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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TV조선 개국 당시 <시사토크 판>.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2011년 12월 TV조선 개국 당시 <시사토크 판>.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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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자기 말을 번복하기가 그렇게도 어렵다. 말과 글로 먹고사는 기자라면, 언론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 정치인에게 '확신범'에 가까운 찬양을 보냈던 이라면, 자신의 말을 뒤집기가 얼마나 힘겨운지, 또 얼마나 더 논리 정연해야 하는지 스스로 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어도 5년 전, 한 유력 정치인에게 북한에서나 가능할 법한 찬양을 늘어놓은 그 언론인이라면.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

지난 2011년 12월, TV조선 개국 직후 <시사토크 판>에 출연한 <조선일보> 박은주 문화부장의 '워딩'이다. 마치 '아양을 떠는 듯한' 표정과 목소리로 개국 인터뷰이로 나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전 대표에게 바친 헌사를 TV조선 제작진은 무려 자막으로 깔았다. 이후 두고두고 회자되고 패러디된 박 부장의 이 헌사의 정확한 워딩은 "박 전 대표를 보면 빛이 난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형광등 100개쯤 켜신 거 같습니다"였다.

그리고 5년 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전 국민을 분노케 하는 와중에 "형광등 100개 아우라" 발언의 주인공도 숟가락을 얹었다. 29일자 <조선일보>의 "官製 봉준호 만들기'는 처음부터 이상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서다.

조선일보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의 칼럼.
 조선일보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의 칼럼.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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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감독이 우리에게는 왜 없는가"라는 보수층의 고민을 소개한 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게이트'와 '문화융성'을 보수 특유의 '관제문화'로 연결한다. 그런데 그 글이 꽤 장황하다. 심지어, 글 말미 "최순실 죄만도 아니다"라고 자백(?)했다. 

"이 정부의 '보수 콘텐츠 만들기'는 사람을 갈아치우고, 돈을 쏟아붓고, '우주의 기운'을 동원해도 결과가 영 신통찮다. 대중이 호응할 '보수의 진짜 가치'를 담는 콘텐츠 대신 기원(起源)이 묘한 결과물만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관제(官製) 문화 양성' 전략은 총체적 난국이 됐다. '관제문화'를 넋 놓고 받아들일 국민도 별로 없다.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길로 접어든 것은 결코 기이한 일도, 최순실 죄만도 아니다."

전여옥 칼럼에 인터뷰까지... 박근혜 두고 연일 '맹공'

29일 전여옥씨의 조선일보 인터뷰를 보도한 TV조선.
 29일 전여옥씨의 조선일보 인터뷰를 보도한 TV조선.
ⓒ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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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한복판에 종편인 JTBC와 TV조선이 '원투펀치'로 활약 중이다. 여기에 <한겨레> 신문을 능가하는 <조선일보>의 화력 역시 한몫을 하고 있다. 급기야 29일에는 과거 한나라당 시절 '베이비 토크' 운운하며 정치인 박근혜의 일면을 까발렸던 전여옥 전 한나라당 대변인의 칼럼을 실었다. 이미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이후 전여옥씨가 어떤 식으로든 발언을 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파다했던 터다.

"그러나 더 나쁜 사람들은 대한민국 정치인들이었다. 야당은 무능했고 새누리당 친박은 '참 나쁜 정치인'들이었다. 그들이 몰랐다고? 개와 소가 웃을 이야기이다.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친박들은 권력 나눔, 즉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약점 있는 대통령이라면 더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 마음껏 조종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국제회의에서 프롬프터를 보며 영어 연설에 몰두하는 '순수한' 여성 대통령을 바라보며 그들은 은밀한 웃음을 나눴을 것이다. 문고리 3인방하고만 통하면 되니 이 또한 얼마나 간편한가? '편의점 정치'였다. 정치와 연을 끊은 뒤에도 많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박근혜 정부 장관 노릇처럼 쉬운 게 없다."

"스위스 계좌설에 태연했던 朴대표… 10분 뒤 펄펄 뛰며 "野 고소하겠다"는 제목의 전씨 칼럼에는 '내가 모신 박근혜…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란 부제가 붙었다. 과거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시절 일화부터 유명한 '커터 칼 테러' 사건 뒷얘기까지, 전씨가 직접 겪고 기억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일가와의 관계나 정치권 반응들이 적혀 있다.

"저녁 6시가 되면 대통령은 관저로 들어간다. 대통령만 '저녁이 있는 삶'을 즐겼다. 모든 것은 보고서로 보고받았다. 장관은 전화만 잘 받으면 된다. 만날 일이 없으니 대기할 필요도 없다. 왜 박근혜 대통령은 대면 보고를 받지 않았을까? 답은 간단하다. 질문을 하려면 사안을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 특히 대면 보고는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받기만 하는 것이다. '불통의 정치'가 아니라 '수동태의 정치'였던 것이다. 그 와중에서 최순실씨는 박쥐처럼 동굴 속의 권력을 잡은 것이다.

