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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 기존에는 '제주 이주 후 자영업 창업'이 대세였다. 하지만 요새는 '셰어'(공유)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야기 하나] 제주 이주자들은 어떤 성격을 지녔을까

얼마 전 모 커뮤니티 누리집에서 인간관계에 대해 흥미롭게 정의해놓은 글을 발견했다(익명으로 작성됐기에 원작자를 밝힐 수 없음을 양해 부탁드린다).

요약하면 사람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두 가지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서 조금씩 접근 수위를 높여가는 타입을 A그룹으로 정의했다. 예를 들면 처음 만난 사이라 해도 상대방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으면 점점 더 깊게 접근해가며 순식간에 말도 트고 호형호제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흔히 만나게 되는 외향적이고 분위기 주도적인 사람들이 주로 이 부류에 속하는 듯하다.

이와 상반되는 B그룹으로는 마음속으로 자신만의 선을 정해놓고 다른 상대방을 대하는 사람들이라 정의했다. 이 사람들은 전자의 경우처럼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행동 수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선을 정해놓고 그 틀 안에서만 움직이곤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그룹의 경우 다른 사람이 자신을 건드려도 웬만해서는 양보하고 반응하지 않다가 자신이 정한 선을 넘어서는 순간 아예 그 사람과의 관계 자체를 끊어버린다는 점이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A그룹의 사람과 B그룹의 사람이 만나면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진다. 편의를 위해 A와 B로 칭하자.

A가 평소 하던 대로 조금씩 말과 행동 수위를 높이면서 접근해오면 B는 자신이 정해놓은 선을 넘어오기 전까지는 양보하고 긍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문제는 이런 B의 양보와 무언의 침묵을 A는 계속 접근해도 된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여 점점 더 수위를 높이다가 결국 B가 정해놓은 선을 넘어서게 된다는 점이다.

그 순간 B는 A와 인간관계 자체를 끊어버린다. 심한 경우에는 A와 관련된 모든 그룹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상대방이 계속 양보하고 받아주기에 그것을 긍정적인 시그널로 받아들이던 A의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인 셈이다.

결국 인간관계에 있어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사람들과, 자신만의 선을 정해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절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인데 인간관계에 있어 자꾸만 트러블이 발생하는 사람들이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다.

그래서였구나. 내가 그토록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힘들었던 이유는. 이제는 다시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남산의 벚꽃을 보며 그 시절을 더듬어본다
 그래서였구나. 내가 그토록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힘들었던 이유는. 이제는 다시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남산의 벚꽃을 보며 그 시절을 더듬어본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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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더더욱 마음에 와 닿았던 이유는 제주 이주 후 만난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B그룹에 속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랬다. 도시를 떠나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신만의 선을 정해놓고 살아가는 타입에 속해 있었다. 굳이 도시와 시골을 구별할 이유는 없으나 A그룹에 속하는 이들에게는 도시가, B그룹에 속하는 이들에게는 한적한 시골이 더 어울린다는 비공식 통계가 성립된 셈이다.

이제 막 제주로 이주해온, 혹은 제주 이주를 준비 중인 사람들이라면 이런 이주민들의 특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A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 이주민 모임 등에 참석해서 평소 하던 대로 사람들의 호구조사를 하고 순식간에 호형호제하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걸 자주 봤다. 문제는 이런 일이 계속되면 그룹에서 A가 왕따가 되거나, 혹은 아예 모임이 깨지는 것으로 결론을 난다는 사실이다.

명심하자. 예외는 있지만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 특히 젊은 층은 B그룹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만약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면 그들이 정해놓은 선을 넘어서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야기 둘] 제주 이주의 경향이 변하고 있다

지역에서 활동중인 젊은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한 마을 행사가 활성화되고 있다. 최근 이주민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송당리에서 열린 문화행사 포스터
 지역에서 활동중인 젊은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한 마을 행사가 활성화되고 있다. 최근 이주민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송당리에서 열린 문화행사 포스터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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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제주도의 부동산 시세는 지난 몇 년간, 특히 제2공항이 발표된 2015년을 기점으로 엄청난 상승폭을 기록했다. 단독주택과 아파트, 상가, 토지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시세가 상승하다 보니 기존에 흔히 봐오던 제주 이주 후 자영업 창업이라는 이주 패턴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서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집값과 상가 임대료가 동시에 오르다 보니 예전처럼 적은 자본을 갖고 제주로 이주해 자영업에 뛰어든다는 게 녹록지 않은 일이 된 것이다.

오름의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내가 왜 제주에 왔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오름의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내가 왜 제주에 왔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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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평당 2000만 원을 훌쩍 넘어 서울 집값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노형동, 연동 등 특정 지역을 제외하더라도 제주 동 지역 기준 평당 1000만 원 정도가 빌라와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매매·분양 하한선이다. 제주시에서 좀 더 벗어난 읍면 지역이라면 아직 800~900만 원대도 찾을 수 있긴 하다.

국민주택 규모인 25평에서 30평 정도의 공동주택을 매입하기 위해서는 3억 원 내외의 자금이 필요한 셈이다. 매매가 아닌 임대로 방향을 돌릴 경우 3억 원 내외 공동주택의 임대료는 평균 보증금 1000만 원에 년세(1년 월세를 한 번에 지불하는 금액) 900만 원 내외, 읍면 지역은 700~800만 원 선이다.

