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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 최고위원이 12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 귓속말 나누는 이정현-조원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 최고위원이 12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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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 번 거창하다. 무려 '혁신'과 '통합'이라니, 거기에 '연합'까지 덕지덕지 붙였다.

11일 저녁, 친박계 의원 50명이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긴급 심야모임을 열고 내놓은 새로운 모임 이름을 듣자니 얼핏 동화 제목 하나가 스쳐 간다. '박근혜와 50인의 도적들' 아니,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들> 말이다.

이날 서청원·최경환·조원진 등 친박계 의원 50명은 "김무성·유승민과는 당을 함께할 수 없다"라면서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과 이인제 전 최고위원, 김관영 경북도지사를 공동대표로한 '혁신과 통합 연합' 모임을 발족하기로 발표했다.

바쁘신 친박계 의원님들을 위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혁신'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고, '통합'은 "둘 이상의 조직이나 기구 따위를 하나로 합침"이다.

정녕, 저런 당명을 지어도 될 것이라 생각한 걸까. 아니, 작명이야 본인들 의사지만, 지금 새누리당 친박계가 '혁신과 통합'을 운운할 수 있는 위치와 자격을 갖췄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한데, 새누리당 비박계 역시 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들>이라는 동화를 떠올린 듯하다.

비박계 모임 비상시국위원회 대변인 황영철 의원 역시 12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우리가 어제 국정을 농단하고 민심을 배반하고 그리고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를 방기한 최순실의 남자들은 당을 떠나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라며 "당 지도부, 친박 지도부의 이정현 조원진 이장우 최고위원, 친박주동세력인 서청원, 최경환, 홍문종, 윤상현 의원, 또 국민의 준엄한 촛불민심을 우롱한 김진태, 이상 8명은 즉각 당에서 떠나주길 바란다"며 이들을 '친박 8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한 새누리 초선 의원의 한탄... "정치세력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1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비상시국회의에서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의원 등 참석 의원들이 정국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1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비상시국회의에서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의원 등 참석 의원들이 정국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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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박계의 속내에 대해서는 황영철 의원이 12일 오전 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 한 인터뷰를 통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듯하다. 황 의원은 "이 (탄핵소추안에 반대한) 이 57명 전원의 탈당을 요구하시는 건지요?"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도 친박이라고 해서 다 같은 선상에서 볼 수가 없잖아요"라고 답했다. '친박'이라는 라벨링이 붙었다고 해도 전원 탈당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우리 당내에서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돼 있는 사람들도 저희들은 있다고 보고요. 그리고 그것을 옹호하는 데 앞장서온 사람들이 있고, 그리고 우리 당을 사당화 시켜서 정말 이 순수하게 보수정당으로서 우리 당을 지지해왔던 많은 분들에게 아픔을 줬고 결국은 지난 총선에서 패배 이후서부터 지속적으로 이런 패권주의와 사당화를 만들어내기에 앞장섰던 사람들.

그리고 이번 탄핵 국면에서 국민의 민심에 배반한 그런 행동을 앞장서서 보였던 분들, 이런 분들을 추려낼 수가 있겠죠. 그러면 사실 이런 분들만 저희들이 우리 당에서 나가고 그리고 새롭게 당이 국민들의 뜻에 맞춰서 쇄신해낼 수 있도록 이렇게만 만들어주면 된다고 보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들은 이렇게 지금 말씀하신 대로 탄핵 반대한 모든 분들이 나가라는 뜻 이런 건 분명히 아닙니다."

그러니까, 비박계는 이정현 대표의 사퇴를 포함해 핵심 인물들의 탈당을 요구하는 것으로 선을 그은 것이다. 이러한 기류는 진성 친박을 제외한 새누리당 초선 의원들에게도 감지된다. 12일 오전 '가톨릭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윤재선입니다>'와 인터뷰한 정운천 의원도 엇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공범"은 물론 "지금 가장 바뀌지 않는 게 새누리당"이라는 직격탄을 날린 것. 비박계도 국민들도 아는 걸 친박계 의원 50명만 모르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이 탄핵이 됐는데 대통령에 관계되는 가까운 책임자로 있는 지도부가 진작 그만두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지, 지금 가장 바뀌지 않는 게 새누리당이거든요. 새누리당이 국민들한테 공범이라고 하는데 공범의 책임은 지지 않고 그것을 붙잡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국민들이 과연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져서 우리 초선의원들 입장에서는 너무 안타깝고요. 정치세력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비박계의 구상 뒤흔든 '친박 8적'의 대활약

