짐승을 씻기듯 씻었다. 감방 안의 '질서'는 회복됐지만, 재소자들은 맨몸으로 하는 저항 수단마저 빼앗긴다.

단식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이제 재소자들의 자유는 '목구멍을 여닫는 것' 정도로 최소화된다. 강제 급식을 하지 않는 한 재소자들의 선택권을 빼앗을 수 없다. 결국, 바비 샌즈가 중단 없이 단식을 이어간 것은 무모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 말고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식은 몸의 정치다

 바비 샌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헝거>의 한 장면. 단식으로 마른 몸은 '권력이 입힌 상처'를 담아낸다.

바비 샌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헝거>의 한 장면. 단식으로 마른 몸은 '권력이 입힌 상처'를 담아낸다. ⓒ 오드(AUD)


1970년대 북아일랜드의 감옥에서만 일어난 일일까. 아니다. 바비 샌즈와 재소자들의 이야기를 영화 <헝거>에 옮긴 스티브 맥퀸 감독은 몸이 점차 정치의 장으로 변해가는 현상에 주목했다. 약자들이 일체의 저항 수단을 박탈당하고 권력 앞에 적나라한 몸뚱어리 하나만으로 맞서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단식은 몸의 정치다. 그러나 정치 밖의 정치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정치다.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권력이 약자를 핍박할 때 마지막으로 숨어드는 투쟁의 장인 것이다. 따라서 단식에 앞세우는 다양한 요구사항은 결국 '약자를 밖으로 내몬 잘못된 정치를 복원하라.'는 것으로 치환되는 경우가 많다.

권력에 억압받아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게 된 정치인도 여기에 기댈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단식은 '정치로 할 수 있는 게 더는 없다.'는 고백이다. 정치의 주요 구성원인 정치인이 정치에서 내몰릴 만큼 강력한 권력의 억압과 핍박이 있었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단식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28일 오전 김재수 농림축산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항의와 정세균 의장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을 3일째 이어가고 있다. 이대표는 단식을 하면서 불면과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9월 28일 오전 김재수 농림축산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항의와 정세균 의장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을 3일째 이어가고 있다. 이대표는 단식을 하면서 불면과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 이희훈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정치에서 내몰렸나. 아니다. 그들은 능동적으로 정치의 영역에서 뛰쳐나왔다. 국감을 거부하고 의사 협의를 거부했다. '전쟁이 나더라도 국방위원회는 열겠다.'는 국방위원회 위원장(김영우 새누리당 의원)을 감금할 정도였으니 가히 '정당의 단식'이라 부를 만큼 온몸을 내던져 정치를 중단시켰다.

오히려 단식은 이들이 '국가를 멈출 만큼' 강한 권력 그 자체라는 사실을 입증할 뿐이었다. 새누리당은 주요 상임위원장직을 여전히 차지하고 있으며 본회의에서도 새누리당 단독으로도 야3당을 저지할 수 있다. 또한, 국민의당과의 공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을 고립시킬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국회를 무력화할 수 있는 청와대와 교감하고 있다.

그런데도 단식을 강행한 결과 이정현 대표는 몇 가지 정략적 목표를 달성했다. 장관 해임 건의안과 K스포츠·미르 재단 의혹으로 궁지에 몰려있던 청와대는 숨 돌릴 틈이 생겼다. 내년 대선을 향한 기 싸움에 돌입하기에 앞서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적절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그의 단식은 권력에 내몰린 결과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었던 셈이다.

바비 샌즈에게도 선택의 자유가 있었을까. 그가 죽자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그가 선택한 삶이다. (IRA 테러) 희생자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던 선택"이라며 그의 죽음을 평가 절하했다. 바비 샌즈는 범법자일 뿐이며, 단식 또한 그의 선택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대처는 권력에 내몰린 불가피한 단식만이 설득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바비 샌즈의 죽음이 병리학 보고서에 '자발적 기아'로 기록된 것도 같은 이치다. '자발적'이라는 단어는 바비 샌즈가 죽음을 거부할 자유 그리고 '삶의 방향'을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영국의 권력이 바비 샌즈를 비롯한 공화주의자들을 극한 상황으로 내몰았다는 맥락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에 바비 샌즈의 유가족들은 항의 끝에 병리학 보고서에서 '자발적'이라는 단어를 지웠다. 부검이나 법의학 수사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바비 샌즈를 둘러싼 차별적 환경과 그를 감옥으로 밀어 넣었던 권력이 엄연했기 때문이다. 바비 샌즈가 이미 옥중에서 영국 하원의원에 당선될 만큼 '그가 내몰려 죽었다'는 시민들의 공감대도 높았다.

이정현 대표가 단식의 정치적 의미를 이해했다면...

"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 손 닿게 하고 싶지 않다' 28일 오후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강제부검 영장을 법원이 발부한 가운데 고인의 유가족과 투쟁본부측은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딸인 백도라지씨는 “경찰의 손에 돌아가신 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의 손이 절대로 닿게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고인의 부인과 딸 백민주화, 백도라지씨가 묵념을 하고 있다.

▲ "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 손 닿게 하고 싶지 않다' 지난 9월 28일 오후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강제부검 영장을 법원이 발부한 가운데 고인의 유가족과 투쟁본부측은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딸인 백도라지씨는 “경찰의 손에 돌아가신 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의 손이 절대로 닿게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고인의 부인과 딸 백민주화, 백도라지씨가 묵념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단식의 정치적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저 굶기만 했다. 굶는 행위 그 자체만큼이나 '내몰린 맥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여당 대표가 단식에 나서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알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가 단식을 시작하기 하루 전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을 대하는 새누리당의 태도 또한 달랐을 것이다.

고 백남기 농민은 권력에 내몰려 사망했다. 농민으로서 그의 지위는 쌀값 폭락과 함께 무너졌으며, 그가 가진 유권자의 힘은 공약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에 의해 강탈당했다. 모든 선택권을 빼앗기고 내몰릴 대로 내몰린 그의 맨몸마저 물대포가 짓밟았을 때 그의 몸에는 이미 권력의 철권에 무자비하게 유린당한 상처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집회의 불법성을 부각하거나 고 백남기 농민의 병사 가능성을 제기하고 심지어 이른바 '빨간 우의' 시위자의 구타를 지적했다. 이정현 대표의 단식이 정말 절박했다면, 국회의장의 권력에 내몰릴 대로 내몰려 단식 말고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고 백남기 농민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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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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