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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들이 공을 물어서 노는줄만 알았는데, 때론 강아지가 코로 드리블을 하고 엉덩이로 슛을 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 웃고있는 늉 강아지들이 공을 물어서 노는줄만 알았는데, 때론 강아지가 코로 드리블을 하고 엉덩이로 슛을 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 추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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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집 밖에서만 용변 보는 기특한 강아지"에서 이어집니다.)

북해도의 오타루는 가까운 일본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겨울 여행지로 아주 제격인 곳입니다. 희한하게도 온 세상이 하얗고 눈이 온통인데 그렇게 춥지 않습니다. 이곳의 한겨울은 따뜻함을 품고 있습니다. 한 겨울 눈이 하얗게 내린 이 설원은 유유히 살얼음이 내려앉은 오타루 운하와의 절경을 이룹니다.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합니다.

이 절경속에서 시선을 사로 잡는 또 다른 전경이 있습니다. 하얀 눈속에서 노란 강아지 한마리가 움직입니다. 털이 노랗냐구요? 아닙니다. 강아지가 태어날 때부터 입고 있는 그 털옷이 아닌, 모직 옷입니다. 옷을 입었네요. 하얀색 강아지가 노란색 털옷을 입고, 눈밭을 뛰어답니다.

늉이 엄마 다은은 건조한 피부 탓에, 겨울에 이따금씩 온천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알뜰살뜰 한 해를 보낸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랄까요. 그렇게 찾아간 북해도 온천지역에서 다은의 마음을 온통 사로 잡은 그 모습, 다은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해봅니다. 부모님께 맡겨두고 떠나온 행복 덩어리 '늉'이가 생각나는군요.

늉. 네, 바로 다은과 함께 1000일을 동고동락한 3살 남견(犬)입니다. 사실 특별히 이름을 늉이라고 지은 이유는 없는데 사람들은 늉이가 숭늉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물어봅니다. 필자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늉이의 여자친구를 입양하게 되면 '슝'으로 이름을 지어보면 어떨까요? 돌아오는 대답이 제법 긍정적입니다.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그럼 숭늉 패밀리가 탄생하는 거예요 *^^*!"

반려동물을 입양해서 함께 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라면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이따금씩 생각날 겁니다. 이건 순전히 필자의 입장이지만, 정이 붙고 나면 떼려야 뗄 수 없는 그 아련하고 그리운 마음을 어떻게 할까요? 난초 하나가 일상에 가져온 삶의 변화를 그려낸 1972년 이 수필은 2000년 수능을 준비하던 필자가 언어영역의 고득점을 확보할 수 있었던 숨은 동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소소한 것들에 정이 붙고, 때론 그 정이 집착으로 변할 때 느끼는 묘한 접점에서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이따금씩 떠오르곤 합니다.

- 필자: 여행을 떠나거나, 집을 비울 때면 집안에 머물고 있는 강아지가 많이 걱정되실 거 같은데요?
- 다은: 사실 정말로 그래요. 여행을 떠날 때면 여행지 곳곳에서 늉이가 생각이 나요. 이곳에서 함께 거닐면 이 녀석이 얼마나 좋아할지, 얼마나 기쁘게 엉덩이를 흔들며 뛰어다닐지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마음이 애잔해지곤 해요. 그래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님 집에서 오랜만에 할아버지, 할머니랑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늉이를 생각하면 걱정이 놓이기도 해요.

여행을 떠나서 느끼는 낯설음, 그 설레는 낯설음이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초대하는 주된 이유가 될 텐데요, 늉이는 제게 집으로 돌아왔음을 알려주는 상징이에요. 지친 일상, 바깥 일을 보고 귀가해서 문을 열자말자 문밖으로 뛰어나와 귀를 뒤를 젖히고 꼬리를 흔드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모든 게 괜찮아져요. 신발을 벗자마자 신발 한 짝을 물고 온 집안을 뛰어다는데요, ^^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런지, 새로 산 신발에 난 늉이의 치아 마크(?!)가 나한텐 최고의 브랜드예요! ^^

