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하지 못한 무언가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더 정확히는 그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그래서 그 누구로부터도 배울 수 없는 무언가는 공포스럽다. 일생에 한번은 꼭 맞닥뜨려야 하고, 그러나 그것이 '언제'일지 알 수 없는, 그리하여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과정이자 결과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장황스러운 말을 거두고, 그 대상을 명확히 하자면 그건 '죽음'이다.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때 '회피'하고 '외면'한다. 죽음은 그리 다뤄져왔다. '금기(禁忌)'처럼 말이다.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말, 사유해선 안 되는 개념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기피 현상은 단지 우리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EBS 다큐프라임 죽음>(EBS <다큐프라임-생사탐구 대기획 데스>를 활자로 엮은 책)은 죽음의 예측불가능성이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하도록 만든다면서 이것이 보편적인 것이라 언급한다. 물론 예외적인 사회도 존재한다. 멕시코의 경우에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죽은 자를 위한 날'이 있어 사자(死者)를 위해 집을 꾸미고 해골을 만든다고 한다. 그들을 기억에서 끄집어내 반추하는 경험을 나누는 것이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라는 프란츠 카프카의 말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반드시 '끝'이라는 시점이 존재하고,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을 구성하는 사람들과도 '이별'을 해야하는 시점이 온다. 그에 대한 '준비'가 돼 있을까? 아무런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해도 괜찮은 걸까? <EBS 다큐프라임 죽음>은 '죽음 교육'을 강조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떤 방식이 됐든 자꾸 '죽음'을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곧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내게 남은 48시간>의 한 장면

<내게 남은 48시간>의 한 장면 ⓒ tvN


당신에게 단지 '48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tvN의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 <내게 남은 48시간>이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이다. 출연자들은 '가상 죽음'을 배달받아 '가상 시한부'가 된다. 자신의 삶이 48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출연자들은 그 최후의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아낸다. 이 과정을 통해 관념적인 개념에 불과했던 '죽음'을 실체적으로 받아들인다. 실존적 고민을 통해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새로운 동력을 얻는다. <내게 남은 48시간>은 이른바 '웰다잉(Well-Dying)' 리얼리티의 탄생이다.

질문은 간단하지만, 결코 쉬운 질문은 아니다. 왜냐하면 '죽음' 자체가 여전히 공허한 개념이기에 그렇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회피로 인해 삶과 죽음의 거리가 멀어진 탓이다. 그래서 실체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배우 이미숙, 방송인 탁재훈, 배우 박소담이 겪는 '이질감'은 당연하다. 죽음을 통보받은 이미숙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채 당황스러워했고,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죽음'때문이라기보다는 그저 늙은 자신에 대한 회한 같아 보였지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내게 남은 48시간>의 한 장면

<내게 남은 48시간>의 한 장면 ⓒ tvN


이미숙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어 강아지들의 식사를 준비했다. 강아지 한 마리가 밥을 잘 먹지 않자 "너 지금 먹어야지. 엄마 어디 가면 어쩔 거야"라며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였는데, 10년을 넘게 함께 살아왔던 반려견을 통해 조금씩 '죽음'을 인지해가는 듯했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 목록을 공책에 적어보기도 하고(몇 가지 적지 못했지만), 정원 손질부터 집안 청소, 동네 지인과 차를 마시는 등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가 죽음을 준비해나갔다.

탁재훈은 미국에 있는 아들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아들이 미국에 있어서 자전거를 가르쳐 줄 기회가 없었는데, 어느 날 미국에 갔을 때 아들이 자전거를 잘 타고 있더라.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면서 떨어져 지내는 아들에게 보낼 영상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탁재훈의 부성애가 돋보였다. 죽음에 순서가 없다지만, 아무래도 가장 심리적인 거리감이 있을 20대 박소담은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배우 김예원을 불러내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두 사람은 젊은 세대답게 유쾌하고 행복하게 남은 시간을 보낼 방법들을 궁리했다.

 <내게 남은 48시간>의 한 장면

<내게 남은 48시간>의 한 장면 ⓒ tvN


화제를 끌었던 <내게 남은 48시간>에 대한 비평은 대체로 일치했는데, '신선했지만 몰입감이 떨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출연자들이 보여준 '진정성'은 아무래도 아쉬웠다. 48시간 후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데, 별다른 동요 없이 느긋한 태도를 취하는 건 아무래도 어색했다. 정말 48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면, 과연 아들에게 보내줄 비디오를 찍고 있었을까? 당연히 영상 통화를 하든지,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잡고 달려가지 않았을까? '방송'이라는 제약과 한계는 어쩔 수 없이 몰입감을 저해할 수밖에 없는 요소다.

물론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가령, '시간 여행'을 통해 현재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취지로 기획된 MBC <미래일기>의 경우에는 '분장'을 통해 출연자들의 몰입감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시도를 했다. 그런 장치 없이, 달랑 48시간 타이머의 시계를 채워준다고 해서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또, 출연진 선정에 대한 아쉬움도 분명 있다. 조금 덜 유명하더라도 프로그램의 성격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진지한 출연자를 한 명쯤은 섭외할 필요도 있었던 것 같다.

여러 아쉬움이 눈에 띄지만, 그럼에도 이런 예능이 반갑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죽음'과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 '예능'을 통해 조금은 가벼운 접근을 시도하는 건 어떤 면에서 불편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의미있는 첫걸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남은 48시간>이 2개월 만에 종영하게 된 <미래일기>의 전철을 밟지 않고, 롱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뻔함'을 벗어던지고, 좀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현재에 충실하자'라는 메시지는 중요하지만, 지나친 수렴은 오히려 식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 남은 4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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