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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국회 교문위 국감에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부의 문화예술인 9437명의 블랙리스트 문건을 폭로해 충격을 주었다. 이 문건에서는 세월호 참사 등에 관해 정부를 비판한 문화인, 문재인 박원순 등 야권 잠룡으로 불리는 대선 주자를 지지 선언을 한 사람들이 거론됐다.

이에 문화 예술인은 즉각 반발했다. 이들은 지난 18일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블랙리스트를 '학살 예비자 명단'으로 규정했다. 또한 "군사정권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사안에 관해 좀 더 자세히 듣고자 기자회견에 참여했던 연극인 고건령씨와 김지영씨를 기자회견 직후 만났다. 다음은 고건령, 김지영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연극인 김지영씨(왼쪽)와 고건령씨(오른쪽)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극인 김지영씨(왼쪽)와 고건령씨(오른쪽)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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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예술인 9437의 블랙리스트가 알려지면서 큰 충격을 주는데 어떻게 보고 계세요?
고건령 씨(이하 고) : "일종의 코미디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적 퇴행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를 운영해 나가는 주체들이 말도 안 되는 사고와 행동을 한다는 게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위들이 결국에는 우리나라 전반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는 것을 누누이 봐 와서 앞으로 그 문제점에 대해 끝까지 놓지 않고 싸울 생각입니다."

김지영 씨(이하 김) :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유가 우습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세월호 관련 선언과 운동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또 하나는 박원순, 문재인 등 야권 후보 지지 선언한 사람들인데요. 조금 전 기자회견에서 말한 것처럼 예술인들도 한 사람의 국민으로 자기 의견을 낼 수 있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건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잘못한 것에 대해 잘못했다고 얘기했더니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어저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일 수 있는 건지 몰라요. 세월호 문제만 해도 65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서명운동도 했는데. '그렇다면 국민 중 약 10분의 1이 블랙리스트냐'는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이러다가 국민을 블랙리스트로 만드는 그들이 블랙리스트로 퇴출당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정부는 알아야 하죠.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다가 큰코 다친다고 생각합니다."

- 블랙리스트가 처음 알려졌을 때 어떠셨어요?
김 :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게 터졌다고 보는데, 기준 자체가 너무나 어처구니 없어요. 예전에 '국민 보도연맹'이 있었잖아요. 해방 후 시기 실적 올리기식으로 사상전향자랍시고 명단을 받아서 한국전쟁 전 무작위로 제거했던 사건이 생각나요. 지금도 남북이 갈라져 있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데 제가 '블랙리스트' 한국어로 번역하면 '학살 예비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고 생각하니 대단히 분노스럽고. 시대가 해방 후로 돌아간 느낌이고 '지금까지 우리가 만든 민주주의 역사는 뭔가'란 분노가 올라오더라고요."

고 : "저는 조금 생각이 다른 게 당연히 명단에 있을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굉장히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 그대로 21세기에 걸맞지 않은 후진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이 나라의 위정자로 행세한다는 게 너무 기가 막히고 한편으론 화가 나요. 이런 유아적 발상으로 국민을 억압하려는 발상 자체가 수준 이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문제는 뭐냐면, 언론이 편향되어 있다 보니 가끔 유치한 발상이나 말도 안 되는 억지들이 국민에게 혼란을 일으키고 본질이 왜곡되는 경우를 보잖아요. 가소롭고 어이없고 코미디 같지만, 어쨌든 이 사안의 문제점을 드러내서 해결될 때까지 짚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블랙리스트에 대해 보도되기 전 연극인 내부에서 얘기나 있었나요?
김 : "미루어 짐작도 했고 연극계에서는 예전에는 등록해서 지원받던 곳이 지원이 안 되는 상황도 있었어요. 실제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연극 공연 자체를 방해받거나 지원작에 당선되어도 '작품을 고쳤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등 검열의 사례가 있었죠. 이러한 부당함에 저항하는 예술인들이 '권리장전 검열각하'라는 제목의 검열 페스티벌로 공연을 지금도 계속하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구체적인 명단으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죠."

- 2010년에도 블랙리스트 논란이 있었어요. 그때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고 : "그때는 연극계 지원금 1/3이 잘려나가다가 나중에는 더 잘려나가는 등 지원금 자체가 굉장히 축소됐었죠. 하지만 '검열'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견제를 한 정도였죠. 이명박 정부는 문화예술을 무시하고 견제하는 정도였다면, 박근혜 정부는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입맛에 맞게 교정하려 드는 지경에 이른 것 같습니다."

"블랙리스트 명단, 불온한 의도 의심하게 한다"

연극인 고건령씨
 연극인 고건령씨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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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와 새누리당은 블랙리스트에 대해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해요.
고 : "옛날 속담을 맹신하진 않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안 난다'는 건 진리인 것 같아요. 세상에 비밀은 없죠. 물론 이름을 어설프게 복사해서 붙인 수준이지만 이름이 나와 있고 분야가 분류되었다는 건 누군가가 모았다는 거잖아요. 누가 왜 취합을 했느냐가 문제 되는 거죠. 좋은 의도로 취합했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만약 좋은 의도로 취합했다면 자신들이 더 당당하게 밝힐 텐데, 덮어 놓고 아니라고만 부정하는 건 이미 그 대응 자체가 이 명단이 가진 뭔가 불온한 저의를 의심하게 하지 않나요? 그래서 다 헛소리라고 생각해요."