호텔 정문에 놓인 물그릇 두개

늉이는 늘 한자리에서 다은을 기다립니다. 한국말을 못하지만 이 녀석의 한결같은 기다림은 변함없음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합니다.
▲ 동네 어귀에서 늘 그자리에. 늉이는 늘 한자리에서 다은을 기다립니다. 한국말을 못하지만 이 녀석의 한결같은 기다림은 변함없음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합니다.
ⓒ 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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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여름에 열리는 심리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 때 내 마음을 사로잡은 하나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호텔 정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두 개의 그릇이었습니다. 그 그릇 안에는 맑은 물이 고이 담겨 있었는데요, 저는 그 물 그릇이 왜 그곳에 놓여있는지 처음에는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오후에 잠시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 그제야 그 곳에 놓인 물그릇의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그 물 그릇은 지나가는 강아지, 호텔에 주인과 함께 들어오는 강아지를 위해 놓여진 식수 그릇이었어요. 덥고 습한 캘리포니아의 여름 날씨를 버티는 강아지들을 위한 호텔 측의 배려였습니다.

'우와. 강아지를 위한 물그릇이 있다니.'

가만히 그릇을 들여다보니, 그릇 옆에는 강아지 발자국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져있었습니다. "나는 강아지를 위한 물 그릇입니다"를 나타내는 그 마크를 보고 있으니, 제가 살아온 패러다임과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의 세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 그 물 그릇의 존재 자체를 인지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날 이후로 저는 친구들이 운영하는 가게 앞에 물 그릇 놓아두기 운동을 펼쳤습니다. 친구들은 적어도 제가 갈 때는 (^^) 강아지 물 그릇을 자신들이 운영하는 카페나, 레스토랑 앞에 고맙게도 놓아두었습니다.

다은은 현재 자신의 마음을 토닥토닥 감싸준 늉이와의 일상을 바탕으로 예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 그림 속에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일상의 기쁨과 즐거움을 그려내고, 반려동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반려동물을 간혹 어려워하거나 심지어 강아지에게 물린 경험 등으로 트라우마가 생긴 분들이 있을 텐데 그런 분들에게는 어떻게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전달해 줄 수 있을지 말이에요.

- 다은: 강아지나 반려동물에 대해서 거부감이 많은 분들에게 결코 반려동물이 무섭거나,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싶어요. 물론, 두렵거나 무서운 경험을 한 과거의 특정 사건이 인식을 형성했을 수도 있고, 그런 부분들은 새로운 인식이 형성되기 전에는 바뀌기 힘든 점이 있을 거예요. 동물들과 사람은 같은 문자를 공유하진 않지만, 감정 언어는 공유할 수 있거든요.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하면 그런 마음으로 화답하는 경우가 많아요. 먼저 경계심을 풀고, 넓은 포용과 어여쁜 마음으로 반려동물들을 바라볼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요.

잔잔하고 소소한 일상이 특별한 감동을 불러온다는 믿음이 대화 내내 생겼습니다. 때론 반려동물을 통해서 우리는 부모의 따뜻한 마음, 부부의 애틋한 정, 아이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마음을 모두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지치고, 때론 버거운 우리의 마음을 토닥토닥해주는 우리 반려동물. 오늘은 우리가 그들의 하루를 쓰담쓰담해주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은 이 녀석과 함께 반나절 공놀이를 해보려 합니다. 오늘은 내가 널 토닥토닥^^!

하루 일과를 마치고 문을 열 때, 잠시 일상을 벗어난 일상에서 돌아와 마주한 늉. 눈빛과 온몸을 던져 표현하는 반가움은 매 시간을 쓴 이 손편지를 제게 전하는 마음이네요.
▲ 기다림에 지쳐. 하루 일과를 마치고 문을 열 때, 잠시 일상을 벗어난 일상에서 돌아와 마주한 늉. 눈빛과 온몸을 던져 표현하는 반가움은 매 시간을 쓴 이 손편지를 제게 전하는 마음이네요.
ⓒ 추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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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반려동물은 우리의 일상의 특별한 벗으로 다가와 어느덧 가족이 되었습니다. 세상 모든 일에 그렇듯이 반려동물을 바라보고 대하는 의견과 태도 또한 다양합니다. 여기 하나의 특별한 강아지 늉과 다은의 일상이 담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함께 지구라는 공동체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감동의 메세지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태그:#행복강아지, #내맘토닥토닥, #쓰담쓰담, #행복강아지늉, #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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