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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초등학교 점심밥상 배달가는 길
 마을초등학교 점심밥상 배달가는 길
ⓒ 배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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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르르륵~~~ 낮 12시 마을초등학교 점심밥을 실은 수레바퀴 소리가 서울 인수마을 언덕길을 가득 채운다.  '어~~이거 그거재? 저기 저 학교 가져다 주는 거.' 길에서 마주친 어르신들이 금세 아는 척을 하신다. '수고 많네.' 수레바퀴 끌고 가는 것이 힘들어 보이시는지 말로 거들어 주시는 어르신들의 미소가 정겹다.

언덕길은 끙끙대며, 내리막길은 국물 흘리랴 조심조심 끌고 가다 보면 이내 마을초등학교 입구 앞이다. 점심밥을 배달하고 멍멍이 미르에게 인사하고 밥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그렇게 가벼울 수 없다. 아름다운마을밥상에서 밥 짓는 이들의 점심 일상이다.

인수마을에 이사 오고 나서 집 가까이에 있는 마을밥상을 자주 찾았다. 밥상 차림이 집밥 같아서 좋았다. 밥상지기들과 인사도 나누고 도움이 필요할 때 함께 도우며 얘기도 나누다보니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는 나에게 점심과 저녁마다 찾는 밥상은 마을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마을밥상에서 맛있는 점심 한 그릇
 마을밥상에서 맛있는 점심 한 그릇
ⓒ 배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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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밥상지기가 밥상지킴이를 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밥상지킴이는 일주일에 한 번 밥상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을 돕는다. 어렵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재미있게 해 보자는 마음으로 흔쾌히 하기로 했다.

밥상지킴이 일과는, 저녁 8시 30분 이후 직장에서 퇴근하고 저녁 먹으러 오는 이들이 밥을 다 먹어갈 때쯤 시작한다. 왁자지껄했던 밥상이 조용해지고 밥상지기와 지킴이가 같이 밥상을 깨끗이 정리하고 다음 날 필요한 일들을 준비한다. 분주했던 밥상을 정돈하고 마지막에 불을 끈 후 나가서 마시는 밤공기는 정말 상쾌했다.

지킴이를 하면서 매일 행주와 수건을 삶아서 널고, 바닥을 깨끗이 닦는 일을 해 보면서 여러 사람의 수고로 밥상이 정말 깨끗하게 유지되어 왔다는 것을 느꼈다. 이 공간은 밥상지기들만이 아니라 밥상을 누리고 있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곳이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밥상지기로 일하고 있다. 처음에는 밥 짓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집에서 밥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했는데, 밥상에서 주도적으로 음식을 만들게 되니 긴장감이 돌았다. 초반에는 맡은 것 위주로 밥상 일에 임했다. 이런 모습이 책임지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수동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밥상이 아니면 매번 끼니를 대충 때우는 게 편했던 먹거리 습관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모습을 넘어서고 싶어서 함께 일하는 이들과 솔직한 마음을 나누었다. 용기를 내어 이번 요리는 주도적으로 맡아서 해 보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집에서는 쉽게 외식을 하기보다는 재료를 사다가 직접 식구들과 요리를 했다.

쉽고 편한 것만을 찾았던 몸의 편향성을 생각해보면, 이런 과정이 아까운 시간이 아니라 건강한 밥상을 손수 만들어가는 능력을 키우는 훈련의 시간이자, 살림을 습관에 들이는 시간이었다.

함께 먹을 마늘까기
 함께 먹을 마늘까기
ⓒ 배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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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밥상지기들이 모여서 그동안 일해 왔던 시간들을 돌아보고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정리해서 적어 놨던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첫 문장은 '나에게 밥상은 즐거움이다'는 고백이었다. 마을밥상은 지금도 여전히 즐겁고 활기찬 곳이다.

밥상머리 앞에 머리를 맞대고 음식 차림을 짜면서 뭘 하면 좋을지, 뭐가 먹고 싶은지 이야기할 때가 있다. 밥상에서는 아직 내놓기 힘든 음식을 이야기하고는 서로 웃으며 언젠가는 해 보겠다고 다짐하며 고쳐 적기도 한다. 내가 밥솥에 넣는 세 그릇 분량의 쌀 양과 동료가 넣는 쌀의 양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며 서로 맞춰가기도 한다.

오순도순 둘러앉아 '마늘 까기' 울력을 하며 시간 안에 다 까놓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다가도 동료들의 웃음꽃에 멋쩍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시간에는 분주하기도 하지만, 한적해질 때 잠시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주고받는 대화는 좋은 쉼이 된다.

밥상은 단순히 밥만 먹는 공간이 아니다. 자기 몸을 사랑하는 법을 들이는 곳, 여러 사람들의 손길과 정성이 가득 담긴 곳, 만남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사람 사는 냄새가 폴폴 나는 생명력 넘치는 공간이다. 앞으로도 밥상이 그 공간을 넘어 마을에 생기를 더하는 아름다운 곳이 되도록 함께 걸어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아름다운마을신문에도 실렸습니다.(http://admaeul.tistory.com/)



태그:#마을, #밥상, #일상, #인수동, #친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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