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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터미널
 고속버스터미널
ⓒ 변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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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을 방불케하는 추위에서 벗어난 오늘.
경북 문경에 다녀왔다.

버스로 이동을 하다보니,
시간이 애매해 편의점 빵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신흥시장(5일장으로 3, 8일 장이다. 오늘은 장날이 아니었다)에 들렀다가
인정 넘치는 한 가게를 만났다.

* 문경의 시장


문경에는
365일 상시 열리는 중앙시장과
5일장인 신흥(흥덕)시장이 있다.


팥을 직접 쑤고 있다
 팥을 직접 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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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네 옛날 찐빵

이름마저 푸근함이 넘친다.
옛날 느낌이 나는 꾸미지 않은 이름인데다,
인터넷에 검색해도 주소를 찾아볼 수 없다.

장날이 아니다보니 문 연 곳도 적고
버스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배고픔에 허덕이며 찾아온 이 곳.

우리는 아무생각없이 김치만두, 고기만두 1인분씩을 시켰다.
1인분에 3천원.
1인분에 10개나 되니 가격이 비싸지 않다.

'따뜻하게 찌고 있으니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씀과
솥 앞으로 떠난 사모님.

투박한 가게 내부.
 투박한 가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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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가게를 둘러본다.
손으로 끄적끄적 적어낸 원산지 표시는 시선을 강탈한다.
잘 안 보이지만, 당면과 밀가루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국내산이다.

어느새 주문한 메뉴가 나왔고,
만두를 먹으며 느낀 건
'참 투박하다' 였다.

어린 나이에 '옛 맛이 그립다'는 말은
다소 어색할 수 있지만,
외할머니가 매년 보내주시던 손만두가 생각났다.

조미료를 내친 맛.
외할머니의 음식은 모두 담백하고 정겹다.

먹다가 찍힌 만두와, 함께 내준 군고구마
 먹다가 찍힌 만두와, 함께 내준 군고구마
ⓒ 변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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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에 허겁지겁 먹어갈 때 쯤,
큰 솥에서 팥을 젓고 있는 주인아주머니가 보였다.
(배고파서 마구 먹다 보니 제대로 된 사진이 없다.)

- 팥 직접 쑤시는 거예요?
"손이 많이가긴 해도 그렇게 해요"

예전에 팥죽을 만들어보겠다고,
팥을 불리고 앙금을 만들었던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상기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처음이라 그런지 제대로 불지도 않았고
아무리 불려도, 딱딱한 게 남아 있어 제대로 쑤어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까딱 잘못하면 텁텁하기 그지 없고
괜히 단맛을 잘못 섞으면 따로 놀아버리기 그만이다.

생산자도 소비자도 편리함을 추구하는 요즘.
직접 팥을 쑤고 앙금을 만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찐빵도 시켰다.

3개에 고작 천원인데도 하나를 더 내어주셨다.
손땀으로 빚어낸 정성을 생각하면
제 돈 내고 먹기 미안한 가격이다.

역시 '투박하다'
온전히 부숴지지 않은 팥의 입자가 서덜서덜 씹히고,
입을 구르는 팥껍질과 함께 은은한 단 맛이 돈다.
은연중에 끓고 있는 팥 앙금에 찐빵을 찍어먹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고구마는 이웃집 사장님이 주신, 군고구마를 나눠주셨다 )

서울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찐빵은
그저 설탕 반, 팥 반인데 그마저도 입자가 아닌 '앙금'이다.
빙수 팥을 갈아넣었나 싶을 정도로 달고,
때론 '비비X'으로 만들었나 생각도 한다.

단 맛은
단시간에 혀를 주무르지만,
맛의 깊이는 손으로 살을 누르는 듯 얕다.

* 찐빵과 호빵


결론부터 말하면 찐빵은 찐빵이고, 호빵도 찐빵이다.
우스운 말이지만 사실이다. 찐빵 브랜드로 나온 것 중 하나가 '호빵'이다.
호빵이란 브랜드가 대중적으로 각인 돼, 찐빵의 전형이 됐는데
이게 너무도 당연해져 찐빵과 호빵이 마치 다른 것처럼 헷갈리곤 한다.

쉬운 예를 들어보면,
'대일밴드 주세요'
대일밴드는 상품의 카테고리(범주)가 아니다.
상처치료를 위한 밴드 중 '대일'이라는 브랜드의 제품일 뿐이다.
너무 익숙해서 저렇게 부르는 것 뿐.


반죽장소와 밀대.
 반죽장소와 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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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부르고 보니, 이제 가게 내부가 보인다.
고작 하나밖에 없는 테이블과 단무지와 간장뿐인 사이드.
어찌보면 기본에 충실하다 하겠다.

옆쪽에 밀대가 보인다.
만두피 또한 직접 만들어 쓰시나보다.
한동안 만두집에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최상의 소를 만들기 위해
구슬땀을 곁들이지만 만두피만큼은 사서 썼던 걸로 기억한다.
그 만큼 들어가는 손에 비해, 상품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손 맛'을 참 좋아한다.

"엄마 손 맛, 할머니 손 맛"

사실 손 맛이란 건 없다

그러나 손 맛은 짜지 않은 맛이다.
손 맛은 '손님(먹는 이)'을 생각해 만드는 마음의 맛이다.
혹여 먹는 이가 부담스러울까, 슴슴하게 간을 해 속 편히 먹으라는
작은 배려 말이다.

또한 손 맛의 핵심은, 손이 손(客)이 아닌 맛이다.
맛의 주인은 언제나 본재료여야 한다.
즉 주객이 전도되어선 안 된다.

요즘 대부분의 음식엔 손 맛이 없다

손이 몇 초 닿을 뿐, 손땀이 담기지 않는다.
기계의 녹이 맛을 바꾸고, 자본주의의 합성물이 맛을 더한다.
기계가 만든 음식에 정성이 담겨 있을까?

정작 손길이 담겨있지 않은 공산품에 언제까지
손 맛을 바랄텐가. 이런게 진짜 손 맛이다.

투박하지만, 다소 밍밍하지만.
뒷 여운이 깔끔하고 또 다시 생각나는 그런 음식.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또 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좋은 경험과 추억을 주신 내외분께 감사드립니다.



태그:#문경여행, #장가네 옛날찐빵, #만두, #찐빵, #손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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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글거리를 좋아하고 사람과 삶, 환경에 관심이 많습니다. (독립출판 저자, 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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