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영화들은 대체로 제작국가에서 개봉 후 통상 1년 안에 국내에 개봉된다. 1년이 지나면 불법 영화파일들이 나돌고 초고속 인터넷을 자랑하는 국내 환경에선 사실상 극장수입을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은 할리우드 영화가 종종 세계 최초로 개봉하는 국가이다. 곧 개봉하는 <신비한 동물 사전>도 그런 케이스이다. 심지어 제작국가인 미국에서조차 개봉 못 한 영화가 국내에 개봉하는 사례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크리스 에반스와 미셸 모나한이 한복입고 출연해서 화제를 모았던 <타임 투 러브> (원제: Playing It Cool)와 네이버 영화 리뷰란을 초토화한 <맨 프롬 어스>(원제: Man from Earth)가 대표적이다. 오늘은 반대로 '최소 8년 이상'의 시간을 거쳐 올해 개봉한 3편의 걸작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하나] 2007년 새턴어워즈 최우수SF영화상 수상작 <칠드런 오브 맨>

 영화 <칠드런 오브 맨> 포스터.

영화 <칠드런 오브 맨> 포스터. ⓒ 영화사 마농(주)


첫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32회 새던어워즈 최우수 SF상을 수상한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이다. <칠드런 오브 맨>은 우리에겐 2013년 작 <그래비티>와 1998년 작 <위대한 유산>으로 유명한 알론소 쿠아론의 작품이다. 추리소설가 P.D. 제임스의 우울하고 절망적인 미래를 다루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는 아이도 없고, 미래도 없고, 희망도 없는 서기 2027년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더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재앙의 시대, 마지막으로 태어난 소년마저 18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인류는 절망에 빠진다. 폭력과 무정부주의에 휩싸인 런던은 광신적인 폭력주의자들이 장악한다. 한편 사회운동가 출신이지만 관료주의자로 변신한 테오(클라이브 오웬)에게 20년 전 헤어진 줄리안(줄리안 무어)이 찾아온다. 반정부단체의 리더가 된 그녀는 기적같이 임신한 흑인 소녀가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국외로 탈출하는 걸 도와달라고 테오에게 부탁한다. 영화는 결점투성이의 평범한 남자 테오도 사명감을 가지고 가담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027년이라는 미래적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영화는 2027년이 배경이지만 암울한 현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낸다. 그래서인지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최근 불임과 저출산으로 고통받고 있는 한국을 생각하면 더 걱정스럽게 느껴진다. 영화는 영국과 같은 유럽국가들의 이민정책을 매우 공격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아내고 있다.

영화가 내포한 메시지와 내러티브도 뛰어나지만 이 영화가 높이 평가 받았던 건 바로 촬영 기술 때문이었다. 감독은 현실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롱테이크로 촬영했는데, 막판 12분의 롱테이크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중반 테오 일행이 폭도들을 피하는 과정을 5분 가량의 롱테이크로 찍었는데, 기술적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는 6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기술 공헌상'을 비롯해 41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60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19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32회 LA 비평가 협회상에서 촬영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작품성에 비해 흥행성적이 좋질 못했다. 7600만 달러가 투여됐으나 전 세계 극장 수입이 7000만 달러에도 못 미치며 흥행에 참패하고 말았다. 올해 국내 개봉성적은 56개 관에 상영돼 19688명의 관객을 모았다. 당연히 이 영화는 2007년 DVD로 먼저 출시됐고 후에 블루레이로도 출시됐다. DVD와 블루레이 부가 영상을 통해 삭제신과 경이로운 롱테이크 촬영의 비밀 등을 알 수 있다.

[둘] 46년만에 개봉한 베르톨루치 감독의 걸작 <순응자>

 영화 <순응자> 포스터.

영화 <순응자> 포스터. ⓒ 영화사 백두대간


역사상 이런 영화가 또 있을까? 만들어진 지 자그마치 46년만인 2016년 1월에 국내개봉한 영화가 있으니 바로 이탈리아 영화 <순응자>이다. 60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무려 9개 부문을 수상한 <마지막 황제>의 명감독이며 '에바 그린'을 스타덤에 올린 <몽상가들>로 유명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작품이다. 이탈리아 문학의 거장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그가 만 29세 때 각색하여 만든 작품이다. 미국에선 보기 드물게 1970년 개봉했다가 무려 44년만인 2014년에 재개봉했다. 1972년 제6회 전미 비평가협회에서 감독상과 촬영상을 받했다.

로튼토마토 선정 세계 100대 영화, 토론토영화제 선정 세계 100대 영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선정 100대 영화,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편에 올라 있는 세계적인 작품이다.

<순응자>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정치적 주제를 즐겨 다루던 시절 파시즘의 본질을 건드린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영화이다. 1930년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배경으로 끔찍한 어린 시절을 보낸 한 남자가 평범하게 살기 위해 파시즘에 투신하고 결국 그것 때문에 파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세기 전 영화라곤 믿기 힘든 매혹적인 영상미와 탄탄한 스토리를 갖추고 있다.

영화는 2007년에 DVD로 먼저 출시됐다. DVD는 미국 개봉 당시 삭제된 '맹인들의 축하연'이 추가된 확장판으로 감독 베르톨루치와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와의 인터뷰 등이 수록돼있다. 영화는 전국 8개관을 통해 개봉했으며 총 5885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셋] 스티브 맥퀸감독의 데뷔작이 데뷔작 답지 않은 경이로운 데뷔작 <헝거>

 영화 <헝거> 포스터.

영화 <헝거> 포스터. ⓒ 오드


올 3월에 개봉한 <헝거>는 <노예 12년>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스티브 맥퀸 감독의 경이로운 데뷔작이다. 2008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제61회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았으며, 제62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칼 포맨상, 제65회 베니스영화제 구찌상을 비롯한 전 세계 30여 개 영화제 작품상을 휩쓴 작품이다. 또한, <헝거>에서 첫 주연을 맡은 마이클 패스벤더는 17kg을 감량하며 열연을 펼쳐 제11회 영국독립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비롯한 전 세계 10여 개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수상내역만 봐도 '한마디로 미친 연출과 미친 연기'의 호흡을 볼 수 있는 작품란 걸 알 수 있다. 1981년 메이즈 교도소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다 사망한 IRA 소속 '보비 샌즈'의 실제 옥중 투쟁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보비 샌즈'의 뜨거운 신념을 느낄 수 있다. 또 역사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예술적이고 비관습적인 방식으로 스크린에 담아내고 있다.

감독은 IRA 단원들이 교도소에서 당하는 고통을 옆에서 관찰하듯 사실감 넘치게 전달하는데 매우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15분가량 롱테이크로 처리된 단식 투쟁 직전 샌즈와 도미닉 모란 신부의 팽팽한 토론 장면도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스티브 맥퀸 감독과 마이클 패스벤더는 이후 <쉐임>과 <노예 12년>에서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준다. 이 작품도 영화 개봉 전 2012년 DVD로 먼저 출시됐다. 세 작품 모두 현재 DVD와 다운로드 서비스 중으로 극장에서 놓친 사람들이라면 집에서 즐겨보길 권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구건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칠드런오브맨 헝거 순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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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이자 영화 좋아하는 네이버 파워지식iN이며, 2018년에 중소기업 혁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보안쟁이 입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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