상가 임대료는 어떨까. 상권에 따라 천차만별인 권리금은 논외로 하더라도 15평 내외 신축 상가나 사무실의 임대료는 제주 동지역의 경우 보증금 1000만 원에 년세 1000만 원 내외이며, 읍면 지역의 경우 년세가 700~900만 원으로 조금 낮아지는 정도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예전처럼 서울의 전세집을 정리해서 제주에 집도 사고 가게도 얻던 시절은 지나갔다는 얘기다. 매매가와 임대료가 서울만큼은 아니더라도 수도권 지역의 평균값에 근접한 현 상황을 생각하면 이제 제주로 이주하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훨씬 치열한 고민과 옥석을 골라내는 과정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길을 가다 보면, 혹은 생활정보지나 제주 부동산 관련 카페를 보면, 초보 이주민들을 노리는 거품이 잔뜩 낀 매물들이 넘쳐나고 있다. 예를 들어 제주시를 한참 벗어난 읍면 지역의 논밭 한가운데에 빌라 몇 동을 지어놓고 '한라산뷰 최상의 투자입지'라고 광고하며 평당 1000만 원 이상의 분양가를 책정한 경우가 있다. 제주도는 그 자체가 한라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한라산이 내다보이지 않는 집을 찾는 게 더 어렵다.

아무런 기반 인프라도 없는 산속에 공동주택과 상가를 지어놓고 그럴듯한 광고와 행사 개최로 거품을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자칫 그 화려한 외관과 홍보에 깜빡 속아 입주를 결정하게 될 수도 있으나, 한 발 물러서 다시 생각해보면 주변에 아무런 인프라도 없는 데다 도대체 여기 누가 찾아올까 싶을 정도의 산 속에 집을 얻고 가게를 얻는다는 건 보통의 간담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서귀포 지역을 중심으로 개발이 계속되고 있는 헬스·교육·관광 등을 중심으로 하는 특화 도시에 대한 투자도 이제는 신중해야 한다. 이미 호재가 모두 반영돼 매매가가 오를 대로 오른 상황이기에 이제 와서 뛰어드는 것은 늦은 감이 있을 뿐더러, 대부분 중국 자본을 기반으로 하고 기에 만에 하나 이들이 철수할 경우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가진 것 없는 이,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한 젊은 이 모두에게 열려 있던 제주의 넉넉한 품이 일몰처럼 지고 있음에 안타깝다.
 가진 것 없는 이,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한 젊은 이 모두에게 열려 있던 제주의 넉넉한 품이 일몰처럼 지고 있음에 안타깝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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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셋] 부동산 악재에도 해답을 찾는 노력은 계속된다

이런 악재에도 제주로의 이주 열풍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매월 순증(전입자에서 전출자를 뺀 숫자) 인구가 1000명을 넘기고 있어 조만간 65만 명을 돌파해 70만 명을 향해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이주 여건의 악화에도 그 숫자가 줄어들지 않는 데는 기존에 정형화됐던 이주 형태를 뛰어넘는 새로운 문화가 보안책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젊은 이주민들을 중심으로 한 셰어 문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자본의 많고 적음을 떠나 부동산을 '소유'보다는 '사용'의 대상으로 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싱글족의 비율이 증가함에 따라 제주의 주거 형태와 자영업 형태도 변하고 있다.

비싼 임대료를 혼자 감당하기보다는 함께 생활할 이를 찾아 나누는 임차인이 지속적으로 늘어나자 시장이 반응했다. 임차인이 주도하는 셰어하우스가 아닌 처음부터 셰어를 기반으로 하는 전문 셰어하우스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주로 넓은 평수의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을 개조한 집을 이용해 방 개수에 따라 여러 명의 임차인을 모집한다. 최근에는 아예 설계 단계에서부터 셰어를 목적으로 한 신축 건물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집값의 상승과는 별도로 초등학교를 살리기 위한 마을 차원의 임대주택 지원사업이 진행중인 곳도 있다.
 집값의 상승과는 별도로 초등학교를 살리기 위한 마을 차원의 임대주택 지원사업이 진행중인 곳도 있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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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임대료에 대한 부담은 차지하더라도 점포와 상권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셰어 상점이 활용되고 있다. 하나의 상점에 판매 물품이 매일 변경되는 요일 가게 형태로 운영하며 서로 간의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는 식이다.

애월읍 수산리에 있는 '서쪽의요일가게'와 구좌읍 세화리 벨롱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모임인 '어쩌다여기가요일가게'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공간에서는 일주일 간격으로 매일 바뀌는 가게 주인에 따라 핸드메이드 제품 제작 및 판매, 제작 강의, 바이올린과 미술 교습, 문화토론, 인문학 강의 등의 다양한 활동이 이뤄진다. 365일 24시간 상시로 열려있는 공간이 필요하지 않은 자영업자들과 예술가들이 한 공간을 공유하며 그 장소 자체의 희소성과 가치를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제주 구옥을 개조한 (위)애월의 ‘서쪽의요일가게’, (아래)세화의 ‘어쩌다요일가게’
 제주 구옥을 개조한 (위)애월의 ‘서쪽의요일가게’, (아래)세화의 ‘어쩌다요일가게’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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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대와 대학로, 서촌, 북촌 등에서 이미 경험했듯 낙후된 지역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되살리려는 젊은층의 노력은 결국 뒤늦게 뛰어든 자본의 위력에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끝맺음하고 말았다. 제주 역시 초창기 소자본과 아이디어로 창업한 특색 있는 가게들이 하나둘 밀려나고 그 자리를 대형 프랜차이즈 상점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전조 현상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투박하지만 정감 있고 개성 넘치는 제주의 상점들
 투박하지만 정감 있고 개성 넘치는 제주의 상점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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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소 늦은 감이 있으나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공공주택의 보급과, 젊은 예술인과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한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 등의 여러 가지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부디 서울에서 벌어진 그 일들이 제주에서 되풀이되지 않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태그:#제주 이주, #젠트리피케이션, #부동산, #제주 집값,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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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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