- '명단에 자기 이름이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현실이 씁쓸해요.
고 : "전 '세월호 광장'이 생기기 전부터 여기에서 1인 시위도 했어요. 연극인들은 마로니에 촛불이라고 해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를 이어가고 있죠. 사실 연극이라는 게 사회의 등불 내지는 거울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사안들에 대해서 굉장히 열심히 참여하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없으면 뭐랄까, 좀 서운하달까? 그렇죠. 그러나 이게 사실 반어법인 거죠. '악의적 블랙리스트'에 내 이름이 안 올라 서운하다는 자체는 이 시대가 그만큼 일그러져 있다는 걸 방증하는 것 아닐까요?"

- 만든 목적이 뭘까요?
고 : "발악이죠. 지금 박근혜 정권이 계속 헛발질을 하면서 레임덕이 오고 콘크리트로 비유되던 지지율이 26%로 떨어지고 있죠. 이런 과정에서 백승주 의원이 1년 전에 했던 김제동씨의 발언을 문제 삼아 국감에서 이슈로 만들고요. 그러면서 우병우 문제 등 대응하기 곤란한 여러 사안에 물타기를 했잖아요. 자기들 나름대로는 소기의 성과를 얻은 거죠.

이 사람들은 뭔가 정권이 밝히기 어려운 일이나 정부의 잘못이 있는 사안들이 발생할 때마다 그걸 덮기 위해 종종 활용했던 게 연예계인데 거기도 크게는 문화예술계잖아요. 다만 연예계 사건은 너무 많이 써먹어서 이미 식상한 국민들에게 어필이 안 되다 보니 좀 더 폭발력 있는 물타기 소재를 기획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 지금 정부가 미로재단 등으로 코너에 몰려 있죠. 그러니 국면전환 혹은 물타기를 하려고 누군가 흘린 건 아닐까요?
고 : "제가 말씀드린 게 비슷한 맥락이죠. 그런 부분도 있다고 봐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걸 국면전환용으로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죠. 사실 우리나라에서 문화예술을 죽이거나 압박한다고 해서 문화예술이 권력자를 편들어준 역사가 거의 없는데요. 자기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문화예술인을 길들이겠다' 그런 건 아닐 것 같아요.

뭔가 국면 전환을 하고 떨어지는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고 싶은 차원에서 희생양이나 방패가 필요하기도 했을 거고요. 아마 이런 사안을 자꾸 만들어 냄으로써 본질적인 문제나 중차대한 문제를 가리고 가자는 측면도 있었겠죠."

"나라 걱정 안 하고 예술만 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연극인 김지영씨
 연극인 김지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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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예술인은 누구보다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그 속에서 작품이 나오는데 블랙리스트로 제약이 생겼을 것 같아요.
고 : "제 생각엔 제약은 전혀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때리면 더 강해지고 더 커집니다. 제가 생각할 땐 앞으로 블랙리스트나 박근혜 정부 실정 부분 또는 한발 더 나아가서 우리 국가 존립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등의 현실을 반영하는 연극이나 예술 행위가 훨씬 많이 나올 것 같아요."

김 : "예술가들이 기본적으로 가장 진실되고 순수해요. 세상을 직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면 예술하기 힘들죠. 때문에 진실되고 순수한 시선 앞에서 오히려 더 분노했으면 했지, 주저하진 않아요. 마로니에 촛불을 하는 연극인 선배님 한 분이 정말 연극만 하며 살고 싶다고 한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오죽하면 예술인들이 나서겠어요. 정말 나라 걱정 안 하고 예술만 하며 살 수 있게 상식적인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그래도 자기검열 같은 게 생기진 않을까요?
고 :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쪽 계통의 사람들은 일반적인 성향과 좀 다릅니다. 때리면 움츠러들어서 자기 검열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해요. 사회적 욕구와 전혀 상반된 일을 오랜 세월 동안 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나 삶의 방식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이죠. 물론 일부 소수는 자기검열 할 수도 있죠. 그러나 대다수 문화예술인은 분명히 더 저항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오늘 기자회견을 하셨는데 앞으로 예술인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세요?
김 : "사드를 놓으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저항해야 살 수 있어요. 세월호 문제만 봐도 그걸 너무나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해요. 블랙리스트 명단에 들었으니 숨죽이며 사는 게 아니라 저항하고 행동해야 예술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번 사건은 단순히 예술가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봐요.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독재정권 끄트머리에서 하는 게 예술가들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보거든요. 이 정부가 끝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예술가들에게도 이 정도로 탄압이 미친다면 전 사회적으로 얼마나 많은 탄압과 독재가 자행되고 있는걸까 상상이 안 돼요. 정황을 봤을 때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들고 일어나서 박근혜 정부가 끝나지 않으면 국민이 죽는 상황이라고 봐요. 그렇게까지 만드는 심각한 상황이죠."

고 : "저는 사실 예술이 담당해야 할 분야가 사회 전면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내적인 부분들에 대해 고민하는 게 예술의 자리라 보지만 그건 시대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이 시대에는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최대한 사회참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안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세월호 참사, 구의역 사고 등 벌어진 건 한둘이 아니지만 해결된 게 하나도 없잖아요. 그런데 각각의 사안들이 해결이 안 되면 서로 연대하고 결합되어 좀 더 큰 힘으로 작동이 되면 세상을 바꾸는 데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거든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문화예술이 그 중간에서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각 사안의 당사자들 또는 거기에 관심 있는 시민을 한 자리에 모아낼 수 있는 접착제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태그:#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고건령, #김지영, #예술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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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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