모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다. 이원종 비서실장은 박근혜 대통령도 피해자라고 했다. 부모를 잃은 비극의 주인공이며 어린 처녀를 보쌈하듯 이용한 최씨 일가의 인질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그녀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그리고 65세이다. 내가 아는 대한민국의 65세 여성들은 그 어떤 남자보다도 용감했다. 독립적으로 삶을 개척했다. 동정을 구걸하지 않는다."

이 글에는 최순실씨나 정윤회씨와의 대면도 등장한다. 그러면서 전씨는 "모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다"라며 게이트 당사자들은 물론 친박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을 모조리 소환해 비판했다. 하지만 누가 한나라당 대변인 출신인 전 정치인이자 기자 출신이면서 <일본은 없다>의 표절 여부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이에게 이러한 비판의 칼날을 쥐여주는가.

<조선일보>는 이날 전씨의 인터뷰도 게재했다. "박근혜 대표 연설문, 모처 거치고 나면 '걸레'돼 오더라"는 선정적인 제목이 가히 <조선일보>답다. 인터뷰 내용 중 "박 대표 시절 비서실장은 유승민 의원이었다. 유 의원이 글을 잘 쓴다. 그런데 유 의원이 쓴 대표 연설문이 모처에 다녀오고 나면 걸레, 아니 개악이 되어 돌아왔다는 뜻이다"란 내용이 유독 눈길을 끈다.

전씨의 이러한 스탠스는 <조선일보>의 그것과 판박이처럼 닮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란 과거의 찬양은 싹 잊은 듯, 비판적인 칼럼을 쏟아내는 박은주 부본부장의 태세 전환도 다르지 않다. 지난 26일 '부끄럽다'라는 유례없는 제목의 사설을 쏟아낸 <조선일보>의 변화라 읽기엔 그 과거(?)가 너무 화려하지 않은가. 과거 보수(수구) 정권 창출과 유지에 일조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밤의 대통령'이라 불리던 <조선일보>는 반성도 없이 지금 어디로 가는가.

박 대통령에게 '부끄럽다'던 그 <조선일보>가 부끄럽다 

'하야'를 언급한 조선일보의 25일자 실용한자.
 '하야'를 언급한 조선일보의 25일자 실용한자.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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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맹공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5일, <조선일보>는 실용한자 코너에 '하야'(下野)란 단어를 등장시켜 눈길을 끌었고, 이튿날인 26일에는 '~로 교체되다'라는 뜻의 실용 일본어를 소개했다. '부끄럽다' 사설에서 볼 수 있듯, 탄핵보다는 실질적인 '하야' 쪽으로 박 대통령의 거취를 가늠한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된다.

"이제 헌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모든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이 시간 이후로 국내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선언하고 그 분명한 행동으로 여당을 탈당해야 한다. 내년 대선에 대해서는 관심을 버리고 중립적 관리 역할로 남을 것임을 천명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지금 모습으로 대선에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허망한 일이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폭로로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의 외유성 출장 파문이 일었던 것이 지난 8월 말이다. 이례적인 '청와대 vs <조선일보>'의 1차 라운드의 승자가 청와대였다면, TV조선이 연일 폭로하고 있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라는 2차 라운드의 패자가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의지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 와중에 <조선일보>는 대선 승리를 위한 자신들만의 가이드라인을 이미 확고히 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이미 "박 대통령은 국내 정치에서 완전히 벗어나 남은 1년간 북핵 위기 대처에만 전념하는 것이 옳다"며 "박 대통령이 최소한의 국민적 지지를 유지하고 임기를 끝낼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 없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 비서관들은 당장 전원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8일 오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정진석 원내 대표가 연이어 박 대통령과 회동을 가졌다. 그날 저녁, 박 대통령이 '문고리 3인방'을 포함 수석비서관들에게 일괄적으로 사표를 제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속보가 전해졌다.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은 박 대통령이 <조선일보>의 (내각 총사퇴를 제외한)가이드라인을 따를 것인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연일 이어지는 맹공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의 본질은 변치 않았다. '자사 이익'을 위한 보수 정권 유지 말이다. 이미 자사와 전쟁을 벌인 '박근혜 카드'는 버리고, 거국총리 임명을 주문하고 나섰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관장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천명했다. 야당을 향해서는 "과도한 정략은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압박하고 나섰고,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 대표는 26일 "탄핵과 하야 요구는 없을 것"이라는 취지로 부응(?)한 바 있다.

한마디로, <조선일보>는 이 국가적 위기의 책임 소재를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관련 인사들에게 '올인'해 묻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물론 <조선일보>(와 조중동, 그리고 종편)와 같은 보수수구 진영 전체에 쏟아지는 비판은 아랑곳 없이 말이다.

아마도, 조만간 <조선일보>가 보수정권 재창출을 위한 '필승전략'을 내놓을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는 제 손으로 꺼버렸어도, <조선일보>의 활약(?)은 계속된다.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뻔뻔함으로 무장하고선 말이다.


태그:#박근혜, #조선일보, #최순실, #형광등_100개_아우라, #전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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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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