새누리당 비상시국위 간사인 황영철 의원이 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회의를 마친 후 브리핑하고 있다.
 새누리당 비상시국위 간사인 황영철 의원이 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회의를 마친 후 브리핑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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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내전'이라 할 만하다. 비상시국의원회와 혁신과통합 연합으로 확연히 갈리고 있다. 그 와중에 비박계는 '친박 8적'이란 마지노선을 상정했지만, 오는 21일을 사퇴 시점으로 못 박았던 이정현 대표를 위시해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하며 저항(?)했던 최경환 의원 등 친박 핵심들이 과연 나머지 의원들을 놔줄지 미지수다. 12일 오전, '친박' 조원진 의원 역시 재차 "김무성·유승민은 당을 떠나라"고 공격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아마 지도부가 물러나면 옛날 노무현 때 사람들이 폐족됐듯이 책임을 다 송두리째 자기들이 져야 하는 두려움을 내려놓으면 그 두려움에서 자기들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그런 권력을 놓을 수 없는 것이죠. 너무 다 보이는 것 아니겠어요. 그게 국가를 위하고 소신, 철학 이런 등등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새로운 모임을 만든 친박계에 대한 정운천 의원의 해석이다. 맞다. 새누리당이라는 거대 여당이 지닌 금권과 세력을 놓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부총리까지 지낸 최경환 의원과 직접 청와대에 입성했던 이정현 대표 등 그 누구 하나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 친박 핵심들이 '공범' 의식을 갖고 백배 사죄하기는커녕 재선을 비롯해 제 이익만 쫓는 사익집단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혁신과 통합 연합'이 열심히 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아니, 더 자신들의 정체성을 더 공고히 하고 부각시켜서 국민들에게 어필하기 바란다. '공범'으로서 누릴 것은 다 누렸음에도 누구 하나 책임은 지지 않고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그 죄의식도, 일말의 양심도 없는 자신들의 '선명성'을 말이다.

"어쨌든 잠룡 주자들도 있고 소위 얘기하는 반기문 총장도 계시잖아요. 그렇다고 보면 지금 12월 초니까 1월 말까지 모든 재조정을 해서 새롭게 뭔가 재창당을 하든, 아니면 구조조정을 해서 리모델링을 하든 그렇게 해서 만들어내면 이제 우리 보수에 관계되는 지도자들을 경쟁체제로 모아서 후보를 만들어내야 그래도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어떤 지지를 받는 후보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죠."

정운천 의원이 바라본 향후 새누리당 재편과 대선 구도다. 이미 익히 알려진, 예견된 구상이다. 골수 친박계를 축출시키고, 새누리당 간판을 바꿔 달고, 혁신과 통합을 앞세워 쇄신을 공약으로 내건 뒤, <조선일보>와 <TV조선>을 비롯한 보수매체가 연합해 힘을 실어 주는 타임라인 말이다. 그런데 그 '혁신과 통합'이란 '네이밍'을 친박계가 먼저 가져가 버린 것이다.

정 의원이 말한 1월 말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비박계 입장에서 공공연히 대선출마를 시사 중인 반기문 총장이 새로운 보수정당에 합류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할 터다. 솔솔 피어오르는 국민의당 혹은 개헌 세력과의 '제3지대' 연합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대선주자 설문조사에서 유의미한 위치를 점한 반기문 총장의 깔끔한 영입은 지상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친박계'의 활약이 중요하다. 황영철 의원이 이날 비상시국회의의 수장을 묻는 말에 "현실적으로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 두 분 중에서 한 분이 맡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다수인 상황"이라고 확인했다.

'촛불 민심'이 박 대통령의 '공범'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는 인사들이다. 친박계의 활약과 새누리당의 내전이 지속된다면, 새누리당 전체는 물론 친박계와 박 대통령의 '공범'들의 민낯을 국민들이 더 오래 확인할 수 있지 않겠나.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헌법재판소에 공이 넘어간 지금,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새누리당과 친박계의 효용은 딱 거기까지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 모인 시민들이 새누리당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 새누리당사 앞에 모인 시민들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 모인 시민들이 새누리당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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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새누리당, #혁신과통합연합, #친박, #비상시국의원회, #박근혜최순실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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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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