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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능가산 내소사 천왕문을 나오니 확 트였습니다.
 부안 능가산 내소사 천왕문을 나오니 확 트였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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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아홉에 시집와서 얼마나 시집살이를 심하게 했는지 알아. 섣달에 시집갔는데, 설 때 친정에 가지 마라는 거야. 설에 못가고 보름에 갔는데, 친정에서 만난 친구랑 둘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또 신랑이 군대에 간 5년 동안이나 혼자 살면서 나락, 보리, 고구마 농사에 거름까지 얼마나 힘들었다고."

전북 부안 능가산 내소사(來蘇寺) 사찰 순례에 나선 윤상덕(84) 할머니께서 풀어낸 과거 시집살이 회고담입니다. 그럼에도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 가득입니다. 이야기를 얼마나 찰 지게 푸시는지, 푹 빠졌지요. 그러면서 말미에 "지금 시집살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요즘에도 이러면 못산다고 다 도망갈 거"라나 뭐라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여자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

내소사 당산제, 불교와 민간 신앙 결합의 본보기

능가산 내소사 일주문입니다.
 능가산 내소사 일주문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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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능가산 내소사 대웅보전 앞에서. 화려한데도 수수합니다.
 부안 능가산 내소사 대웅보전 앞에서. 화려한데도 수수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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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내소사 입구의 당산나무 입니다.
 부안 내소사 입구의 당산나무 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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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 두타 스님이 이곳에 절을 세워 소래사(蘇來寺)라 하였다. 현존 사찰은 조선조 인조 11년(1633)에 청민선사에 의해 중건되었으며, 고종 2년(1865)에 관해선사가 중수하였고, 그 후 만허선사가 보수하였다. 보물 제291호 대웅보전, 보물 제277호 고려 동종, 보물 제278호 법화경절본사본(전주시립박물관에 위탁 보관) 등이 있다."

내소사 입구 안내판에 적힌 설명입니다. 이번 내소사 여행은 전남 여수의 용월사 신도회에서 진행한 성지 순례단과 함께였습니다. 지난해에는 경남 창원의 성불사 신도들과 같이 움직였었지요. 이로 보면 내소사는 불교 사찰 순례지로 손꼽히는 절집입니다. 내소사로 향하는 길, 역시나 사람이 늘어섰습니다.

내소사 입구, 느티나무 당산나무가 위풍당당하게 자리합니다. 나무 밑 둥에는 밧줄이 치렁치렁 붙었습니다. 당산제를 올린 흔적입니다. 이곳 "할머니 당산나무 수령은 1000년, 할아버지 당산나무는 약 700년"이라 합니다. 당산제는 보통 마을 주도로 열리는데 반해, 내소사 당산제는 사찰 주도 하에 열린답니다. 이는 불교와 민간 신앙이 결합된 좋은 본보기입니다. 할머님들 행여나 놓칠세라 당산나무를 향해 합장합니다.

내소사의 수수함은 긴장을 벗게 하는 해방감 자체

내소사 전나무 숲길입니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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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던지는 폼은 백점 만점에 백점입니다.
 동전 던지는 폼은 백점 만점에 백점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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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주지 진성 스님) 명물, 전나무 숲길을 걷습니다. 숲길 걸을 때면 또 사색에 젖습니다. 사색의 주제는 언제나 따라 다니는 삶에 대한 의문들이지요.

'인생=고(苦)'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팔짱도 끼어보고, 뒷짐도 짓습니다. 고개 들어 하늘도 보고, 팔을 벌려 싱그러운 공기를 마음껏 들이킵니다. 이는 자신을 벗어던질 준비동작입니다. 나를 버림으로, 나를 찾기 위함이지요. 그동안 잊고 살았던, 아니 까마득히 잊었던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니까요. 현재의 내가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시간은 위안 그 자체입니다.

천왕문을 넘어서니 확 트인 넓은 공터가 펼쳐집니다. 이렇게 넓은 곳이 있었나 싶습니다. 내소사 경내 풍경은 화려하지 않고 수수해서 더 끌립니다. 수수함은 사람을 여유롭게 합니다. 다른 절집에선 걷느라 정신없습니다. 하지만 내소사에서는 모든 걸 감상할 준비가 된 듯, 유독 뒷짐 진 어른들이 많습니다. 이는 내소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의 영향입니다.

그래선지, 재밌는 중년 여인을 보았습니다. 동전을 던지는 중입니다. 바위에 기어코 동전을 얹어야겠다는 폼이 영락없는 개구쟁이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동전은 번번이 빗나갔습니다. 중년 여인, 웃음기 띤 얼굴로 "아깝다"며 탄성을 연발합니다. 폼만은 백점 만점에 백점입니다. 오늘 내로 결판날 것 같진 않습니다. 덕분에 배시시 웃습니다. 고(苦) 속에 락(樂)이 있는 게지요.

내소사 대웅보전에서 인상적인 연꽃과 관세음보살

내소사는 대웅보전의 이 문살도 유명합니다.
 내소사는 대웅보전의 이 문살도 유명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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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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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대웅보전에서 예불 중입니다.
 내소사 대웅보전에서 예불 중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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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대웅보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우측에 보현보살, 좌측에 문수보살을 모셨습니다. 천장의 화려한 장식과, 연꽃 및 국화꽃을 수놓은 문살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화려하지만 시끄럽지 않고, 장중하면서도 다정함을 느끼게 하는 건물입니다."

원일 스님, 설명입니다. 내소사의 자랑은 뭐니 뭐니 해도 대웅보전입니다. 그렇습니다.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서로 교합하여 만들었다고 하죠. 이 대웅전을 보면 괜히 숙연해집니다. 불자들, 대웅보전 안에서 간단하게 예불을 드립니다.

"불상 뒤쪽에 우리나라에 있는 것 중 가장 크다는 '백의관음보살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관세음보살을 보시고 복을 빌면 영험해 원을 이룬다고 하니 꼭 보세요."

스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습니다. 할머님들, 불상 뒤쪽 관세음보살님께 복을 빌기 위해 나래비 섰습니다. 천진난만하고 진지한 표정입니다. 보고 쓱 지나치기 아깝다는 듯 줄이 아주 천천히 움직입니다.

"할머니 뭐 비셨어요?"
"다 늙은 우리가 빌게 뭐가 있겠어. 손자 손녀 잘되라고 빌었지. 그리고 며느리도."
"어, 아들은 왜 쏙 뺏어요?"
"며느리가 잘되면 자동으로 아들까지 잘 되지 않겠어?"

어떤 분은 손자, 손녀, 며느리는 제쳐두고 아들 복만 줄기차게 비신다던데, 이와는 영 딴판입니다. 그렇지요. 더불어 같이 잘 살아야지요. 아주 현명한 시어머니입니다. 나오는 길에, 부안의 또 다른 명소 곰소에 들렀습니다. 곰소젓갈 맛을 봐야 부안 여행의 묘미가 사니까. 젓갈을 보니 벌써 마음은 김장 준비에 한창입니다. 김장철, 며느리들은 죽어난다지요? 쉬엄쉬엄 하시길!

저것이 뭐냐하면... 부처님!
 저것이 뭐냐하면... 부처님!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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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성지순례, 기념사진은 필수
 내소사 성지순례, 기념사진은 필수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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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내소사는 엄마들의 시름까지 잊게합니다.
 부안 내소사는 엄마들의 시름까지 잊게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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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부안, #내소사, #원일스님, #곰소, #시집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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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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